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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꺼 Aug 05. 2024

피서산장의 절경을 마주하다

선양, 청더 여행_피서산장


청더에서의 첫째 날,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는데 방에 침투한 모기들과 사투를 벌였기 때문이다.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 전쟁은 나름 다섯 마리 넘게 사살하였지만, 끝내 박멸에 이르지는 못한 채로 휴전 상태에 돌입했다. 그나마 나 죽고 너 죽자는 마음으로 에어컨이라도 잔뜩 틀었더니, 모기들도 활동성이 떨어졌는지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서도 피곤함은 여전했다. 청더에서 남은 3일을 보낼 거라 늦게 일어나도 충분했지만, 결국에는 계획했던 대로 아침 일찍 피서산장을 다녀왔다. 사람 없을 때의 피서산장을 둘러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피서산장 입구


피서산장은 중국 청나라 황실의 여름 별장이다. 피서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황실에서는 무더운 베이징을 피해 북쪽에 위치한 청더에서 여름을 지냈다고 한다. 청나라의 만주족은 원래 근거지가 초원 지대인 만주 지역인데, 지도를 보면 청더가 딱 중국에서 초원지대가 시작되는 하한선에 위치해 있다. 결국 베이징에서 너무 멀지 않으면서도 만주족의 고향인 초원지대를 느낄 수 있는 곳에 황실의 별장을 세운 것이다. 요즘으로 따지면 코리아 타운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다.


한국인들에게는 청더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도 친숙하다. 박지원은 조선 사신으로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베이징에 가게 되었는데, 황제가 이 피서산장에 있다는 사실에 결국 청더까지 여행을 이어가게 된다. 이 여행기를 책으로 쓴 게 바로 열하일기이다. 열하일기에서는 ‘선양 > 베이징 > 청더’ 순으로 이동하는데, 나는 ‘선양 > 청더 > 베이징’으로 여행을 하고 있으니 어쩌면 이번 여행은 열하일기의 여정을 따라가는 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피서산장은 크게 박물관, 초원, 호수, 산림까지 총 4개의 권역으로 나뉘어 있다. 그중 입구를 지나면 가장 먼저 접하는 곳이 박물관 구역이다. 과거에 황제가 지내던 별궁을 활용하여 현재는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침 일찍 갔지만 벌써 많은 중국인들, 특히 어르신들 위주로 해설을 들으며 박물관을 구경하고 있었다. 관광 해설이 큰 돈벌이 수단인지, 몇몇 해설 가이드가 끈질기게 쫓아다녔다. 한국인이라고 말을 해도 쉽게 설명해 주겠다며 계속 가이드를 권유했다. (무슨 수로?) 결국 나중에는 귀찮아서 중국어를 아예 못 알아듣는 척을 해야 했다.



여름 별장이라고 해서 단순히 휴양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피서산장에는 정무를 보는 공간까지 갖춰져 있어 생각보다 건물이 많고, 규모도 컸다. (물론 자금성에 비교하면 소박한 수준이지만.)


박물관 구역은 전시품이 많진 않았다. 전시는 주로 황실의 피서문화와 기호품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한 가지 특이할만한 건 서구에서 넘어온 듯한 시계를 다수 전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마 황실에서 고급스러운 시계에 호기심을 많이 가졌던 듯하다. 청나라 시기 동양과 서양이 막 융합될 무렵의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열하일기에서도 상당 부분 청나라와 서구의 신문물을 소개하는 데 할애하였다.



박물관 구역을 나오면 본격적으로 황실의 정원이 펼쳐진다. 여기부터는 공원처럼 길이 여러 갈래로 펼쳐져 있어 자유롭게 동선을 선택할 수 있다. 피서산장은 서쪽에는 산림 구역이, 동남쪽에는 호수 구역이, 동북쪽에는 초원 구역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서고동저의 중국의 전체적인 지형을 본땄다고 한다. 정원 하나를 만드는 데 이 정도로 디테일이 담겨 있다니 놀랍다. 원래는 산림 구역을 제일 먼저 가려고 했으나, 아직 관광용 카트가 운행하기 전이라 가까운 호수 구역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호수 구역은 다리를 거닐며 8개의 호수를 구경할 수 있었다. 장강 지역(상하이, 쑤저우 쪽)의 유명한 정원들을 본떠서 설계를 했다고 한다. 목적과 콘셉트 면에서 베이징의 이화원과 매우 흡사하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장강 지역이 호수와 정원이 유명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상하이 부근에는 수로가 뚫린 수향마을이 여행지로 인기가 많다.


