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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피 Jun 18. 2023

멕시코에서 맹그로브 숲을 항해하는 방법

유카탄의 시살에서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한적한 어촌 마을, 시살


유카탄의 수도, 메리다에서 버스로 한 시간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시살(Sisal)이라 불리는 작지만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이 있다. 클럽이나 대형 광장, 고급 레스토랑이나 프랜차이즈 호텔은 없지만 자연 속에서 휴식하며 다양한 종류의 조류를 관찰하고, 수영을 하거나 낚시, 캠핑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아름다운 곳이다.


길바닥이 승차장이고 몇 개의 플라스틱 의자가 놓인 대합실이 전부인 소박한 버스 터미널에 내리자 시골 특유의 정겨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쿠바 아바나에 있는 헤밍웨이가 살았다던 작은 어촌 마을이 떠올랐다. 흙먼지 날리는 좁은 길을 따라 늘어선 단층짜리 건물들 위로 야자수들이 큰 키를 자랑하며 우뚝 솟아있고, 아기자기한 벽화들과 귀여운 가게의 입간판들이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시살의 거리 @숲피


자전거나 도보로 금세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지만, 시살의 해변에는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부두가 있다. 시살 항구는 전성기에는 유카탄 반도 전체의 주요 항구로 작동했으며, 이곳에서 쿠바 하바나로의 첫 수출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보다 더 이전의 아주 먼 시대에는 마야 문명이 거주하는 지역이었기도 하다.


바다가 만들어낸 천연 수영장이 있는 곳


버스 터미널과 식당, 투어사, 기념품 가게 등이 모여 있는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여행자 거리를 따라 걸으면 그림 하나하나에 마을의 깊은 역사가 담긴 조형물이 나오고, 이내 양옆으로 쭉 뻗은 아름다운 해변을 만날 수가 있다. 길을 벗어나자 시야에 곧장 들어오는 탁 트인 해변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눈이 시릴 정도로 맑은 날씨와 그보다 더 맑은 빛을 뽐내고 있는 뽀오얀 바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이었다.


정면에 난 둑을 따라 바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섰다. 한 켠엔 주인을 알 수 없는 보트가 정박해 있고, 몇몇의 아저씨들은 낚시가 한창이었다. 동네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낚시꾼이 뭔갈 낚았다 싶으면 흥분해서 서로를 불러대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시살의 낚시꾼 @숲피


보트들은 바다 위를 부드럽게 유영하고, 아침부터 벌써 물속에 몸을 담근 사람들은 그 안에서 마치 반신욕을 하듯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었다. 실제로 시살의 바다는 수 킬로미터 동안 얕은 수심이 계속될 만큼 굉장히 얕고 잔잔해서 아무리 걸어 들어가도 깊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시살 바다의 투명하고 맑은 물은 정말이지 몇 시간이고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평화로운 시살의 바다 @숲피


시살의 유명한 생태 관광 투어


시살은 생물다양성이 높아 주변에서 서식하는 동식물과 주변을 둘러싼 자연을 관찰하는 생태 관광이 인기다. 종류는 다양하다. 맹그로브 숲을 탐험하고 세노테에서 수영하는 투어에서부터 늪지대에서 악어를 볼 수 있는 투어, 분홍색 플라멩고를 포함해 다양한 종류의 조류를 관찰할 수 있는 투어 상품까지. (참고로 일 년 중 새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시기는 10~11월이라고 한다.) 우리도 때 이른 점심을 먹고 투어에 나섰다.


시살의 투어사 @숲피


오늘의 투어를 함께 떠날 가이드 루이스와 인사를 나눴다. 루이스는 큰 덩치와 두툼한 손바닥이 마치 곰을 연상케 하는 둥글둥글한 사내로, 약간은 수줍은 듯이 허허 웃으며 자기소개를 하는 모습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웠다. 루이스는 물과 과자 몇 봉지가 들어 있는 아이스박스를 차에 실었고, 뒤이어 우리도 툭툭(동남아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륜차)에 올라탔다.


