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크리스마스 마을에서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맞아 멕시코의 크리스마스 마을로 향하는 버스 안이었다. 연휴를 맞아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 틈에서 우리만 이방인이었다. 고향으로 간다는 설렘 덕분인지, 곧 있을 크리스마스로 인한 설렘 덕분인지 사람들 얼굴엔 은은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그 시작이 모호하다. 12월도 되기 전, 연말이 다가오면 들뜨기 시작하는 사람들과 이른 단장을 마친 거리의 분주한 분위기 때문이리라. 덩달아 분위기에 취해 크리스마스를 즐길 줄만 알았지, 문득 크리스마스가 어디서 오는 건지 궁금해졌던 기억이 난다.
"폴라 익스프레스"였던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으레 티비에서 방영해 주는 애니메이션 영화인데, 한 소년이 북극행 특급 열차에 올라 용케 산타가 사는 마을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신나는 모험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소년이 도착한 크리스마스 마을은 크리스마스를 이루는 온갖 마법 같은 상상력으로 가득했다. 그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대체 크리스마스는 누가 만드는 걸까?'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과 자연스레 크리스마스와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다. 아는 사람 하나 없지만 나 또한 고향으로 가는 달뜬 마음이 되어 버스가 출발하는 소음과 함께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왠지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틀랄푸하우아(Tlalpujahua)는 멕시코의 크리스마스 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서는 대를 잇는 가족 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2천만 개의 크리스마스 구체 장식을 생산해 내는데, 이는 세계 5대 생산지 중 하나에 거뜬히 이름을 올릴 만한 숫자이다.
'산타의 작업장(Taller de Santa Claus)' 한 켠에서는 마을의 장인들이 유리 구체를 만드는 데 한창이었다. 테이블 주위로는 유리 구체가 산처럼 쌓여 있다. 판매를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놀러 온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엔터테이닝한 쇼였다.
장인이 불에 달궈 뜨거워진 유리에 빨대를 꽂아 입바람을 후후 불어넣자 유리가 풍선껌처럼 부풀어 올랐다. 작업 중인 장인의 모습은 공기를 입안 가득 머금고 숨을 참고 있는 개구리 같기도, 아주 열성적인 트럼펫 연주자 같기도 했다. 유리에서 꼭지를 똑 떼어낸 구체는 마치 투명한 비눗방울 같았다. 구체의 무게가 굉장히 가벼운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동그랗게 형태가 잡힌 구체는 식히고 굳히는 과정을 거친 후 다른 장인의 손에 넘어가 빨간색으로, 또 황금색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그 위에는 금빛 은빛 가루가 별빛처럼 흩뿌려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디자인이 더해지고 각자의 이름을 새기기도 하면서 이 세상 단 하나의 구체가 되어갔다.
어둠이 내려앉은 산타 빌리지. 릴스와 틱톡 같은 숏폼에서 이 마을이 멕시코의 크리스마스 마을로 알려지는 데 일조한 공간이다. 하지만 실물은 생각보다 작았고, 다소 조악했다. 유럽의 어느 마을을 본떠 종이 판자를 덧대어 만든 종이 집들은 일렁이는 조명 아래 파도처럼 너울댔다. 마치 춤을 추는 것도 같았다.
투박한 스피커는 건전지를 넣으면 노래를 부르는 인형처럼 지글거리는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로 요란하게 캐롤 송을 불렀고, 색색의 불빛이 그 리듬에 맞춰 현란하게 반짝였다. 촌스러운 산타 마을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아니, 실은 흥겹기까지 했다. 이런 크리스마스는 또 없을 거였다.
정해진 시간마다 가짜 눈이 흩날렸다. 눈을 닮은 하얀 스프레이. 어릴 때 많이 했던 거다. 공중에 흩날리는 하얀 거품은 아이들을 들뜨게 했다. 아이들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그것이 물로 만들어진 진짜 눈인지, 화학 성분으로 만들어진 가짜 눈인지는. 하늘에서 내린다는 것과 하얗다는 것, 금세 녹아내린다는 것. 그 세 가지면 충분했다.
