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와 팬미팅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의 팬미팅
작년 여름 ‘캐럿랜드‘란 곳에 내가 가도 될지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캐럿랜드‘는 세븐틴의 팬미팅 공연의 이름이다.) 요즘이야 많은 아이돌들이 ‘팬미팅‘이라 부르고 ’미니 콘서트’라 쓰는 공연을 많이 하고 있지만, 내 기억 속의 팬미팅은 오빠들이 질문 뽑고 대답하고, ‘여러분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게 팔 할인 그런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 어릴 적의 팬미팅은 노래는 몇 곡 부르지 않고 팬들을 만나는 데에 집중한 그야말로 ‘팬미팅‘이었다. 그래서인지 팬미팅은 내가 가기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뭔가 그 무대 아래의 팬들은 “꺅 오빠~~”라고 외쳐 야만 할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런데 작년 캐럿랜드를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보고 나니, ‘아니 이건 내가 가도 되겠는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예상보다 조금 빠르게 2025년 캐럿랜드 공지를 맞이했다.
공연을 가기로 결심한 또 다른 큰 이유는 나의 유일한 덕메가 한국에 온 것이었다. 그것도 캐럿랜드 시기에 딱 맞게! 우연의 일치이긴 했지만 둘 다 티켓팅에 성공해서 꼭 인천으로 가자. 둘 중 하나라도 실패하면 호텔 잡고 온라인 스트리밍이라도 같이 보자는 결심을 했다. 티켓팅 디데이 이틀 전, 원인 불명의 어지럼증에 시달렸고 꽤 큰 이비인후과에서 가서 몇 시간에 걸쳐 검사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특별한 원인은 없으나 자율신경 불균형이 있다고 하며, 스트레스받지 말고 즐겁게 살라고 하셨다. 병원에선 이게 무슨 소리인가… 매번 원인은 스트레스네… 의사들 너무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그래 재밌게 살자. 하고 싶은 거 다하자.’ 하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티켓팅을 했다. 그리고 또 ‘성공‘을 했다. 그것도 플로어로! 이번 캐럿랜드는 목-금 이틀로 주중이었다. 학생들이나 일정 조정이 어려운 직장인들에겐 어려운 스케줄이었지만, 하루 휴가정도는 자유롭게 협의 가능한 14년 차 워킹맘에게는 육아공백을 줄이며 즐길 수 있는 좋은 스케줄이었다. 일정 덕에 티켓팅 경쟁률도 목요일이 상대적으로 좀 낮았던 건지 고양콘서트 때보다 더 뒷번호의 대기번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플로어에 입성했다. 첫 플로어! 플로어다! 미국에서 티켓팅한 덕메는 2층. 이 정도면 둘 다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2층이라 조금 고민하던 친구에게 직접 가서 분위기를 느껴야 하는 이유를 백개쯤 대며 설득했고 몇 주 뒤 우린 함께 인천에서 진행된 ‘캐럿랜드’로 향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캐럿랜드를 잘 다녀왔고, 이제 여한이 없다.(일단은)
캐럿랜드의 셋 리스트는 지난 10월부터 17 Ritght Here 투어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 캐럿들의 염원을 담은 느낌이었다. 보통 투어의 기본 셋 리스트는 고정이나, 앵콜곡 리스트는 그때그때 공연마다 다르게 진행된다. 신곡 선공개로 진행된 고양콘서트에서는 새로운 앨범의 수록곡 무대를 보긴 어려웠고, 투어 중에 부석순의 앨범이 나오기도 했던 터라, 상대적으로 더 풍성해 보였던 다른 지역의 공연을 보며 그 공연에 간 캐럿들을 부러워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늦덕에겐 늘 과거 곡들의 무대를 실제로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과거 노래 메들리를 해줬던 24년 캐랜이 너무 부러웠다. 그런데 이번 캐럿랜드에서 나의 최애곡 ‘이놈의 인기’를 봤다. 그리고 실은 잘 몰랐던 곡인 ‘let me hear you say‘까지! 정말 이 공연 베이비쇼콜라보다 달콤하잖아. 후배그룹 부석순도 봤고, 용띠형들 다음인 동갑내기 무대도 봤고, 캐럿들이 정말 염원했던 단체 엉팡의 ‘Cheers’까지. 호우의 ‘동갑내기‘ 무대 봐서 너무 좋다고 생각하는 중에 등장한 에스쿱스. 포스가 정말… 진짜 세븐틴과 캐럿들의 총괄리더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정말.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한 멤버들과 함께 하는 엉덩이 팡팡. 이걸 이렇게 글로 써놓으니까 엉덩이 팡팡 좀 이상한 거 같지만… 엉덩이 팡팡 이거 멋있는 건데… 아무튼 내가 느끼기에 이번 캐랜에서 가장 환호가 폭발한 순간 중의 하나였다.
글래스톤베리부터 너무 부러웠던 ‘sos’도, ’headliner’ 무대도 너무 좋았다. 이걸 밴드라이브로 들었어야 하는데 그건 아쉽다. 안 되겠다. 역시 다음 콘서트도 가야겠어. 밴드라이브 또 한 번 들어야 하니까. 다음 콘서트에 가야 할 좋은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그리고 팬미팅에 걸맞게 팬송인 ‘동그라미‘도 같이 불러봤다. 나나나나나나 같이 해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휴지통‘까지 봤다, 원우 잘 갔다 와… 기다리고 있을게… 코끝이 시린 계절에 다시 만나.
