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정폭력을 주제로 하는 영화라기에 시사회 참석 신청을 하기 전 조금 걱정했었다. 폭력적인 장면들로 점철된 거북한 영화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말이다. 하지만 영화 포스터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에, 일단은 걱정을 접어두고 영화를 보러 갔다.
포스터만 믿고 보러 간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요 근래 감상한 영화 중 최고로 세련된 연출을 보여준 영화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더해졌다. 플롯의 내용이 마음에 드느냐 안 드느냐를 차치하면 영화 그 자체로서는 손색이 없다고 할만했다. 여기서 언급한 '세련된 연출'이란 조금 바꿔 말하자면 '잘 쓰인 소설 같은 스토리텔링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영화에서 가장 크게 결여되어 있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하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러한 연출의 교과서적인 답안을 보여주는 듯했다.
당신이 읽고 있는 소설의 주제가 '철수는 영희를 좋아한다'는 것이라면, 잘 쓰인 소설의 경우 결코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철수는 영희를 좋아한다"는 문장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소설이라는 이름의 형식을 달고 나온 이상, 철수가 영희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철수가 영희와 함께 있을 때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등을 묘사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이 사실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의 스토리텔링은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속 주요한 장면에 모두 적용되어 있다.
첫 오프닝 장면은 위와 같은 소설적 기법을 사용해 시간적인 압축을 효과적으로 이루어내고 있다. 가정폭력을 이유로 이혼을 하게 된 부부 미리암(레아 드뤼케르 분)과 앙투완(드니 메노셰 분). 자녀는 큰 딸과 어린 아들. 딸은 성년에 가까워서 스스로 누구와 살 것인지 결정할 수 있지만 아들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 법정의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 집 밖에서는 너무나도 멀쩡하고 오히려 건실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앙투완이지만 가족들 앞에 서면 무자비한 폭력범이 된다. 아들은 이런 아빠와 한시도 같이 있고 싶어 하지 않지만 법정에서 뻔뻔하게 거짓 진술을 하는 앙투완 때문에...
글로 쓰면 이렇게 늘어지는 내용을 영화에선 법정에서 오고 가는 단 몇 분의 대화를 통해 관객들이 모든 정황을 한방에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혼 소송을 시작하기 전에 이 가족들이 어떤 일을 겪어왔는지 구태여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하면 촌스러워진다. 한정된 시간과 장면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긴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면 소설적 스토리텔링이 필수이다.
세련된 연출이 돋보이는 장면 중 인상 깊던 두 가지는 모두 큰 딸 조세핀(마틸드 오느뵈 분)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조세핀이 공중화장실에서 테스트기를 통해 임신 사실을 확인하는 장면이었고, 두 번째는 조세핀의 생일 파티에서 조세핀이 노래를 부르는 파티장 씬이었다. 두 장면 모두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을 줄만한 대사는 일절 나오지 않는다. (후자의 경우 등장인물들이 무어라고 말은 하지만 파티장이 시끄러워서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화장실 씬의 경우 1분이 넘는 시간 동안 보이는 것이라고는 닫힌 화장실 문 아래—조세핀의 신발만이 겨우 보이는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 사실을 확인하기 전의 조세핀의 불안과 확인한 후의 충격이 확실하게 표현된다.
파티장에서는 조세핀이 줄곧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어수선하게 돌아다니는 나머지 가족들의 모습이 비춰질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남자친구와의 도망을 목전에 둔 조세핀의 심리가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곧이어 등장하는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앙투완과 그와 미리암 사이의 다툼 등을 예견하는 인상까지 준다.
이와 같이 소설적인 스토리텔링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신 '돌려 말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는 역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관객들은 상황을 보다 능동적으로 파악하고자 하고, 등장인물의 심리는 더욱 절절하게 전달되어 오는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자극적인 폭력씬 없이도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고, 다수의 사건들이 하나의 결말을 향해 흘러가고 있음이 느껴질 정도로 몰입감을 주는 것은 이러한 소설적 스토리텔링의 효과적인 사용 덕분이다.
이 작품이 가정폭력을 다루고 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 폭력이 행사되는 장면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그 세련된 연출 능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도록 만든다. 여담이지만 대체 누가 이런 연출을 했을까 하고 감독의 사진을 찾아보니, 감독의 얼굴이 너무 세련됐다(...?!) 연출뿐만 아니라 감독의 얼굴에도 찬사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간접적으로 돌려 말하는 방식이 세련된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극 중 미리암의 경우처럼 어떠한 형태로든 폭력을 마주하게 됐을 때는 무조건 강경하고 직접적인 대응이 필수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미리암은 앙투완의 폭력과 협박에 괴로워하면서도 그에 대해 강하게 대응하는 것에는 소극적이다. 말과 행동이 앞뒤가 다른 앙투완을 고발하기 위한 증거를 모은다거나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폭력이 가해질 때 이를 제대로 처벌하고 넘어가거나 하지 않고, 미리암은 모든 일을 '조용하게' 끝내고 싶어 한다.
그녀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최근 비슷하다면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미리암처럼 신체적 폭력의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나 앙투완처럼 규범과 상식에서 벗어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관련된 모든 일들을 그저 안 본 셈 치고 없던 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아닌가. 다행히 주변의 도움으로 없던 일은커녕 동네방네 알리고 다니며 일을 마무리 지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훨씬 더 치밀하고 강경하게 대응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체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심지어 감정적으로건—폭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초의 상황에서부터 확실하고 단호한 대처를 해야 추후 비슷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한다. 자신이 겪은 불쾌한 일을 계속 끄집어내고 싶지 않아 묻어두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럴수록 마음을 다잡고 필요한 도움은 주변에 최대한 요청하며 확실하고 강하게 대응해야 함을, 나 자신부터 다짐한다.
1) 제목은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나름대로 패러디한 것이다(...) 설명이 필요한 패러디는 이미 실패한 패러디이지만 요새 철학적인 내용에 소홀한 탓에 스스로 찔려서 한 번 언급해본다..!
2) 감독이 궁금하다면 '자비에르 르그랑Xavier Legrand'을 검색하면 된다. 본격적으로 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들기 이전에는 배우로서 활동한 듯하다.
3) 최근 모 드라마에서 극 중 스토리 전개를 보다 실감 나게 해야 한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남자 배우가 여자 배우를 심하게 때리는—이 삽입된 것이 논란이 되었다. 나 역시 이 장면을 보고 굉장히 불쾌했으며 해당 장면을 삽입하기로 한 건 결코 올바른 결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세련되지 못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