가만 보니 신난 건 비단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핸드폰을 꺼내 들고 지금 이 순간을, 신난 아이들의 모습을 담는 어른들의 얼굴엔 함박눈을 닮은 웃음이 걸려있다. 그리고 그걸 보는 내 얼굴에도 함박웃음이 걸렸다. 이로써 증명됐다. 행복한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충분히 전염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추운 밤공기를 가르고 발걸음을 재촉해 숙소로 돌아가는 길, 다 떨어진 물을 사기 위해 동네 구멍가게에 들렀다. 레스토랑이 만들어낸 '크리스마스 디너'라는 이름의 거창한 지출에 수중에는 물 한 병 값이 딱 남아 있었다.
냉장고를 열며 ‘이거 얼마예요?’ 묻는데 아뿔싸, 돈이 모자라다. 역시 동네 구멍가게가 마트보다 비싼 건 한국이나 멕시코나 매한가지인가 보다. 밀려오는 왠지 모를 민망함과 머쓱함에 5페소인 줄 알았다며, 현금이 모자란다며 묻지도 않은 답변을 하면서 집어든 물병을 내려놓는데, 아주머니가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더 필요한 건 없니?
'예????? 그냥 가져가라고요? 거기까진 그렇다 치는데, 더 필요한 건 없냐고요?????'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온 쿨내 나는 친절에 순간 말을 잃고 벙쪄버리고 말았다. 빤히 쳐다보는 아주머니의 시선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더 필요한 건 없다고 팔을 내두르며 인사를 건넸다. 펠리스 나비다드!!! 정말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되세요, 아주머니!!!
가게를 튕기듯 빠져나온 내 한 손에는 마치 선물 같은 물 한 병이 들려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뭔가에 홀린 듯 정신없이 가게를 나서자마자 봇물 터지듯 말이 쏟아져 나왔다. 우린 신이 나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아주머니가 더 필요한 거 없냐고 물었을 때 이거, 저거, 그거요! 했으면 어땠을까 키득대며.
크리스마스에 뜻밖에 받은 아주머니의 호의와 친절은 차가웠던 밤공기를 데워줄 만큼의 따뜻한 힘이 있었다.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에 벅차오르는 걸 느끼며 나 또한 타인에의 나눔을 다짐해 본다. 춥고 깜깜한 밤길을 밝혀주는 은은한 가로등 불빛이 어쩌면 태양빛보다 더 대단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마지막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크리스마스 정신은 살아있다고.
크리스마스가 지난 아주 보통의 월요일.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마을은 언제나처럼의 일상을 되찾았다. 한산했던 거리는 어디 가고 거리 곳곳엔 잡상인들이 똬리를 틀고 앉아 저마다 물건들을 늘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호객 행위를 했고, 가게 주인들은 아침 찬 공기를 가르고 빗자루질하며 손님을 맞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설렘이 가득했던 크리스마스 상점은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폐기 상품이 되어버린 편의점 도시락처럼 한순간 세상의 대접이 달라져 버렸다. 가게에서 틀어놓은 캐롤 송은 설날에 듣는 연말 노래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딱 하루 만인데 마치 철 지난 옷을 입은 마네킹을 보는 것처럼 보는 내가 다 머쓱한 광경이다.
온 세상이 이날만을 바라보고 달린 것 같던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 지나자 마치 그 소명을 다했다는 듯 힘을 잃었고, 꺼져가는 성냥처럼 마지막 빛마저 사그라들고 있었다. 성냥을 다시 켜줄 연료는 내년 이맘때쯤이 되어서야 사람들의 설렘으로 그 에너지가 채워질 것이다.
길었던 기다림에 비하면 하이라이트는 짧고 굵었다.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그 여운이 길다. 그렇기에 그만큼 여운이 남는 거겠지... 헛헛한 기분마저 든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간 것 같아 보이는 이들은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걸까? 아마도 아쉽기도 묘하기도 한 기분을 털어내려 더 요란히 빗자루질을 하고 더 힘차게 아침을 여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