본격적으로 투어를 떠나기 전 들른 곳은 코코넛 나무가 자라는 곳이었는데, 루이스는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뒤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무시무시한 장비를 들고 나타났다. 코코넛을 채집하기 위한 도구였다. 기다란 막대기에 끝에 갈고리 같은 칼이 달려있는 도구는 나무에 달린 코코넛을 떨어뜨리기 위한 용도, 그리고 마체테는 코코넛 껍질을 벗겨 내고 썰어내기 위한 용도였다.


곧장 딴 싱싱한 코코넛을 먹어보는 건 처음이라 흥미로워 하자 루이스가 되려 신이 나서는 갑자기 코코넛학 교수로 돌변했다. 그리고 둥글고 큰 눈을 빛내며 코코넛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익은 것 같아 보이는 초록색을 띄는 코코넛은 안에 코코넛 물이 찰랑찰랑 차 있고, 갈색으로 변한 것들은 안에 코코넛 물이 하얗고 딱딱한 고체, 즉 코코넛 과육으로 변한 것들이라 했다. 금방 잘라낸 코코넛 물은 정말 달고 시원해서 유카탄 지역의 덥고 습한 기후를 견뎌내기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이스는 코코넛 몇 알을 아이스박스에 더 챙겨 넣은 후 툭툭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코코넛의 성장 과정 @숲피


맹그로브 숲을 항해하는 방법


카약이 정박해 있던 곳은 테이블이 몇 개 있고 해먹도 걸려있는 아주 한적한 곳이었다. 카약을 정비하며 떠날 채비를 하는 루이스를 기다리며 멀리 펼쳐진 맹그로브 숲을 바라다봤다. 커피 빛을 띠는 강물 너머로 맹그로브 숲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새 떠날 준비를 마친 루이스가 우릴 불렀다. 차례로 카약에 올라 타자 루이스가 맨 뒤에 선 채로 노를 젓기 시작했다. 카약은 천천히 커피 빛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물은 깊지 않았다. 발을 담그면 종아리까지 올 것 같은 깊이가 계속되었다.


맹그로브 숲의 풍경 @숲피


카약을 운전하는 것은 꽤 요령이 필요한 일이었다. 강바닥에 뿌리를 내린 나무 둥치들이 군데군데 고개를 내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씩 카약이 나뭇가지에 걸리면 루이스가 노를 이용해서 요령껏 빠져나오곤 했다.


드넓은 물길을 가르고 마침내 맹그로브 숲의 울창한 나무가 만들어낸 좁은 터널에 들어섰을 땐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외부와 차단되어 주변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카약이 천천히 물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소리와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풍성한 그늘 덕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맹그로브 숲에는 사방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와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 새들이 우는 소리와 물을 가르고 퍼덕대며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맹그로브 숲의 풍경 @숲피


맹그로브 숲 속의 외딴 오두막


루이스는 복잡한 맹그로브 숲 속 길을 모두 안다는 듯 거침없이 항해하며 우리를 작고 소박한 전망대로 안내했다. 나무로 된 작은 3층짜리 구조물에 다가가기 위해선 물 위를 얼기설기 가로질러 놓은 나무 빗장에 부딪히지 않도록 엎드려서 고개를 한껏 숙이고 지나가야 했다.


맹그로브 숲 속의 오두막 @숲피


배를 정박하고 목조물의 삐걱대며 울부짖는 나무 계단을 조심스레 올랐다. 꼭대기에 다다르니 맹그로브 숲이 발아래 시원하게 펼쳐졌다. 아래에서 보던 것과는 느낌이 또 달랐다. 허공에는 새들이 머리맡을 빙빙 돌고 있었다.


우리는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짭쪼름한 감자칩을 먹으며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루이스는 아까 챙겨 온 코코넛 중 하나를 또다시 잘라 내밀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가 지나온 여정에 대해, 멕시코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에 대해.


안녕, 시살


투어가 끝나고 다정한 루이스는 작별 선물로 마지막 하나 남은 코코넛을 주었다. 바로 뚜껑만 따면 먹을 수 있게끔 그 자리에서 손질까지 마쳐서 말이다. 다음에 오면 꼭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노을 지는 시살의 바다 @숲피


메리다로 돌아오는 길, 석양이 내리기 시작한 드넓은 평원에는 낮게 깔린 나무들 위로 황금빛 태양이 일렁이고 있었다. 해가 길어지고,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이다. 나무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가 바닥을 타고 자라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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