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며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
밤새 열악한 기차를 탄 건 애교이고, 20시간 넘게 버스를 타기도 하고, 낯선 벌판에서 차가 고장 나 막막했던 적도 많았다.
돈을 내고 방을 구했는데 현지인이 안방을 내주고는 저녁이 되자 현지 부부가 나 쉬는데 들어와서 TV를 보며 본인들 볼일을 한참 했던 적도 있고, 우연히 만난 현지인 집에 갔는데 2층의 커다란 집에 가구가 하나도 없는 특이한 곳에서 이틀이나 함께 생활하고 동네 구경 다닌 적도 있었고, 사막에서 며칠을 씻지 못하고 하루 종일 차만 타고 달린 적도 있었다.
힘들고 어이없는 상황이었지만 돌아보면 다 아쉽고 애틋하고 그립다.
그런데 여행의 어려웠던 상황 중에 다시는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상황 중에 1등을 뽑으라면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금방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모로코를 여행할 때였다.
내겐 여러 가지 이유로 특별한 장소였던 모로코의 탕헤르(Tangier, 탠지어, 땅제)에서 여행 중 가장 오래 머물렀다.
탕헤르만을 여행한다기보다는 약간 거점식으로 이용했고 그곳에 머물며 주위의 도시 두 곳을 방문했다.
모로코의 '블루시티 쉐프샤우엔'과 '화이트시티 아실라'이다.
먼저 쉐프샤우엔을 갔는데 내 여행 중 아주 드문 일인 뭉기적대다가 버스를 놓쳤다.
고속버스 같은 것이었는데 다음 차와의 텀이 너무 길어서 로컬 버스에 도전했었다.
올 때는 고속버스를 타고 잘 돌아왔다. 로컬 버스는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지만 굳이 나서서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침에 약간 뭉기적거리다가 쉐프샤우엔 가는 8시 버스를 놓쳤다.
다음 버스는 12시라는데 이 버스가 제일 좋은 버스인데 너무 기다려야 한다.
할 수 없이 로컬 버스에 도전..
현지인들 사이에 끼어서 샤우엔으로 가는 중.
버스 냄새와 잡상인 아저씨의 끝없는 아랍어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2015.2.17 버스 안에서의 메모
그래서 아실라(Assilha)에 도전할 때는 시간을 잘 맞춰, 아니 평소대로 아주 여유 있게 터미널에 도착했다.
쉐프샤우엔과 달리 아실라는 기차를 타고 갈 수도 있었고 사실 그게 더 확실했는데 지난번 실패를 만회도 하고 결정적으로 버스터미널이 기차역보다 많이 가까웠다.
우리나라에는 잘 없는데 땅이 넓고 장시간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곳에 있는 버스는 구조가 좀 다르다.
2층 버스의 제일 앞자리는 버스기사가 1층에 있기 때문에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서 최고의 자리이다. 단층 버스 중에도 짐을 많이 싣기 위해 버스기사가 아래에 있고 승객이 타는 곳을 높게 해서 마치 2층 버스 같은 구조가 있다.
그날 아실라에가는 버스가 그랬다.
당연히 일찍 도착한 나는 맨 앞의 명당자리를 차지했다. 좌석번호가 없어서 아무 곳이나 않는 구조였다.
나보다 먼저 온 현지인 아저씨가 1번 자리, 나는 2번 자리였다.
출발하려면 30분이나 남았지만 자리를 뜨면 좋은 자리를 빼앗길 거 같고, 가방으로 찜해 놓고 나갈 배짱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1번의 아저씨와 더듬더듬 짧은 대화들을 했다.
그렇게 한 5분쯤 지났나?
발밑으로 무언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바퀴벌레'였다.
1번 아저씨도 보았는지 웃으며 슬쩍 발로 잡아주셨다.
잠시 후 두 마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후 버스 앞 유리 틈에서도 바퀴벌레들이 한두 마리씩 기어 나왔다.
바닥에는 이제 세어보려면 자꾸 움직여서 헷갈릴 정도의 바퀴들이 돌아다녔다.
갑자기 뒤에 앉은 사람이 내 어깨를 쳤다.
기분 나빠서 확 돌아보니 바닥을 가리킨다. 내 어깨 위에 있던 놈(?)이란 걸 확인 시켜주었다.
이제 3번 4번 자리의 바닥에도 눈에 선명하게 기어 다녔다.
여행과 인생에서 내가 생각하는 법칙이 하나 있다.
'관성의 법칙'이다.
어딘가를 여행하거나 무슨 일을 하게 될 때 항상 시작 전에는 계획을 세우고 위험에 대비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면 미리 생각했던 최종 라인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이전까지 달려오던 힘에 의해 넘어버릴 때를 말한다.
