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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피 May 21. 2019

#07. 여행은 항상 진한 여운을 남긴다

다시, 루앙프라방

마지막 탁발 소리


므앙 응오이에서의 마지막 탁발을 보기 위해 6시 반에 눈을 떴다. 많이 피곤한지 도저히 눈을 뜨지 못하는 동생을 뒤로하고 혼자 방갈로를 나서 마을로 향하는 계단을 비척비척 올랐다. 새벽의 므앙 응오이는 한층 더 고요하고, 한적하다. 많은 이들이 아직 잠들어 있는 시간. 


조금은 찬 공기가 감도는 한산한 마을의 끝에서 끝까지 걷다 돌아오는 길, 멀리 보이는 주황빛 옷을 입은 스님들의 모습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500m 남짓한 길의 중간 즈음에 자리를 잡았다. 혹여나 탁발에 방해가 될까 눈에 띄지 않도록 뒤로 물러나 먼발치에 섰다. 마을 주민들의 경건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스님부터 작은 스님까지 줄지어 차례로 탁발을 한다. 마을의 끄트머리까지 갔다가 돌아 나와서는 다시 사원으로 향하는 스님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마을의 아주머니들은 저마다 보자기를 두 손에 들고 종종걸음으로 그 뒤를 따른다.


므앙응오이 새벽 탁발 @여름의 무늬




안녕, 므앙 응오이


다시 보트를 타고 농키아우로, 그리고 루앙프라방으로 돌아간다. 어젯밤 꾸려둔 짐을 마저 챙기고, 머물던 숙소에서 마지막 아침을 먹었다. 잘 구워진 바삭한 토스트에 달디 단 과일을 곁들였다. 아래로는 모닝커피와 색이 같은 커피 빛 강물이 찰랑이고 있었다.


남우 강변 테라스에서 먹는 조식 @여름의 무늬


언제 뿌옜었냐는 듯 아침이 밝아올수록 안개가 걷히고 강물은 반짝이기 시작했다. 마을이 잠에서 깨어나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새벽의 한산함은 물러가고 아침 태양이 활기를 몰고 오기라도 한 듯, 주변에 온갖 소리와 빛깔이 마법처럼 되살아났다.


하루 한 번 운행하는 보트 시간에 늦지 않도록 일찍이 선착장에 도착했다. 출발 시간이 다 되어 이 곳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작은 나무 보트에 올랐다. 짐을 싣고 정원을 채운 보트가 물살을 가르고, 므앙 응오이가 점점 멀어져 간다. 멀리 홈판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안녕, 홈판. 잘 지내야 해. 언젠가 홈판이 원하던 라이브 카페를 차리면, 그때 꼭 놀러 올게.'


여기에 올 때 봤던 마을의 똑같은 선착장 풍경이 떠날 때가 되자 너무나도 달라 보였다. 처음 보는 풍경에서 익숙한 풍경으로, 낯설기만 한 장소에서 내 시간이 고스란히 스며든 장소로. 고작 며칠을 머물렀을 뿐이지만 이 곳은 내게 큰 의미를 지닌 곳이 되었다.


나와 동생은, 아니 이 곳을 스쳐가는 모든 여행자는 이방인일 뿐이다. 길고 짧음이 조금씩 다를 뿐인, 잠깐 머물다 다시금 떠나가는 사람들. 나는 이 곳을 앞으로 평생에 걸쳐도 잊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비록 나는 여기에서 잊히고 말지라도 말이다. 


므앙 응오이의 마지막 모습 @여름의 무늬




다시, 루앙프라방


보트에서 내리자마자 터미널로 가서 곧장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만원이다. 버스 복도에도 사람들이 의자를 펴고 앉았다. 숨 막히는 공간에서 눈을 붙이고 자다 보니 다행히 금세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농키아우 버스 정류장 @여름의 무늬


동생은 내가 자는 동안 이때만큼 내가 부러웠던 적이 없었다고 중얼거렸다. 루앙프라방에 가는 네 시간 동안 동생은 더위와 소음에 거의 한 숨도 자지 못했다고 툴툴댔다. 이럴 때는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잠이 드는 내 몸뚱이가 고마울 지경이다. 


더위에 고생을 한 탓인지 배가 고프지 않아서 식사 대신 시원한 음료와 디저트를 먹기로 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곧장 나선 곳은 조마 베이커리. 여행자들로 항상 북적대기로 유명한 아메리칸식 디저트를 파는 모던한 카페다. 여기에선 달디 단 라오스식 커피가 아닌 우리 입맛에 좀 더 익숙한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조마 베이커리 @여름의 무늬


문득 기시감이 느껴졌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찾아볼 수 없었던 므앙 응오이의 허름한 목조 방갈로에 있었는데. 지금은 루앙프라방의 쾌적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달콤한 케이크를 먹으며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다니. 


그런데 왜일까. 익숙하고 편한 이 곳보다 낯설고 불편한 그곳이 더욱 생각나는 이유는...




저물어 가는 또 다른 하루


일몰을 보기 위해 푸시 산에 올랐다. '푸시(Phu Si)'는 신성한 산이라는 뜻이다. 도시 어디에서나 보이는 푸시 산은 루앙프라방의 중앙에 솟아 있어 지형적으로 신성한 기운이 흐른다. 


정상에 오르니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람들이 한 데 바글바글 모여 있으니 흘린 땀은 식을 줄을 모른다. 단체 여행객들로 가득한 것을 보니 푸시 산이 루앙프라방의 '머스트 씨' 관광 명소 중 하나가 맞긴 맞나 보다. 


루앙프라방 전경 @여름의 무늬


사람들에 떠밀려 정신없이 전망대를 한 바퀴 휘 돌았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루앙프라방의 전경을 구경하고 나니 수십 명의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긴 의심할 여지없이 포토 스팟일 테다. 사진을 찍으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니 대부분이 한국인인 듯했다.


인파들 틈에 자리를 잡는 사이 선명하고 붉은 태양이 메콩 강 위로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태양은 태양 빛을 가루처럼 흩날리다가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타들어갈 듯한 불꽃을 서서히 잠재워갔다. 또 다른 하루가 저물어감을 알리는 신호였다.


메콩 강의 일몰 @여름의 무늬






<여행자들을 위한 작은 Tip>
*므앙 응오이에서 다시 농키아우로 돌아오는 보트는 하루 한 번(9:30) 운행한다. 매표소는 선착장 근처의 닝닝 게스트하우스 앞에 있다.
*루앙프라방에서 메콩 강 너머로 지는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 중 하나인 푸시 산은 일몰 때가 되면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고요한 루앙프라방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새벽에 올라 일출을 감상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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