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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Jun 24. 2023

소나기 맞으면서도 행복했던 파리

팡테옹이 가고 싶어 간 파리

 시험이 끝나면 방을 청소한다. 노력했던 흔적들, 돌보지 못했던 것들을 치우다 보면 끝났다는 해방감과 다시 무언갈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또한 멀리 떠나거나 긴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선 할아버지 산소에 간다. 가족들과 함께 산소에 갔던 행동이 어느새 머릿속 한 편에 박혔는지 기말고사와 자격증 시험을 마치고 방 청소를 한 뒤, 문득 누군가의 무덤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탕달이 묻혀있는 몽마르트르 묘지를 갈까, 오스카 와일드가 잠들어 있는 페흐 라쉐즈 묘지를 갈까, 나폴레옹의 무덤인 앵발리드를 갈까 고민하다 몇 주 전 파리 뤽상부르 공원을 가면서 본 국립 공동묘지 팡테옹이 가고 싶어졌다.



 기차를 타고 도착한 파리의 하늘은 흐리고 습했다. 햇볕이 강하지 않은 날씨를 다행으로 여기며 점심을 먹기 위해 뤽상부르 공원으로 향했다. 부키니스트들이 좌판에 진열해 논 헌책들을 구경하며 센강을 걷자, 화재로 무너졌으나 아직도 그 위용을 잃지 않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파리로 몰려든 인파를 맞이하고 있었다. 습한 날씨로 이마엔 쉴 새 없이 땀이 흐르고 가방이 짓누르고 있는 옷들은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갈증이 나 음료수와 물을 사서 파리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고 오래된 정원 중 하나인 뤽상부르 공원에 들어갔다.



뤽상부르 공원을 가며 마주친 파리의 풍경


 공원에 들어가자, 한 악단이 악기를 연주하며 행진했다.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아, 오늘 파리에서 시위하는 날인가?’ 파리 여행을 걱정하던 중, 그들이 툴루즈 럭비 응원대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가슴을 쓸었다. 아이들이 막대기로 들고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는 배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공원 한가운데 위치한 분수 근처에 자리를 잡고, 직접 싸 온 샌드위치를 꺼내먹었다. 루콜라, 훈제 송어, 에멘탈 치즈와 바게트의 조화를 느끼는 동안, 이 쾌락을 함께 느끼고자 동네 참새와 비둘기가 모이기 시작했다. 앙리 4세의 부인인 마리 드 메디치의 명령으로 조성된 이 공원은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대중에게 개방되었다. 민중을 위한 공원답게 생리현상으로 다급해진 방문객들이 각자의 급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이 위치해 있었다. 18세기 파리 도로에서 났을 법한 냄새를 맡으며 팡테옹을 갈 몸과 마음의 준비를 했다. 공원 내 위치한 106개 동상 중 일부를 지나 분비지 않고 여유로운 공원을 빠져나갔다.



뤽상부르 공원에서 쉬고 점심먹기


 걸어서 10분을 갔을까, 라틴 지구의 중심에 세워진 팡테옹에 도착했다. 수많은 위인이 묻힌 국립 공동묘지답게 수많은 프랑스 국기가 걸려있었고 사람들은 입장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 자리엔 쥬느비에브 성녀에게 봉헌된 오래된 성당이 있었는데, 1744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중 병상에 누운 루이 15세가 이 성녀에게 기도를 하고 완쾌하고 나서 감사의 뜻으로 오래된 교회를 재건한 건물이 바로 팡테옹이다. 성 쥬느비에브 성당이었던 이 건축물은 프랑스혁명 후 6번이나 세속적인 정부 건물과 성당으로 바뀌는 정신없는 용도 변경을 겪었다. 팡테옹에 들어서자마자 화려한 프레스코화들과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는 층고가 펼쳐졌다. 에펠탑을 완공 전인 1889년 이전까진 파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위인들의 생애가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둘러본 뒤, 위인들의 무덤이 보고 싶어 지하로 얼른 내려갔다. 지하실에 들어서자마자 볼테르의 동상과 함께 관이 보였다. 그가 강조한 톨레랑스 정신은 내가 프랑스어를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책에서만 보던 인물의 묘지를 방문하는 일은 매우 들뜨는 일이었다. 그 뒤로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장 조레스, 루소, 장 물랑, 앙드레 말로, 마리 퀴리 등의 묘지가 나왔는데, 거리나 광장, 대학 이름으로 붙을 정도로 유명인들과 한 공간이 있을 수 있어서 기뻤다. 한편엔 고인들의 저서가 꽂혀있는 책장 근처에서 잠시 쉬고 마저 구경하다 팡테옹을 나왔다. 팡테옹을 나와 저 멀리 보이는 에펠탑을 향해 갔다.



프랑스 위인들의 묘지



 지하철을 타고 에펠탑을 가기로 했다. 주말에 싸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표가 있다고 해서 매표소 직원에게 문의하고 지하철 카드를 구입했다. 하지만 그 직원은 « 지금 카드에 돈이 충전이 안 돼요.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옆에 있는 기계에서 충전하면 될 거예요. » 매표소 옆에 있는 기계에서도 돈은 충전되지 않았고 그렇게 카드 값을 버리고 택시를 탔다. 이렇게 삶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이 프랑스에 있다는 실감을 극대화한다. 에펠탑에 도착해 구경을 시작하려고 하자 포도알만 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곧이어 자연의 폭격이 시작됐다. 비의 포화를 피하고자 가로수 밑으로 들어갔지만, 가지와 나뭇잎은 충분히 촘촘하지 않았고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피난처를 물색하다가 멀리 보이는 처마를 발견해 그곳으로 뛰어갔다. 처마 밑에는 큰 보따리를 진 에펠탑 모형 장수들과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이미 비를 피하고 있었고 그 주위로 우산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소나기는 수십 분이 이어졌고 나무 밑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빗방울은 머리 위로 계속 떨어졌다. 비가 차차 잦아들자 사람들은 다시 도시로 흩어졌고 비가 그치자 도시엔 다시 사랑으로 가득 찼다. 빨간 하트 풍선을 팔고, 우아한 흰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웨딩 사진을 찍고 커플들은 진한 키스를 나누었다. 에펠탑이 잘 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가 사진을 찍고 비를 맞아 추위를 느끼며 쌀국수를 먹고 싶다고 생각하며 기차역으로 향했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



 파리 여행을 하며 팡테옹에서 사람들로 붐비는 묘지와 그렇지 않은 곳을 보았다. 그러자 사후의 인기가 한 사람의 인생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될 수 있을까란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무덤 주인의 인생이 그렇지 못한 고인의 인생보다 행복했을까?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의 삶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도 없고 재단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꼭 맞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일이 있을 때, 무덤을 찾아가는 행동은 삶이 죽음과 맞닿아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상기하고 우리 삶을 가볍게 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비를 맞으면서 추위에 떨었지만, 이번 파리 여행은 행복했다.



비 오기 3분 전 모습! 비가 여행을 망칠 순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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