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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하 Jan 26. 2020

생애 첫 홈스테이 후기

홈맘(Home Mom)과 성향상 잘 맞아서 행복했던 2주

홈스테이(Home Stay)는 처음인 쪼렙 유학생

홈스테이는 외국 유학생이 그 나라의 가정집에서 정해진 기간 동안 살면서 언어와 문화를 직접적으로 배울 수 있는 숙박 형태이다. 나는 아일랜드에서 2주 동안 체류하면서 학교에서 미리 정해 준 나의 홈스테이를 집으로 삼고 학교와 시내를 왔다 갔다 했다. 학교 측에서 홈스테이 가족에게 아일랜드로 떠나기 전 이메일로 간단한 자기소개와 홈스테이에 언제쯤 도착할 것 같은지 등을 보내라고 해서 간단하게 이메일로 인사를 전했다.

명랑한 TMI와 자기소개로 점철되었던 나의 이메일...
그리고 나의 홈맘 Anna의 시크한 답장

다른 친구들은 홈스테이로부터 이메일 답장을 받았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나에게는 출국 당일까지 이메일로 답장이 오지 않았다. 괜히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바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별로 개의치 않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아일랜드에 도착한 당일, 메일로 홈맘(Home Mom, 홈스테이에서 나를 챙겨주는 엄마 같은 존재)에게 환영한다고 답장이 와 있었다!


더블린 공항에 오전 9시 반쯤 도착했는데, 홈스테이에 들어가기로 한 시간인 정오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서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럴 경우, 홈스테이에 미리 전화나 연락을 취해서 도착 예정시간보다 더 빨리 들어가도 되는지를 물어보는 방법이 있었다. 홈맘과의 전화 통화는 나의 아일랜드에서 첫 영어 사용 순간이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고, 영어 패치가 한참 안 되어서 그런지 영어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영어 안 쓴 지가 엄청 오래되어서 그런지 한국어로 무엇을 말할지 생각 후 그것을 영어로 바꾸고 천천히 말하는 수준...^^) 전화를 받은 사람은 나의 홈맘이었는데, 생각보다 목소리가 훨씬 더 걸걸해서 처음에 남자인 줄 알았다(!) 너무 놀랐지만 정신없어서 12시보다 빨리 들어가도 된다는 허락만 맡고 전화를 황급히 마무리했다.

홈스테이로의 첫 입성, 그리고 운이 좋았던 나...

나의 홈스테이는 더블린 시내(City Centre) 중심으로 왼쪽에 위치한 마을에 있었다. 더블린 공항에서 나의 홈스테이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고, 중간에 1번 버스를 갈아타야 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무거운 대형 캐리어를 이끌고 더블린에서의 첫 버스를 탔다. 갈아탄 40번 버스를 타고 천천히 내 홈스테이가 있는 핑글라스 마을로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홈스테이에는 홈맘 Anna와 그녀의 딸 Sandra 가 나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12시 전에 도착할 것 같다고 전화했는데 초행길이라 12시 반에 도착을...ㅎ) 처음에 당황했던 건, 유럽을 비롯한 서양권 국가에서는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유럽 내 가정 집에서는 신발을 벗지 않는다는 것! 무의식적으로 신발을 벗으려고 하는 나에게 Anna는 여기서는 신발 벗지 말라며 그냥 들어오라고 했다. 


그렇게 들어간 나의 홈스테이 가정집은 작았지만 소박하고 아늑했다! Anna는 거실 소파에 앉으라고 한 뒤, 마실 거 필요하냐고 물었다. 나는 너무 목이 말라서 물을 달라고 했는데, '오우, 겨우 물이야?' 하면서 생수 물을 내주셨다. 처음에는 뭔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Anna 네 홈스테이는 물, 각종 탄산음료, 커피, 차 등 모든 음료들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 제공해주는 집이었다. 이것이 다른 친구들의 홈스테이와 많이 다른 점이었다. 음료수 좋아하는 나로서는 너무나 감사하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부분...♡

2주 동안 내가 생활한 나의 보라색 방! 침대 옆 탁자위에 내가 처음 마신 생수 통이 올려져 있다.

Anna, Sandra와의 인사를 마친 후, Anna는 2층에 위치한 앞으로 내가 생활할 방을 보여주었다. 보라색 인테리어로 된 나의 방... 방 자체는 굉장히 깔끔하고 좋았지만 생각보다 유럽은 훨씬 추웠다. 공기가 정말, 정말, 정말 차가웠다. 집에 있는 전기장판과 탄소매트가 아득하게 생각났지만, 비행기에서 거의 못 잤던 터라 대충 씻고 쓰러져 잤다. 저녁 먹기 전까지 기절한 듯이 계속 자다가 오후 6시 40분쯤에 일어났다.

맛있었던 아일랜드 더블린에서의 첫 저녁 식사! Anna가 만들어 준 치킨 파스타와 홈메이드 티.

