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Right Here. 끝나지 않은 이야기

반짝이는 점 하나가 될 수 있어 행복했던 그 날의 마무리

by 혜정

학생이라면 복습은 필수, 직장인이라면 프로젝트를 끝내고 랩업(wrap-up) 미팅이 필요하다.

첫 콘서트를 다녀오고, 월드투어 기간 동안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팬들의 사진과 영상을 보며 꽤 열심히 투어를 즐겼다. 직접 간 공연은 고양 첫콘 하나였지만, 캐럿들의 수많은 영상과 사진으로 일본, 미국, 아시아 투어까지 수많은 도시들의 투어들에 마음으로 함께 했다. 그렇게 온 맘을 다했던 17 Right Here 투어는 성황리에 끝났고, 내가 선택한 이 투어를 보내주는 방법은 바로 마지막으로 공연 실황 영화 17 Right Here를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혼자 영화관에 가는 일은 조금의 용기가 필요했다. 어려운 티켓팅으로 ‘혼자‘갈 수밖에 없는 콘서트를 혼자 가는 것과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이 어렵지 않은 영화관을 혼자 가는 것은 조금 달랐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던 시기에 원우가 입대했고 2년 가까이 원우의 무대를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영화를 보고 그날의 기억을 더 간직해두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이렇게 구구절절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해보지만 이유는 하나였다.

나의 첫 콘서트를 다시 보고 싶다.


작년에 ‘Follow Again to Cinema’가 개봉했을 때는 선뜻 영화관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혼자 갈 수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때만 해도 ‘이 나이의 내가 공연장에 가는 게 맞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론을 내지 못했을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공연장에 가지 못했다면 영화관정도는 가도 되었을 텐데 왜 그리 고민을 했나 싶지만, 그때의 나는 그랬다. 이번 콘서트도 영화로 개봉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내 생각보다 개봉일정이 빨랐다. 3월에 이미 캐럿랜드를 다녀온 뒤라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영화를 보겠다고, 주말에 좀 다녀오겠다고 남편에게 말하는 게 조금 멋쩍긴 했다. 하지만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나 랩업이 필요해!’라고 당당히 말하고 동의를 구했다.


그렇게 개봉 첫 주 주말로 17 Right Here 영화를 예매했다. 아이의 문화센터 수업 시간과 겹쳐 예약해 육아공백을 최소화할 생각이었다. 일정이 제한적이었기에 어떤 관에서 볼지의 선택에도 제약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IMAX로 주말 아침 9시 조조 영화를 보게 되었다. 꽤 오랜만의 IMAX를 [17 Right Here World Tour in Cinema]로 볼 줄은 몰랐다. 마지막 IMAX가 레버넌트였던가.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지금 IMAX는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화면으로 하는 랩업미팅은 본공연만큼이나 좋았다. 실은 더 좋은 부분들도 많았다. 콘서트에서는 무대가 멀어 대형 스크린에 비치는 멤버들의 얼굴과 목소리에 집중했었다면, 영화에서는 멤버들뿐만 아니라 무대, 댄서분들까지 디테일 하나하나를 볼 수 있었다. 오프닝곡이었던 ‘독:Fear’에 원우 보느라 댄서분들이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춤추는지 아예 몰랐었는데… 역시 영화 보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했다.


물론 영화 중간중간 감독님의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고자 하는 강한 의지들이 엿보여, 흐름을 방해하는 느낌을 지울 순 없었지만 내가 갔던 첫콘 실황이 담긴 영화라는 것에 심취해 있어, 그런 것들은 조금 눈감아줄 수 있었다. 그리고 도롯코 돌 때..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내가 나왔다. 블러 처리된 그 관객석에 나만 아는 그 위치에 내가 분명히 나왔다. 그 순간 정말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내 앞에 계신 분이 스케치북에 ‘명호(디에잇의 본명)’을 크게 써서 들고 계셨고, 그걸 알아봐 준 디에잇이 우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끄덕이는 그 장면. 그 순간 관객석에 내가 있었다. 내 앞에서 공연 보셨던 그분들도 이 영화 보셨겠지. 그리고 나랑 같은 부분에서 행복하셨겠지. 이런 게 랩업의 맛인가.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나고 받은 특전도 디에잇이었다. 최애가 아니라도 괜찮았다. 디에잇 덕에 나는 영화를 보고 조금 더 행복해졌으니까.

아, 이 특전이란 건, 앨범사면 주는 포토카드랑 같은 맥락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랜덤으로 멤버별 포스터를 나눠주는데, 이걸 또 주차별로 다르게 준다. 1주 차는 멤버별 랜덤이라 11가지 버전이 있었고, 2주 차는 유닛 포스터라 3가지 버전이 있다. 역시 현시점 마케팅의 정수는 K-POP이 확실하다.


