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고비에서 결국 발목(?)을 잡히다.
스무번째날.
아침 숙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오늘 넘어야 할 고개가 만만치 않음에 대한 순례객들의 기분이 투영된 것 같다. 오늘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 중에 가장 높은 고개를 넘어야 한다.
다행히 이곳은 고개를 넘기 바로 전 마을이어서 잠깐만 바싹 고생하면 된다. 더 먼 곳부터 걸어와서 오늘 계속 오르막으로 고개를 넘어야 하는 사람들은 더 힘들 것이다. 나는 그걸 방지하려고 어제 길도 좋지 않은 35km를 무리하게 걸었다.
어느 방법이 더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자주 쉬어주는 것과 나중에 몰아서 쉬는 것. 마치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거나 덜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 때 (모두 다 먹어야 한다면) 무얼 먼저 먹는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을 때 무얼 먼저 듣고 싶은가? 와 같이 정답이 있는 게 아니고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취향이 가끔 발목(?)을 잡을 때가 있어서 문제이다. 그리고 그 발목(?)이 진짜 발목일 때는 더 큰 문제이다.
피로가 누적되어서 인지, 이틀 동안 특히 더 무리해서 인지 걸을 때마다 왼쪽 발목에서 이상 증상이 감지됐다. 뼈는 아닌 것 같고 근육의 문제인 것 같았다. 난생처음 500km를 넘게 걸었으니 멀쩡한 게 이상한 거라 생각하고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순례길 출발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고질적인 허리, 무릎, 물집이 지금까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 않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고개를 넘고, 좋지 않은 내리막길이 길어지다 보니 발목이 점점 더 힘들어져 왔다.
길은 최악의 조합이었다. 내리막에, 울퉁불퉁한 바닥에, 돌까지 깔려있었다. 평소에 괜찮던 발목까지 신경 쓰이게 되자 어떻게 하면 힘듦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내 딴에는 나름 진지한 고민들이 절정을 맞이했다.
'보폭을 작게 하고 빨리 걷는 것과 보폭을 크게 하고 느리게 걷는 것 중 어느 것이 에너지 소모가 적을까?'
'신발 바닥에 끼인 돌을 빼는데 쓰는 에너지와 그냥 놔둔 체 걷는 에너지는 어느 것이 더 적게 들까?'
'바닥에 있는 돌을 밟아서 오는 충격과, 돌을 피하기 위해 발을 옮기는 에너지는 어떤 게 더 적을까?'
'이런 쓸데없는 것 연구하는 것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도움이 될까?'
고민하는데 뇌가 집중해서인지 다행히 고통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까지 무리하면 진짜 큰일 날 것 같았다. 오늘 걸으려는 계획보다 일찍 하루를 끝내기로 했다. 길가에 보이는 숙소 중에서 사람들 별로 없을 것 같은 곳을 찾았다. 사람이 없어 좋았는데 주인도 없었다.
문 앞에 적어 놓은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고 기다렸다. 문 앞의 소파에 앉아 있는데 순례객들이 하나 둘 지나간다. 원래 목적지였던 다음 마을이 제법 큰 곳이기 때문에 다들 이곳을 지나쳐간다. 잠시 쉬었더니 다시 걷고 싶은 유혹이 생겼다.
배낭을 다시 메고 10m쯤 걷기 시작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차를 타고 숙소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 때문에 부랴부랴 오신 모습이다. 미안한 마음에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1번으로 체크인을 했다. 조금은 으스스한 이 넓은 알베르게를 나 혼자 쓰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뒤늦게 어르신(?)들이 합류했다.
스물한번째날.
드디어 그분이 오셨다. 기대하지도 반갑지도 않은 손님.
언젠간 만날 걸 알았지만 내심 만나지 않고 넘어가길 바랐던, 더더욱 이제 일주일 남짓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던 손님이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어제저녁부터 다른 날과 달리 통증이 오래가서 마지막 남은 파스 두 장을 아낌없이 붙여 주었던 왼쪽 발목 앞 부위에서 걸을 때마다 통증이 시작됐다. 그래도 지금까지 걸어온 경험에 조금 지나면 나을 수도 있을 거라는 얕은 희망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두 시간을 지나고 나서는 이제 한발 한발 걷는 게 고역이다. 거기에 배낭이 돌덩이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두 시간의 법칙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하필 길에 순례자들도 더 많아 다리가 더 힘들다.
마을에 들러 에너지 보충을 위한 콜라를 충전해 주며 조금 긴 휴식을 취했다. 이곳은 특이하게 콜라를 시키니 홍합을 주었다. 새로운 경험이 주는 마취가 다시 다리를 움직일 힘을 준 듯했다. 돌덩이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내일은 설령 다리가 괜찮더라도 무조건 배낭을 메지 않아야겠다 다짐했다.
평생 매일 아침 느꼈던 유혹인 '오늘 학교 가지 말까?', '오늘 회사 가지 말까?'에 더해 이곳에 와서 '오늘 배낭 메지 말고 보낼까?' 하는 유혹에 내일은 넘어가 줘야겠다고 다짐하며 걸었다.
알베르게에 배낭을 풀고, 리셉션에 내일 배낭 보내려면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같은 방을 배정받은 독일에서 온 한동네 사는 이름도 똑같은 두 친구가 내 다리 상태를 보더니 연고를 건넨다.
무언가 뜨겁거나 시원하거나 해야 약발(?)이 잘 듣는 거라고 길들여진 내게 아무 느낌 없는 약은 왠지 신뢰가 안 갔다. 절뚝거리는 발로 동네에 나가 약국을 찾았다. 그래도 등에 배낭이 없으니 조금 걸을만했다.
약사에게 내 증상을 팬터마임으로 설명을 하고 약을 받아왔다. 내가 유일하게 걱정한 마사지용 약만 아니길 바라며 숙소에 와서 시술을 했다. '이제 곧 뜨거워지겠지?' 하며 기다려도 아무 반응이 없다. 약을 좀 더 사용했다. 역시 아무 반응이 없다.
심지어 약이 냄새도 거의 없다. 스페인어 설명서를 보고 구글에 검색하고 번역해 보았다. 다행히 약은 제대로 받아 온 듯했다.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았다.
독일 젊은 친구들은 저녁 먹으러 나갈 때의 표정을 읽어보니 오늘 늦게 들어올 것 같았다. 이럴 땐 잠이 최고다. 내일 배낭이 과연 내가 원하는 곳으로 잘 배달될까? 하는 걱정과 함께 일찍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