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옥수수 Sep 29. 2024

엄마의 다림질

누군가 나를 위해 다림질을 해준다는 건

간절기가 되면서 긴팔 남방을 꺼내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스팀다리미로는 도저히 펴지지 않는 소재의 남방이었다.

지난주 친정에 갔을 때 엄마한테 손다림질을 해달라고 했다.


바로 다림판을 꺼내서 다려주는 엄마다.

유독 귀여운 엄마의 뱃살과 팔뚝살을 구경하며 반려견과 놀고 있었다.
별 거 아닌 일상인데 이런 다림질을 엄마니까 해주지, 누가 나를 위해서 해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42살, 엄마는 꽃다운 청춘에 이혼하고 홀로서기를 하셨다.
애 셋을 혼자 키우면서도(아빠도 양육비를 주긴 하셨다) 부지런히 교복을 다려주셨다.
어려워진 형편에 기본적인 의, 식, 주는 최대한 지켜주려고 노력하신거다.

백화점에 가서 옷을 샀던 생활은 없어지고, 교복 하나 사기 빠듯해졌다.
그래서 엄마는 다림질을 더 열심히 하셨나 보다.
결손가정 소리, 아빠가 없어서 저러지 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고 싶다던 엄마의 마음이었다.


출근하기 전에 늘 요리를 해놓고 가셨던 엄마.
오므라이스, 김치찌개에 계란말이, 제육볶음과 무생채 등등 우리 삼 남매는 눈뜨자마자 주방으로 먼저 가서 오늘의 요리를 확인하곤 했다.

그랬던 엄마는 본인의 대단했던 과거(?)는 싹 잊고 출퇴근으로 피곤할 자식들을 걱정하신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가까운 사람 중에 한 분이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고 없으시다.
내 꿈에 그 분과 나, 몇 명의 사람이 등장했다.


갑자기 엄마가 돌아가셨나? 그런 내용이었는데 그때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덮이면서 '엄마가 없으니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라는 막막하고 두렵고 슬픈 감정이었다.

꿈에서도 그분은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오지랖 넓게 공감하며 깼다.

여느 모녀처럼 서로 답답하고 짜증 날 때도 있다.

지난번엔 생리 전에 극도로 예민하게 굴어서 엄마가 심하게 불편해하셨다.

하지만 이 모든 총합의 감정이 얽혀 있는 게 엄마와 자식 아닐까?


누군가 나를 위해 다림질을 해준다는 건 잿빛과도 같은 인생을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으로 칠하게 만들어주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그런 귀찮은 수고가 응원이고 사랑이라서 오늘도 행복한 하루가 된 것 같다.


엄마는 역시 다림질의 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