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하 Dec 24. 2019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이중성

「한국 통일과 주변 4국의 겉과 속」서평

 한국의 통일에 대해서 그 주변 국가들은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저자는 한국의 주변 4국이 한국 통일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주장하며 국제정치의 기본구조에 대해 설명한다. 역사가 카(E.H.Carr)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비교하며 정치는 이 둘의 숙명적인 갈등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지식인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 도덕률은 정치적 당위와 목적과 연관되며, 이는 이상주의와 연관된다. 반면, 관료들이 직시하는 정치적 현실은 그를 분석함과 연관되어있으며, 이는 현실주의와 연관되어있다. 그가 주장한 국제정치는 정치적 현실과 당위적인 이상을 동시에 견지해야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현실주의’는 국제정치를 설명하는데 있어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된다. 우선, 국제정치의 행위 주체는 ‘국가’이며, ‘국가’는 국제적 행위를 수행하는 핵심 단위가 된다. 국가들이 모여 만드는 ‘국제체계’는 질서가 없기에 아나키즘(무정부주의)적인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이 특징은 자국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서 오는 갈등에서 나온다. 각국은 자국의 이익추구만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 때 국제관계에서의 권력은 바로 국가의 이익이며, 이는 국가가 자국중심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


 권력은 무한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각국은 제한된 권력을 갖기 위해 투쟁한다. 이와 같은 권력투쟁은 국가를 움직이는 인간의 본성으로 비롯된 것이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각국의 패권을 갖기 위한 권력투쟁은 국제정치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 권력투쟁에서 이긴 국가는 국제관계에서의 세력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패권을 갖게 되며, 이 패권국가가 타국을 정책을 통해 제한함으로써 국제정치의 중심에 서게 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정말... 어떻게 이런 나라가 있나 싶을 정도로 특이하고 불쌍하다. (주변 국가 강대국 파티)

 

저자는 한국의 통일에 대한 4국의 이중적 태도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대외정책과 한반도 통일에 대한 태도를 분석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현재 패권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선호하며 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한반도의 통일은 국제관계에 여러 변수를 가지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의 통일을 반기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그것이 미국의 국익에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통일이 된 상황조차 미국은 자신이 주도하려 할 것이다. 과거 미국은 자국의 중요한 국익이 관련될 때에만 국제 문제에 개입하겠다는 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2001년에 일어난 9·11테러 이후, 미국은 자신들의 자리를 넘보는 나라가 없게 하겠다며 ‘일극세계(a unipolar world)’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은 여전히 패권국가이며, 동북아시아에 대한 패권 또한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통일이 된다면, 통일 이후 동북아의 패권은 여전히 미국이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미국의 입김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은 예전부터 줄곧 한반도를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요충지라고 생각해왔다. 그렇기에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한반도는 미국이 세계적인 경찰로서의 기능을 완수하기에 알맞은 지정학적 위치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주변국이 열강으로 둘러싸인 한반도는 분단이 되었다는 이유와 상대국이 사회주의 체제를 채택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제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나라의 힘이 약한 시점에서 기존의 질서를 바꾸고자 할 때 열강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한반도의 통일은 열강들의 국제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그 변화는 열강의 이익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국가의 이익과 연관된 문제라면 각국은 치열하게 손익을 계산해 한반도의 통일이 약인지 독인지 판단할 것이다. 저자는 공식적인 국제적 행사나 외교문서에서는 세계 평화와 안보를 주장하며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할 수 있지만, 그들의 속내는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통일이 된다면 미군이 한국에 주둔할 명분이 소멸된다. 중국은 통일 시 미국이 동북아에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할 것을 분명 염두에 둘 것이다. 일본은 통일 시 한국이 핵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경계할 것이다. 러시아 또한 중국과 일본이 통일을 반대하는 이유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반대할 것이다.


