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이 두 단어로 아이의 말은 시작된다. 아이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그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다. 물론 응, 아니 같은 대답이나 까까, 물, 옷 같은 명사들도 배운다. 모두 제 의사를 표시하고 필요를 충족하는 데 긴요한 단어들이다.
그런데 실생활에 크게 필요치 않아도 빨리 익히게 되는 말들도 있다. 역시나 이름들이다. 이제 겨우 몇 마디 말을 시작한 조카가 제 애착인형을 안아주며 토토라고 부르거나 티비 속 만화 캐릭터의 이름을 따라 외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토토, 뽀로로, 에디, 루피 같은 중요치도 않아 보이는 이름들이 이렇게나 일찍 그 어린 뇌에 새겨진다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님의 시 구절처럼 이름을 부른다는 건 그토록 중요한 일인가보다. 어린 조카의 세상 속에는 제가 좋아하는 인형이나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마치 실존하는 친구처럼 소중하게 기억되고 존재해 있음을 그 서툰 명명을 통해 가늠해 본다.
물론 앞으로 점점 더 많은 말들을 익혀나가면서 조카는 보다 많은 대상들과 복잡한 개념들을 명명하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토토나 뽀로로보다 중요하게 인식되는 말들이 아이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되겠지. 때로는 엄마나 아빠보다 더 애착하게 되는 말들도 생겨날지 모른다. 그러다 또 그토록 애착했던 단어들이 무겁고 미워지기도 하여 제 안에 있던 모든 말들이 서로 쾅쾅 충돌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복잡한 말의 세계가 시작되는 지점에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하길. 너는 소중한 누군가를 부르며 말을 시작했다는 걸.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 순간에 너의 머릿속에 남아있을 말들도 누군가의 이름, 이름들일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