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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Aug 13. 2023

공장노동자로 살 순 없었다


12년 전, 생계의 고단함 건너편에서 적게 벌어 적게 쓰며 편안하게 살고자 제주에 왔다. 그 후 7년 동안 작은 민박집을 운영했다. 여유롭고 편안하고 행복한 나날이었다.


이런저런 글을 써서 출판도 했다. 소설가가 오랜 꿈이었다. 문학과는 무관한 그저 독자에 불과하지만, 지적성장의 욕구로 가득한 내면에 존재하는 인간의 최고 지위가 소설가였다. 줄곧 문학과 문단이라는 거대장벽에 겁 먹고 서있던 나는 어느 날 내가 소설을 쓰겠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라는 객기로 장편소설을 썼다. 힘겹게 나의 첫 장편소설을 완성했고, 내가 직접 출판하여 많은 독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글쓰기를 지속하지는 못했다. 창작자의 99%는 시장에서 좋은 호응을 얻지 못하고, 내가 1%가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소규모 자영업 역시 지속하기 위해서는 직장인보다 더 고단하고 힘들게 일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글쓰기를 지속하며 작가로 살아갈 수 없었듯이 소규모 자영업 역시 지속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장사를 그만 두었다. 좀 쉬고 싶었다. 쉬면서 이제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기로 했다. 한 2년 정도 벌어놓은 돈 까먹으며 다음 스텝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백수생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직장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음습했고, 나태해지는 걸 견딜 수 없었다.


다시 소규모 자영업자가 될 자신이 없었다. 주변의 모든 업소가 경쟁자인 생존 구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직장인은 모든 동료들이 내 경쟁자가 아니다. 최소한 직장인은 경쟁업체라는 공동의 적을 가진 동료들 무리에 속해서 일한다. 장사보다는 직장생활이 마음 편하다는 결론이었다. 소규모 자영업은 훗날 사회에서 나의 쓰임이 다한 후에 해도 되는 보험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그 당시 내가 구할 수 있는 직장은 동네 근처의 공장뿐이었다. 딱히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았고, 직업에 대해 기대하는 바도 없었기에 저임금 공장노동자로 살아가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렇게 동네 근처의 농공단지에 있는 공장에서 용접도 하고 전기제품 생산도 하고 품질관리도 했다. 용접이 재미있어서 기능사 자격증을 딸까도 생각했다. (나 소질 있더라)


그러다 몇 개월 만에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공장노동자로는 살 수 없었다. 그동안 상식이라고 여겨왔던 것이 실은 어마어마한 기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를 대하는 방식도, 해결하는 과정도 그곳에선 모든 게 무지성에 가까웠다. 또한 스스로 최하위 계급임을 자처하며 같은 노동자들을 하대했다.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살 순 없었다.


원래 분야의 직장을 구하기 위해 퇴근 후 공부를 했다. 오랫동안 손 놓았던 전자회로, MCU 설계 서적을 보고,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공부했다. 사실 스트레스 가득한 개발 일은 안 하고 싶었다. 적당히 단순하고 적당히 숙련도를 요하는 정도의 노동이 주는 마음편함을 포기하는 게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정한 직업의 귀천과 계급체계의 최하층에 있을 순 없었다.


그렇게 몇 개월 후 지금의 신재생에너지 전문기업의 연구소에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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