캐럿이 아니라면 알아듣기 힘든 셋 리스트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첫 플로어 입성기‘를 써보려 한다. 캐럿랜드에 갔던 3월 20일은 3월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추위와 인천의 칼바람. 미세먼지까지 야외 공연으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오들오들 떨면서 공연을 기다리다 드디어 공연 시작. 예상치 못하게 오프닝을 무대 양 옆에서 도롯코로 등장한 세븐틴. 그런데… 이렇게 가깝다고? 지난번 고양콘서트의 2층 3열도 충분히 가깝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플로어는 다르다. 더군다나 내 자리는 무대에서는 꽤 멀었지만, 도롯코에서는 가까운 자리였다. 내가 있던 쪽의 도롯코에는 원우와 민규, 도겸이까지. 핸드폰을 안 들겠다던 다짐은 오프닝과 함께 무너졌다. 어느 정도였냐면… 첫 곡이 ‘만세’였다는데, 난 ‘만세’를 들은 기억이 없다.
그리고 생각보다 공연 외 콘텐츠가 많았다. 뭔가 야외에서 고잉세븐틴을 보는 느낌이었달까. ‘이렇게 추운 데서 오들오들 떨면서 고잉 보는 게 맞나… 내가 왜 인천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은 마음이 들 때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캐럿들 달래주는 민규. ‘이렇게 많은 캐럿들 모아놓고 게임하겠다고 뒤돌아 서있고 오디오 비게 해서 죄송하다’는 민규 멘트 덕에 모두가 웃음 짓고, 마음이 풀어진다. 센스 넘치는 민규 덕에 지루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즐거움이 가득해진다. ‘이런 티키타카가 팬미팅의 맛이지 ‘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또 이렇게 새로운 팬미팅이라는 문화를 경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2주쯤 뒤 올라온 ’혤스클럽’ 콘텐츠에서 팬미팅과 콘서트의 차이를 묻는 호스트 혜리의 질문에 대한 우지의 답변을 듣는 순간, 좀 더 내가 다녀온 공연의 의미가 명확해졌다. 콘서트는 내가 좋아하는 이들의 멋진 모습을 많이 보는 것이라면, 팬미팅은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걸 더 보여주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이들이 이거 했으면 좋겠어를 더 많이 보는 느낌이라는 것. 기승전결이 있는 하나의 긴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잘 짜인 콘서트보다는 아무래도 팬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려 하다 보니 조금 분절적이고 생뚱맞은 순간이 없지는 않았지만, 콘서트보다 순간순간 더 많이 웃고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에 공연 후 한동안은 캐럿랜드 속의 에피소드들이 떠올라 혼자 웃음 짓곤 했다. 그리고 뭔가 쉬지 않고 달려온 시간의 한가운데에 있던 고양콘서트가 조금 쫓기는 느낌이었다면, 캐럿랜드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느낌이라 공연을 다녀와서도 마음이 좀더 편안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나의 눈 길을 끈 건 호시였다. 원래도 공연에서 날아다니지만, 입대 전 마지막 스타디움 공연이어서였을까 더 많이 날아다니던 내 기준 가장 타고난 아이돌인 호시. 최차애의 개념을 넘어선 호시만의 영역이 있다. 멤버들 전부 한 명이라도 없으면 세븐틴이 아니지만, 호시는 정말 세븐틴의 메인 동력 장치 같다. 어디 가면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는 소리 많이 듣는다던 호시의 말에 우리 딸도 나중에 커서 저런 소리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랑이 캐럿들 덕이라는 호시. 천상 아이돌이다 정말.
춥고 힘든 상황 속에서 장정 열둘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게임하는 걸 보고 있는 게 왜 좋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냥 세븐틴이 모여서 왁자지껄하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에서 힘을 받는 것 같다. 2만 7천 명의 캐럿소녀들과 세븐틴. 서로를 웃게 할 수 있는 사람들 중의 한명일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무대 아래 우리도 그들을 웃게 하고, 무대 위 그들도 우리를 웃게 하고 모두 서로에게 사랑받는 느낌. 이건 그러니까 남녀의 애정과는 다른 종류의 또 다른 사랑이다.
공연 말미 호시가 외치던 ‘영원한 건 없지만 저희 세븐틴은 영원에 도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캐럿들의 염원이 아니었을까. 내 앞에서 해줘서 내가 그걸 생눈으로 봤어… 진짜 믿는다. 호시야. 그리고 난 그 영원을 약속한 세븐틴이 어디에선가 공연을 계속하고 있다면… 거기가 어디든지 일단 함께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 영원 속에서 나는 여전히 소녀의 마음으로 팬이고 싶다. 주책맞게 실제로 10대 소녀가 되어 ‘오빠~‘ 외치겠다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 앞에서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만을 할 수 있는 소녀의 마음이고 싶다는 뜻이다. 인생에 가득한 현실들이 가끔 무너지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도 있지만, 캐럿으로 세븐틴을 보고 있는 시간들 속에선 모두 잊고 웃다가 또 에너지를 잔뜩 받고 현실로 돌아와 내 삶을 잘 살아내야지. 매몰되지 않고 내 삶의 긍정 에너지로 만드는 것. 20년 만에 돌아온 아이돌판에서 내가 이 문화를 즐기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