다행히 아무 사고 없이 마무리된 후 이성이 돌아오고 나면 그제서야 그때 내가 왜 그랬지? 왜 그리 무모했지? 하는 상황들을 말한다.
이때의 상황도 그랬다.
바퀴벌레가 이렇게 많이 나왔으면 바로 포기하고 다른 대안을 찾았어야 하는데 그때는 그런 대안을 생각 못 했다.
전에 버스를 놓친 기억도 있고, 여기까지 와서 다시 버스를 못 타면 왠지 그냥 모로코에 진(?) 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깝지만 2번 자리를 포기하고 중간쯤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는 아직 앞자리만큼 심하지 않았지만 드문드문 바퀴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잠시 후 이제 바닥은 양반이고 의자 위를 자유롭게 누비는 모습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특히 빈자리는 심했다.
의자에 등을 기대지도 못하고 엉덩이는 아주 살짝만 걸치고 있다가 결국 버스 밖으로 나갔다.
다행인 건 사람이 많지 않아 출발하기 바로 전에 타고 자리 걱정은 안 할 것 같았다.
잠시 후 버스 안에 있던 히잡을 쓴 여자들이 하나 둘 내리다가 몸을 털고 옷을 털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들도 못 견딜 정도인걸 보면 지금 이 상황이 아주 평범한 상황은 아닌듯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와중에 우리의 1번 아저씨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셨다. 존경스러웠다.
이 글의 제목을 '조의 버스를 타다'라고 지은 이유가 있다.
90년대는 비디오테이프의 최전성기였다.
비디오 가게에 가면 당시 극장에서 유명했던 영화들이 개봉이 끝나면 출시되어 인기를 끌었지만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았지만 비디오테이프로만 출시돼서 인기를 끈 영화들도 있다.
그런 영화들은 친구들의 입소문이나 비디오가게 사장님들의 추천을 통해서 인기가 상승했다.
그중에 '조의 아파트'라는 영화가 있다.
아마 그때 당시 비디오 가게를 자주 들락거렸다면 다 알 수 있는 영화이다.
시골에서 뉴욕에 온 시골뜨기가 집을 구하는데 그곳이 바퀴벌레들의 아지트였다.
거기에 사는 바퀴벌레들은 말도 할 줄 알고 티비도 보고 암튼 사람과 거의 같은 생활을 했다.
개체수도 워낙 많아서 뭉쳐서 무언가를 잘도 해냈다.
결국 바퀴벌레는 악역이 아니어서 주인공을 도와준다는 그런 얼토당토않은 코미디였다.
바퀴벌레를 극도로 싫어하고 징그럽고 잔인한 거 잘 못 보지만 나름 바퀴벌레들의 행동이 웃겨서 그래도 재밌게 봤던 영화이다.
'조의 아파트'를 보았다면 그게 버스로 옮겨 왔다고 상상하면 딱이었다.
속편 '조의 버스'였던 셈이다.
그렇게 버스 출발 전까지 밖에서 대기하다가 기사 아저씨가 출발한다고 할 때 올라탔다.
여전히 바닥에는 바퀴들이 기어 다녔지만 최대한 없는 뒤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완전히 의자에 앉지 못하고 아주 살짝 엉덩이만 걸치거나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있었다.
잠시 후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버스가 달리면서 흔들리기 시작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마치 영화의 CG를 걷어낸 듯 점점 사라지더니 감쪽같이 없어졌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서 편히 앉아서 가지 못했지만 얘네들도 나름 룰이 있었던 같다.
진동이 심해지면 다들 숨었다가 조용하면 나오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정말로 '조의 버스'였던 것 같다.
가장 다행인 건 '아실라'는 탕헤르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었다.
아실라에서는 나 혼자만 내리고 나머지 승객들은 계속 버스를 타고 갔다.
왠지 지옥을 나만 빠져나온 듯 미안했다.
겨울의 아실라는 정말 황량했다.
바다를 앞에 두고 하얀 벽과 좁은 골목을 가진 아실라의 매력 포인트 메디나에는 사람 구경을 할 수 없었다.
유일하게 모로코 현지 사진 동호회 같은 몇 명이 모두 DSLR을 들고 여기저기서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버스에서 하도 놀란 가슴은 여전히 진정이 되지 않았는데 마을에 사람마저 없어서 긴장이 늦춰지지 않았다.
결국 카메라는 꺼내지도 못하고 핸드폰으로만 급하게 사진을 몇 장 찍고 돌아왔다.
올 때는 도저히 버스를 탈 용기가 없어 한참을 걸어 기차역으로 갔다.
덕분에 숙소와는 좀 멀지만 탕헤르 기차역에서 도착해서 일부러 찾아오기는 멀지만 기차역에서는 가까운 마음의 안정을 주는 음식 맥도날드 햄버거로 하루의 긴장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