호수 자체만 봤을 때는 큰 감흥이 없었지만, 이 넓은 호수를 사람의 손으로 지었다고 생각하니 확실히 황제의 위엄이 느껴졌다. 확실히 이런 장대한 건축물은 중국여행의 큰 볼거리이다. (그만큼 사람도 많은 게 단점이지만)



호수에는 직원들이 수시로 배를 타면서 녹조를 건져내고 있었다. 하지만 녹조 라테가 되는 걸 막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많은 중국 사람들이 돛단배를 타면서 호수를 즐겼다. 아마 황제도 이렇게 배를 타면서 신선놀음을 하지 않았을까.



호수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초원 구역과 이어진다. 잔디같이 짧은 풀들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나무들이 듬성듬성 심어져 있었다. 초원 구역은 그냥 잘 정돈된 공원의 느낌이 강했다.



초원 구역을 걷다 보니 유목민의 거처인 게르와 열하라고 쓰인 비석이 보였다. 열하일기의 그 열하인데, 청더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이 비석이 위치한 지점에서 온천이 흐르는데, 이 물줄기가 강을 이루며 청더 시내를 휘감는 강이 된다고 한다.



초원 구역을 다 둘러보고 이제 마지막으로 산림 구역을 둘러보기로 한다. 원래는 입구로 돌아가 관광 카트를 타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피서산장의 규모가 크다 보니 다시 입구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산림구역은 가지 말까도 생각했지만, 꼭 보고 싶었던 풍경이 있어서 그냥 걸어서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걸로 계획을 수정했다.


사실 산림 구역이라고 했지만 동네 뒷산 같은 높이인 데다가 카트를 운행할 정도로 길이 잘 닦여있어 오를만했다. 다만 나처럼 걸어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거의 두 시간을 오르내리는 데 마주친 사람이 고작 세 팀 정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트를 타고 올라가는데, 심심한 건 둘째치고 카트가 너무 자주 왔다 갔다 해서 계속 길을 비켜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만약 다시 간다면 카트를 타던지 아니면 카트가 운행하기 전에 아침 일찍 올라갈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까지 걸어온 게 아까워서 묵묵히 산을 올라갔다. 약 20분 정도를 올라갔더니 산 중턱에 카트가 여러 대 세워져 있었다.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촬영 포인트였다.


저 멀리 중국 전통양식의 탑과 함께 민가가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피서산장 주변에는 여러 곳의 라마교 사원이 있는데, 높은 탑도 아마 라마교 사원 중 하나일 것이다. 산과 어우러진 경치가 일품이었는데, 멀리 있어서 카메라로는 경치가 다 안 담겨 아쉬웠다.



다시 15분 정도 산을 올랐더니 이번에는 산 꼭대기에 세워진 사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샛노란 기와와 붉은 담벼락이 산 속에서도 강렬한 색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확실히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한국의 산사와는 다른 정서이다.


사원의 반대쪽에는 만리장성처럼 외벽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 관광객들이 몰려있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바로 청더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보타종승지묘'이다. 내가 이 산을 올라온 이유도 바로 이 사원을 산 위에서 한 눈에 담기 위해서였다.


소 포탈라궁이라 불리는 보타종승지묘


보타종승지묘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장성 위로 올라가 보았다. 꽤나 먼 거리에 위치해 있음에도 주위의 산과 비슷한 크기라서 더욱 거대하게 느껴졌다. 왜 보타종승지묘가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에 비견되는지 알 것 같았다.  



앞의 아주머니가 갑자기 브이를...
굉장히 컨셉에 진심인 아주머니들


보타종승지묘는 다음날 구경을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몇 장의 사진만 찍고 다시 내려왔다. 이미 왔던 길을 내려오는 것이라 그런지 길이 눈에 익어 훨씬 빠르게 내려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산을 내려오니 한적했던 피서산장이 어느새 여행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피곤함을 감수하고 일찍 찾아온 보람이 있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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