1주차 특전인 멤버별 포스터

개인적으로 콘서트에서 너무 좋았던 부분 중 하나가 서정적인 멜로디의 ‘If you leave me‘와 함께한 드론쇼와 [How are you feeling tonight? 아주 NICE]하며 ‘아주 나이스‘로 넘어가는 부분이었는데 영화 버전에서는 그 부분이 나오지 않았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아주 나이스‘와 함께 너무 아쉽다고 생각하던 중 마지막 엔딩크레딧과 함께 등장한 ‘If you leave me.‘ 마지막 곡을 보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정말 이 투어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더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한 Special Thanks to CARAT. 나 또한 이 영화의, 이 공연의 한 부분이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괜히 울컥했다.


아침 9시 IMAX로 시작해, 마지막 SPECIAL THANKS TO CARAT까지

커다란 공연장에서 어차피 스크린으로 봐야 하는데 왜 콘서트에 가는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가서 한번 본 공연을 왜 굳이 영화관에 가서 또 보는 거냐고. 그 영화를 누가 보러 가냐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은 BTS, 블랙핑크 같은 초대형 K-POP 아이돌뿐만 아니라, 트로트 가수부터 버츄얼 아이돌까지 강력한 팬덤을 가진 가수라면 대형 스타디움 공연 후, 공연 실황 영화 개봉은 하나의 패키지가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요 없는 공급은 없고, 이렇게 영화가 꾸준히 개봉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랑 같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사람은 나까지 총 6명이었다. 캐럿인 딸과 함께 온 엄마, 친구랑 같이 온 둘, 혼자 온 친구. 그리고 나까지. 딸이랑 같이 온 엄마를 빼고 4명은 모두 학생들 같았다. 그 친구들이 모두 실제 콘서트에 다녀왔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 좋은 복습이고, 티켓팅을 못해서, 시간적 제약으로 공연을 못 보러 간 사람들에게는 공연을 실제와 가깝게 즐길 수 있는 너무 훌륭한 대체 콘텐츠였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화장실에서 만난 관객들의 얼굴에는 행복과 설렘이 가득했다.


나 또한 영화를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고, 아이와 남편을 만나 점심을 먹는 내내 영화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느라 바빴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이 덕질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어떤 걸까? 내가 찾은 답 중 하나는 바로 이 공연 속에 내가 하나의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이었다. 난 그 공연 속 관객석의 반짝이는 점 하나가 될 수 있었다는 게 나는 참 행복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책임감이 늘어만 가는 30대 후반의 나에게 마냥 즐기기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일이 마냥 좋아서 하던 시절은 지났고,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단 소위 말해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후배들 업무와 마음도 살펴야 했고, 늘어나는 연차와 연봉만큼 책임도 늘어났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편과 둘이 좋아서 한 결혼이었고 둘이 있을 땐 뭐든 할 수 있었지만, 둘에서 셋이 된 지금 하지 말아야 할 일도, 한 아이를 잘 키워내야 한다는 책임감도 커졌다. 둘이서 셋이 되어 행복감이 더할 나위 없이 커진 것과 책임감은 다른 문제다. 아니 행복이 커져갈수록 그 행복을 유지하기 위한 책임감은 더 커져간다. 마냥 내가 좋은 걸 그냥 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났다. 내가 소속된 모든 곳에서 나의 책임감은 조금씩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건 나의 선택이었고 그렇기에 나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덕질은 달랐다.

캐럿의 일원으로서 내가 할 일은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에게 특별한 책임이 지워진다거나 하는 건 없었다. 굳이 나의 책임을 찾자면 팬에티켓을 지켜야 한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그 팬에티켓은 나 같은 캐럿에겐 지키지 않기가 더 어려운 수준이니 예외로 해두자. 난 그저 즐기기만 해도 충분한 그 캐럿의 일원이라는 게, 공연장을 아름답게 가득 채운 캐럿봉 불빛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는 게 행복했다. 책임감이 넘치는 나의 삶에서 오롯이 즐기기만 할 수 있는 일이, 내가 즐기기만 했는데도 고맙다는 말을 듣는 일이 바로 덕질이었다.


처음엔 내가 세븐틴을 좋아하게 된 것이, 캐럿이 된 것이 그저 현실도피 같았다.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각종 책임으로부터 단절된 무언가를 찾다가 스며들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현실도피라기보단 현실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가열차게 달려가는 내 삶의 엔진의 윤활유 같은 존재였달까. 소셜미디어에서 많이 쓰는 육아용어 중에 ‘엄행아행‘이라는 말이 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뜻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우리 딸은 확실히 행복하다. 다섯 살이 된 우리 딸은 여전히 ’음악의 신‘을 제일 좋아하고 ’행복은 부석순‘이라고 한다. 우리 딸의 최애는 민규 삼촌이고, 엄마가 원프인걸 안다. 우리 딸의 눈에 세븐틴을 좋아하는 엄마는 행복해 보였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 행복해진다는 걸 나의 아이도 알았으면 좋겠다.


어젯밤 인형을 좋아하는 우리 딸이 티니핑 인형을 꼭 안은 채로 나에게 귓속말로 “엄마 내가 나중에 세븐틴 인형 사줄게.”라고 속삭였다. 나는 이거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정도면 행복하다.

미니틴 판매 재개되면 꼭 사줘야 해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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