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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십편 May 22. 2023

'영끌' 했는 데 '빚투'도 한 이야기

< 현명한 척 하더니,  >



엄마 손을 잡고 쫄래쫄래 따라갔던 증권사 로비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나의 키가 아주 작고 기억이 또렷하진 않은 걸로 미루어 유치원생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었을 때인 것 같다. 아주 시원한 공기, 엄마가 정수기 앞에 서서 납작한 종이컵을 열어 물을 받아 주셨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있다. 큰 벽면을 가득 채운 시세판까지.


엄마는 어려운 형편에 상업고등학교를 야간반으로 졸업해서 취직을 했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가진 건 옷 보따리 밖에 없이 상경한 아빠를 만나 결혼을 할 때에, 엄마가 모아 놓은 돈으로 집도 사고 땅도 샀다고 했다. 아빠의 벌이가 보통에 못 미치면서  씀씀이 보통을 크게 넘는 악조건 속에서 우리 집이 보통만 하게 버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엄마의 절약과 투자 덕이었다. 주식을 하면 패가망신한다, 한강 가게 된다는 속설이 주를 이루던 시절에도 나는 주식으로 꾸준히 돈을 모으던 엄마를 보아왔다. 



그래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하면 큰일 난다는 것 알았기 때문에 절대 손대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하지만,



2020년 집을 사면서 집값이 오르고 '뭔가 이제 잘 되려나 봐!'하는 착각에 빠진 내 귀에 피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세이렌의 피리가 세이렌이 다수의 어에게 날리는 마수였다면, 이 피리는 주위 다수가 나를 향해 불고 있는 것 같았다.


"요즘 세상에 주식해야 해,  경제 알아야 해, 가만히 있으면 손해야!"


길을 걸어 다녀도 그런 소리가 들리고, 뉴스에서도 유튜브에서도 어디서도 다들 피리를 하나씩 꺼내서 나에게 부는 것 같았다. 홀린 듯이 증권사 앱을 깔았다. 마침 남편 회사의 우리사주를 사기 위해 개설해둔 계좌가 있었다.



처음에는 연습 삼아 수중에 있던 현금으로 시작했다. 누구나 아는 그 시기, 뜨거웠던 상승장에서 투자금이 낮아 수익이 미미하니 답답다. 공부랍시고 조금 하고, 현금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나의 수명을 위해 그때의 세세한 기억을 다 지웠지만... 몇 장 남아있는 사진을 보니 이틀 만에 급하게 돈을 더 뽑는 저 때의 조급했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처럼 내 눈도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을까? 문제는 결과가 좋았다는 데에 있다. 네 달을 종합하니 수익률이 70%였다. 상승장이라 해도 주위 사람들보다 잘하는 것 같았다. 초심자의 행운이 겁을 잃게 만들었다.


      




으쓱으쓱 해져서는 경제 신문과 방송을 보며 노트를 적는 엄마에게 "엄마한테 도달하는 정보는 이미 대한민국 사람이 다 아는 정보야~ 그걸로 어떻게 돈을 벌어."라는 건방진 소리 했다. 엄마도 남편도 그 누구도 내가 빚으로 투자 중이라는 건 몰랐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수익이 난 700만 원을 남기고 원금을 재빨리 갚아야 했다. 이제 없던 700만 원이 생겼으니 그걸 종잣돈으로 불려나가면 되었다. 하지만 몇 천만 원으로 하다가 700만 원으로 하려니 성에 차지 않았다. 집을 사면서 갑자기 늘어난 대출이 자꾸 의식이 되어 급하게 돈을 벌려니 700만 원 종잣돈은 미미하게만 느껴졌다.



코인은, 아무리 살펴봐도 무얼 보고 투자를 해야 할지 몰라 아주 위험한 투기판이라는 생각을 했다. 주식은 투자이지만 코인은 백 퍼센트 투기라고 결론 내리고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다. (이미 내가 하는 주식 양상도 투자가 아닌 투기였지만)







그런 어느 날 회사의 '자녀교육을 위한 강사 초빙 강좌'를 듣다가 귀가 번쩍 뜨였다. 강의를 하던 교수님해마다 출판되는 트렌드에 관한 책의 집필진 중 한 분이셨는데, '자본주의 키즈'에 대한 키워드를 설명하시면서 본인의 제자들이 공부를 해서 코인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는 내용을 말씀하신 것이다. 


융통성이 지나친 편인 나는 코인에 대한 벽을 바로 허물었다. '아! 용기가 없어서 도전을 못하고, 도전을 못하니 돈 벌 기회를 놓쳤던 거구나.'

바로 주식에서 넣었던 돈을 탈탈 털어서 이번에는 더 과감하고 빠르게 코인 계좌를 개설했다.



지금도 이 그래프를 보면 심장이 아프고 떨리, 머릿속엔 꼭 이 구절이 지나간다. 외할머니께서 내게 어릴 때부터 일러주셨던 성경 구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거여!"



욕심과 자만무지의 삼박자가 맞아떨어다.


함정



코인은 24시간 움직였다. 코인을 시작하고부터는 태연한척 하려 해도 1분 1초마다 코인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을 못 자며 육아와 살림과 일을 하려니 피폐했다. 욕망의 노예, 사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조금씩 떠올랐지만 수익률이 높을수록 멈출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주식으로 번 돈을 다 몰아넣고 카드론으로 대출을 더 받아서 넣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의 표정이었을까? "오 나의 수익률!" 하고 눈을 반짝이다가도


'1200만 원이 아니라 1억 2천을 넣었다면 수익이 560만 원이 아니라 5600만 원이었을 텐데'

 

'그렇게 몇 번만 더하면 지긋지긋한 빚을 갚을 수 있을 텐데!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빚을 다 갚았을 텐데...'라고 중얼거렸다. (다행히 내 신용이 그정도로 높진 않았다.)


마침내 내 방에 CCTV를 달아 놓은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대출 한도를 이용해 돈을 몰아넣자 바로 급락이 시작됐다.


이건 시작이었다.



그렇게 남편 명의로는 영끌해서 집을 사고, 나의 명의로는 빚투를 해서 수 천만 원의 빚을 갖게 됐다. 두 가지 모두 나의 선택인 것을, 이제 어깨와 등에 이 무거운 것들을 얹고 살아가게 되었다.

 


카드회사는 서둘러 대출 한도를 낮추고 금리를 올렸고, 카드사를 시작으로 은행들이 일제히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집을 거의 신용대출로 산 우리에게 다각도의 충격이었다. 돌려 막기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 후로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르바이트를 좀 더 열심히 했다는 것 밖에.



결국 빚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팔기 위해 내놓게 되었고, 그때 쓴 글이 이 모든 글의 시작인 Intro다.


https://brunch.co.kr/@flowerstree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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