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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 Apr 23. 2016

회사와 학교; 학생에서 회사원으로

회사적 인간 되기 #3

학생 때 가장 큰 불만은 시험기간에만 찾아오는 '화창한' 날씨였습니다.

도대체 왜 시험은
꽃피고 단풍 물들 때 보는 거지?


라고 말했던 친구가 떠오릅니다.


그렇습니다.

일 년 중 나들이 가기 가장 좋은 봄. 가을에는 항상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있었습니다.


벚꽃이 만개해서 꽃놀이를 가고 싶을 때면 중간고사가 찾아왔고, 단풍나무가 물들 때에는 기말고사를 준비하러 도서관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밖에서 놀자고 부르는 따스한 햇살을 뒤로 하고 열람실에 들어가며 누리지 못한 이 날씨를 주머니 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한 날 구름에 뿌려 쓰는 상상을 했습니다.


공부하느라 흘려보낸 계절이 그렇게 아까웠습니다.

 

형광등 가득한 도서관에 앉아서 가끔씩은, 시험과 과제 걱정에서 벗어나 화창한 날씨를 만끽할 수 있는 직장인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회사만 들어가면 그동안 즐기지 못한 시간들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회사에는 과제 대신 프로젝트가, 시험성적 대신 인사평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요.  


수업이 끝나도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학생 때와 다르게 회사원은 퇴근만 하면 온전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요. 하지만 과제보다 더 질긴 프로젝트는 제 때 집에 가지 못하게 했고 시험 점수보다 잔인한 인사평가는 인센티브를 결정했습니다.


아침밥을 챙겨 먹는 것보다 칼퇴근하는 것이 더 어려운 회사에서 매일 같이 10시가 지나서야 집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더 늦는 날은 하루를 넘기고 새벽 2~3시가 되어 퇴근을 했습니다.


그토록 고대하던 꽃놀이는커녕 회사에 갇혀 집에도 가지 못하는 신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다음 날, 피곤한 몸으로 또다시 출근해서 일을 하다 보면 모니터 앞 책상에 엎드려 잠깐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막내는 수면실 근처에 가는 것도 괜히 눈치가 보입니다.


그럴 때면 수업시간에 엎드려서 졸았던 기억이 납니다. 늦잠을 자다가 아침 수업을 빼먹은 적도  조금만 아파도 집에서 쉬었던 때도 그립습니다.

회사원이 되니 내 몸하나 아픈 것도 죄인 냥 눈치가 보입니다. 수업 대신 친구들과 돗자리를 들고 한강 나들이를 가던 그때의 자유가 이제는 더 그립습니다.


다행히 주말 출근이 없기에 주말에 밀린 공부를 하던 학생 때와는 달리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행복합니다. 회사원의 자기계발과 취미생활은 다른 세상 이야기 일까요?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먹어도 주말 그 자체로도 설레고 배가 부릅니다.

굳이 계절을 느끼러 여기저기 다니지 않아도 주말은 너무나 짧습니다. 여전히 따뜻한 햇살을 창문 너머로 구경만 하는 게 익숙하고, 화창한 날씨를 쓰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것이 아깝기만 합니다.


학생의 자유로움을 포기한 채 사는 각박한 직장인 세상에는 월급이 있습니다. 그 위로금과 같은 돈으로 저는 부모님께 맛있는 저녁을 사 드릴 수 있게 되었고 새로 태어난 조카에게 귀여운 장난감도 사주는 이모가 되었습니다. 수업을  땡땡이치거나 졸던 때는 받을 수 없던 보상으로 상사의 히스테리와 야근을 이겨냅니다.  

래도 늦은 밤까지 일하다 보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일 당장 그만둘까 싶다가도 이번 달 월급은 받아야지 하며 조금 버티 그래도 퇴직금은 받아야지 하며 1년을, 승진은 하고 나와야지 하며 결국 계속 회사에 출근합니다.

 

회사원이 되어 보니 취업준비생이 좋을 때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그때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지나고 보니 이제는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회적인 관계도 없고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지금 회사에 다니는 것도 당장은 힘든 일이 더 많겠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면 좋았던 시절로 기억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실은 이렇게라도 위로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보는 거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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