 이 책은 2006년에 출판된 책으로, 현재 우리나라와 주변국의 국제적 상황을 생생하게는 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2019년 현재 이뤄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나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예전보다 더 악화되는 상황과 같은 사건들은 이 책에 나와있지 않다. 그렇지만 북한이 여전히 군사적으로 도발하고 있는 사실, 그리고 미국이 여전히 세계의 패권국가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지만 미국을 따라 일본이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패권국가가 되려고 하고 있으며, 현 정부는 그에 저항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미국과 일본이 생각보다 가까운 협력관계에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한반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다른 나라와 여러 전쟁을 거쳤고, 열강과 불평등 조약관계를 체결했으며, 가까운 나라의 식민 통치를 받은 전력이 있다. 또, 나라의 힘이 강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변국이 열강으로 둘러싸인 환경은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 철저히 국익에 따라 움직이는 나라들에게 둘러싸였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을 이야기 할 때 현실적으로 주변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패권국가는 변화를 싫어하고 현상유지를 원하기 때문에 통일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통일을 강력히 추진한다면, 주변국의 정치적 제재를 비롯한 각종 분야에서의 제재는 더더욱 심해질 것이며, 이는 결국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 글은 통일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목적의 글이 아니다. 다만 통일에 대해 주장할 때 주변국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불이익,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함을 주장하는 글이다. 한반도 통일에 대해 주변 열강이 지닌 ‘이중성’과 그 이유는 결코 우리가 무시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가 아니다. 주변국의 지지와 협조를 얻을 수 없는 통일은 안타깝게도 한국에게 독이 될 것이며, 이는 국민들의 생활에 큰 타격을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도서 선정 이유

 2018년 초에 미국으로 해외연수를 갔다 왔다. 그 연수에서 애리조나의 한 고등학교(플래그스태프에 위치한 코코니노 고등학교, https://www.fusd1.org/chs)의 사회 수업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곳에서 내가 참관한 학급의 담임 교사(사회 과목 교사) 분으로부터 한국에 대해 미국 학생들이 궁금한 점들을 질문으로 받았다며, 혹시 그에 대한 답변을 교실에서 발표해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선뜻 요청을 수락하고 미국 고등학생들이 한국에 대해 궁금한 점을 적은 질문지를 받았다.

학생들로부터 전달받은 질문지의 일부. 주로 남한과 북한의 분단에서 비롯되는 문제에 내용이 치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랐다. 미국 학생들이 한국에 대해 궁금한 점은 대부분 남한과 북한과의 관계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학생들은 북한의 ‘김정은’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몇몇 학생은 그런 나라가 바로 옆에 있으면 엄청 무서울 것 같은데 북한이 두렵지 않냐며 나의 기분이 어떤지 묻기도 했다. 트럼프의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학생도 있었다. 내가 놀란 점은 미국 학생들이 남한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점이 북한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치중되어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남한과 북한과의 분단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문제를 한국의 가장 큰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미국의 언론이 남한을 어떻게 비춰주는지, 그리고 미국인들이 북한 문제에 대해 느끼는 이상한(?) 책임감을 그 때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단순히 분단 문제로부터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미국인들은 사실 한국인인 나에게 궁금한 것보다, 자신이 미국인으로서 국제적으로 행동할 책임이 무엇인지 알고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국 현지에서 느낀 분위기는 그들은 굉장히 단단히 뭉쳐져 있다는 것이었다. 다민족 국가이지만 ‘미국인(American)’이라는 단어 아래 뭉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여러 국제적 문제에 대해서 도의적 책임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나로 뭉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을 학교에서 생생히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충격이었다. 패권국가로서의 미국은 학교 교육에서부터 나라가 가진 권력을 유지할 기반을 갈고 닦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 한국을 비롯한 미국보다 힘이 약한 여러 나라들은 국가적 과업이 그저 국가적 과업이 아니라 강대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국제적 과업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현실을 두고 통일이라는 문제를 직시했을 때, 우리가 흔히 주장하는 통일의 명분들(한민족 통일론 등)은 그런 현실의 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명분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는 국력을 키우거나, 열강의 힘을 어느 정도 빌릴 수 밖에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국가는 국익에 따라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각 나라의 이익과 손해를 고려하지 않으면 실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따라서 국가 간 힘의 역학관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통일 문제를 비롯해 앞으로 살아가면서 일어날 여러 문제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미래의 한국을 결정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직업인과 좋은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