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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꺼 Jul 07. 2024

동북공정의 최전선에서

션양, 청더 여행_랴오닝성 박물관

사실 이번에 션양 여행을 준비하면서 끌리는 곳이 그렇게 많진 않았다. 션양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워낙 짧기도 했고, 예전에 단기 연수로 살아봤던 곳이라 유명한 관광지는 대부분 가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학 시절에도 가보지 못해 이번에 가게 된 곳이 있었는데 바로 ‘랴오닝성 박물관'이다.


랴오닝성 박물관


랴오닝성 박물관은 중국의 4대 혹은 5대 박물관에 들어가진 못하지만 규모나 전시 수준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랴오닝성에서 고고학적으로 꽤나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 다수 발굴되어 전시품의 수준이 높다. 하지만 이 점이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랴오닝성에서 발굴된 유적들은 기존 중국 정부의 역사관을 뒤집는 수준이어서, 중국 정부를 꽤나 당혹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은 이 지역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관에 억지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을 '동북공정'이라고 부른다.


역잘알은 아니지만 동북공정에 대해 최대한 쉽게 풀어보자면 이렇다. 중국 고고학에서 중국 역사의 원류는 중원이라고 불리는 황하강 일대이다. 황하 문명으로 불리는 이 문명은 세계 4대 문명 중에 하나로 알려져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그동안 중국에서는 황하 문명에서 모든 중국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었다. (일원론)


진시황 모형


하지만 1900년대 들어 랴오닝성 일대에서 황하문명과는 전혀 다른 양식의 유물이 대거 발견된다. 이를 홍산문화라고 하는데(중국에서는 요하문명이라고 부른다), 황화문명보다도 연대가 이른 시기의 유물도 다수 발견되었다. 이러한 홍산문화의 독자성은 만주에서 황화문명과는 역사가 꽃피웠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하지만 중국은 만주 지역의 고대사도 자신들의 역사에 포함시키고 싶어 했고, 결국 자신들의 시조가 요하문명을 건설한 뒤에 황하로 넘어가 황화문명도 건설하였다는 다소 무리한 주장을 하기 시작한다. (다원론)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고 하는 것도 만주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랴오닝성 박물관은 이러한 동북공정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하여 전시하는 가장 대표적인 박물관이다. 이 점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과연 책으로만 보던 만주 지역의 고대 유물을 볼 수 있을지, 만주의 고대사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지,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랴오닝성 박물관을 이번 션양 여행의 가장 큰 목적으로 삼았다.




랴오닝성 박물관 외부
랴오닝성 박물관 내부


박물관은 션양시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여행자들이 많이 가는 번화가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는데, 유학 시절에 가지 않았던 이유도 기숙사와 너무 멀어서 귀찮았던 게 컸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공항이 박물관 근처에 있어 자연스럽게 동선이 겹쳤다. 오후에는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넘어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개관 시간에 맞춰 도착하였다.


박물관에 도착했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개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물관의 규모가 상당하여 중국 사람들이 웅장한 건물 앞에 삼삼오오 모여 인증샷을 남기고 있었다. 입장을 위해서는 사전에 중국 메신저인 위챗으로 방문신청을 해야 했다. 지난번 상해 박물관을 갈 때는 외국인은 위챗 신청이 안 돼서 별도로 여권을 보여주어 신청을 했었는데, 여기는 위챗으로도 접수가 되어서 간편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개관시간이 되어 QR코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도 꽤나 웅장했다. 중앙에 홀을 두고 동서남북으로 전시관이 둘러져 있는데, 이렇게 3층까지 전시관이 구성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무턱대로 1층부터 전시를 관람하였는데, 한국어가 아닌 영어/중국어를 읽으려다 보니 속도가 나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일단 고대 전시관이 있는 3층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고인돌 모형
비파형 동검


고대 전시관에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유물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었다. 비파형 동검이나 빗살무늬토기, 고인돌 등 말이다. 빗살무늬토기 같은 경우는 한국에선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 많지 않다고 하던데 여기서 만나니 더욱 신기했다. 생각해 보면 외국의 박물관에서 우리 역사에서 소개되는 유물을 보는 것도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쪽 동네나 일본 서부 정도가 있지 않을까?)



북방-중원문화 연결 도식도


그런데 전시의 설명을 읽다 보니 점점 특정한 정치적 의도가 읽히기 시작했다. 가령 모든 설명의 말미에 문맥과 상관없이 중원 문명과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라는 설명이 계속해서 들어갔다. 심지어는 위의 사진처럼 친절하게 선을 그어주기까지 하며 연결성을 강조하기도 있었다. 물론 인접한 문명끼리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지만, 이것이 중국 역사의 뿌리라고 하지를 않나 중국의 전설 속 인물(황제)이 북방문명을 세웠다고 하는 근거 없는 주장은 꽤나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이러한 교묘한 역사왜곡은 고구려 전시관에서 절정에 달했다. 아래는 고구려관의 설명이다.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세워졌고 허성 구청(오늘날 벤시 환런현 우누산)이 후에 수도가 되었습니다. 서기 3년에 수도는 궁내시(오늘날 지린성 지안시)로 옮겨졌습니다. 5세기에 그것은 요동과 쉬안투의 두 현을 점령했습니다. 427년에 수도는 평양으로 옮겨졌고, 당이 668년에 요동을 회복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요동 지역의 고구려 유적은 중국 중앙 평원과 주변 민족의 영향을 흡수하고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에 살았던 고대인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 모형
랴오닝성 내 고구려 유적 분포도


마지막 문장을 보면 마치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인 것 마냥 묘사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고구려의 전체 영역을 표시하는 지도는 없고, 랴오닝성에 분포한 고구려 유적만 표시하는 지도가 있어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고구려가 랴오닝성에 국한된 왕조라고 생각하게 끔 유도한다는 의심이 들었다. 전시를 보다 보니 타국의 역사를 억지로 뺏어가려는 꼴이 불쾌하면서도, 고구려의 영토가 지금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보니 이런 식으로밖에 역사를 접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고구려관을 지나니 시대순에 따라 이후 만주에서 자리를 잡았던 왕조들의 소개가 이뤄졌다. 뒤의 내용은 더욱 기가 찼다. 우리는 그래도 동북공정에 반박 및 견제를 할 수라도 있지만, 중국에 동화되어 버린 만주족의 역사는 완전히 중국 정부의 입맛에 맞게 편집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찾지 못한 건지를 모르겠지만 발해의 역사는 아예 소개되지 않은 듯했다)


랴오닝성 박물관


고대 전시관을 다 둘러보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박물관에는 꽤 많은 중국 사람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역사를 배우고 있었다. 잘 정리된 설명과 최첨단의 전시 기술을 보면서, 그들은 아마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같은 전시를 보며 상반된 감정을 느끼는 나와 그들을 생각하니, 새삼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면서도 힘든 일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2층과 1층의 전시도 다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아쉬움이 컸지만 언제든 다시 올 수 있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박물관을 나왔다.


박물관을 나오는 길에 만난 푸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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