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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꺼 Jul 02. 2024

계륵을 맛있게 먹는 방법

션양, 청더 여행 - 지지아 (鸡架)

한국에서 늦은 밤비행기를 타고 션양으로 넘어왔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모두 끊겼기 때문에 되는대로 첫날은 공항 근처의 숙소에서 묵기로 한다. 숙소는 공항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길가에는 숙소와 식당 몇 채가 조촐하게 모여있는 것이 마치 시골 군부대 앞의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옛날이었으면 이런 곳이 역참이지 않았을까 싶다.


숙소 컨디션은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침구류는 잘 정돈되었고 화장실도 깨끗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묘하게 불편한 감정이 들었는데, 아마도 로비에서부터 계속되었던 쾌쾌한 담배 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국은 아직까지 실내 흡연에 관용적인 편이라 담배 냄새가 나는 숙소를 접할 확률이 낮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중국인이 실내 흡연을 찬성하는 건 아니다. 내 중국인 친구는 숙소 알아볼 때 금연실인지를 꼼꼼하게 따져본다)


사실 션양이 위치한 동북 지역은 중국에서도 터프한 지역으로 유명한지라, 숙소를 예약할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담배 냄새에 당장은 도저히 자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차라리 맥주라도 마셔 술김에 잠드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식당을 검색해 보니 숙소 옆에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양꼬치 집이 하나 있었다. 평점이 그렇게 높진 않았지만, 이런 시골에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바로 가게로 향했다.



식당에 들어서니 자리는 여유로웠다. 빈 맥주병이 가득 쌓인 한 테이블 빼고는 손님이 없었다. 왠지 그들도 담배를 피울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최대한 그들과 먼 곳에 자리를 잡았다. 종업원은 내가 자리를 앉은 걸 확인하고는 메뉴판을 가지고 다가왔다. 그리고는 부담스럽게 내가 입을 뗄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형적인 중국의 주문 방식이다. 한 달 전에 여행했던 상하이에서는 어느 식당을 가던 내가 직접 핸드폰으로 QR코드를 찍어 주문을 하였는데, 션양에서는 아직 구두로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랜만에 말로 주문을 하려고 하니 굉장히 어색했다.


그래도 짧은 중국어가 가능했기 때문에 약간의 버퍼링을 겪으면서 천천히 메뉴판을 읽어나갔다. 대부분은 양꼬치 메뉴였지만, 내가 주문한 건 지지아(鸡架)라는 닭요리였다. 지지아는 닭에서 먹을 게 없다고 여겨지는 뼈 있는 부분들만 모아서 튀긴 뒤에 양념을 한 션양의 특색 요리이다. 옛날부터 한 번쯤 먹어보고 싶었는데, 이때가 아니면 이번 여행에서도 먹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주문했다.


다음으로 맥주는 뭐가 있는지 물어보니 종업원이 직접 냉동고까지 데리고 가서 몇 개를 집어 주었다. 3~4가지를 추천해 줬는데, 그중 옌징맥주의 라벨에 중국어로 ‘국화차 맛’이라고 쓰여 있는 게 확 눈에 띄었다. 왠지 녹차, 홍차를 맥주랑 섞는 건 별로여도 꽃차는 맥주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게다가 옌징맥주는 중국에서도 어느 정도 유명세가 있는 전국구 맥주라서 이름값을 한 번 믿고 시켜보았다.



맥주가 먼저 나왔다. 예상한 대로 국화차의 독특한 꽃내음이 맥주와 꽤나 잘 어울렸다. 중국 맥주는 칭다오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순한 맛이라 마치 차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맥주와 꽃차를 함께 마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의외의 발견이었다. 만약 내가 홈브루잉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무조건 따라 만들어봤을 것이다. (여담인데 같은 꽃차 계열인 재스민차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만족스러웠다.



한 잔을 거의 다 비웠을 때쯤 지지아도 나왔다. 맛은 심플했다. 옛날 통닭 스타일에 양꼬치 양념을 묻힌 맛이었다. 솔직히 기대한 것보다는 무난했다. 알고 보니 예전에 중국이 가난하던 시절에 남은 부위를 버리는 게 아까워서 먹을 방법을 고민하다가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한다. 버리기는 아깝고 먹기엔 얻을 게 없는 게 계륵이라더니 후손들은 기어코 먹는 방법을 궁리해 낸 셈이다.


그래서인지 뼈는 많은데 정작 먹을 부위가 너무 적었다. (가격도 그만큼 저렴하긴 했지만) 지지아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선 살도 많고 양념도 잘 되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맥주 안주로는 잘 어울렸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션양과 산둥 지방에선 대중적인 음식이라고 하니 다음에는 꼭 제대로 된 식당에서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만꺼의 여행 아카이브 바로가기 (노션 웹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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