1층 거실로 내려가니 Anna가 만든 치킨 파스타와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맛있게 냠냠하면서 아까 집에 도착해서는 정신이 없었던 터라 제대로 보지 못한 것들을 그제야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그냥 막 꺼내 마셔도 된다고 했던 생수와 각종 탄산음료들! 덕분에 2주 동안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앞으로의 홈스테이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들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 홈스테이는 집 열쇠와 방 열쇠를 모두 주셨는데, 모든 홈스테이가 집 키와 방 키를 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홈맘이 집에 없을 때 내가 집에 들어가야 할 경우가 분명히 생길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집 열쇠와 방 열쇠는 정말 필수적... 잃어버리지 않고 2주 동안 잘 간직하며 생활할 수 있었다!


나의 홈스테이의 경우, 내가 생활하면서 지켜야 할 세부적인 규칙들은 별로 없었다. 아니, 거의 없었다고 해야 맞는 것 같다. 그래서 2주동안 정말 별 다른 제약 없이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모든 홈스테이가 이렇게 자유로운 분위기인 줄 알았는데, 또 그건 아니었다. Anna의 방식이 자유 방목형 타입이었다면 다른 친구들의 홈스테이는 일정한 규칙 같은 것이 있는 듯했다. 


자세하게 얘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홈맘이 저녁을 같이 먹으려고 친구가 귀가하길 기다린다던가, 화장실에서 샤워할 때 지켜야 하는 룰이 있다던가, 다 먹고 나서 설거지는 자기가 해야 한다던가... Anna는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 빨래를 강요하지 않았고, Anna는 그것들은 자기가 할 일이니 그냥 설거지거리에 물만 담가 놓으라고 하거나 빨래를 세탁기에 넣어놓으라고만 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Anna 그녀는 최고의 홈맘...

홈맘과 '성향상 잘 맞는다면'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
사진을 보더니 한국에 있는 진짜 엄마(ㅋㅋㅋ)가 아일랜드에 있는 동안 잘 먹고 다녀서 먹는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고... 인복과 먹을 복을 타고난 나 ^-^

홈스테이에서 아이리쉬 티 만드는 법을 홈맘에게 배웠고, 한국에 와서도 주구장창 그 방식으로 아이리쉬 티를 만들어 먹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저녁마다 TV에 틀어져 있던 아일랜드 공영방송 RTE 뉴스, 그리고 아이리쉬 악센트가 신기했던 아일랜드 드라마, 국민 가족 퀴즈 쇼... 홈맘은 TV를 보는 와중에 정말 엄마처럼 학교 어땠냐고 물어보고, 선생님은 어떻냐, 친구를 사귀었는지 등등 여러 가지를 물어봐주었다. 또 나는 솔직하게 거기에 대답하고... 홈맘의 성격이 워낙 솔직하고 꾸밈이 없던 터라 나도 더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영어!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오랜만이어서 처음엔 영어가 너무 어색하고 괴상한 문법의 영어가 나오기도 했지만, 2주 차가 되니 이젠 물어보고 싶은 거, 말하고 싶은 것의 90%는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가 편해졌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새로운 사람들에게 말을 잘 못하는데, 영어로는 괜히 한 마디 더 걸어보고 싶고... 와플을 먹으러 우리 집으로 온 Anna의 손자에게 코리안 스낵 감자깡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한국으로 떠나는 날 Anna와 찍은 사진! 사진 찍자고 하니까 Anna: '나 화장 안 했는데...' 나: '저도 안했어요' Anna:'그래 그럼ㅋ' (찰칵)

아일랜드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니, 더블린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홈맘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럽 가정집이 추웠던 것만을 제외하면(사실 모든 집이 그러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첫 홈스테이는 정말 편하고 좋았다.


Anna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앞으로 한국에 돌아가서 뭘 할 거냐고 물어봤다. '글쎄요... 생각해봐야죠...'라고 웅얼 중얼 대답하는 나에게 Anna는 자신감을 좀 가지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약간 한 대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래, 지금까지 잘했는데. 완전 다른 나라에서 영어로 생활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으면서!!! 맞아, 자신감을 좀 가져도 되지 않을까, 타지에서 2주 동안 별문제 없이 잘 적응하고 지냈으면서 왜 내 미래에 대해서는 잘 풀릴 거라는 확신이 별로 없었는지.

아일랜드를 떠나던 날 날씨가 너무 좋았다. Anna는 공항으로 떠나는 나를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었는데, 이 때 뭔가 아쉽고 슬퍼서 눈물이 살짝 났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은 한국에서의 내 가족, 친구들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나를 바라봐주는 것 같았다. 새로운 사람들은 나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만의 시선으로 나를 좋게 봐주었고, 나의 미래를 응원해주었다. Anna가 말해준대로 나 자신에 대해서 자신감을 좀 가지면서 2020년을 살아보아야지! 한국에서 글을 쓰는 지금 아일랜드의 공기와 분위기, 그리고 진짜 이상했던 날씨가 살짝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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