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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Jun 15. 2023

두렵지만 가고 싶었던 마르세유

항구와 다양성의 도시, 마르세유

 다른 때보다 선크림을 많이 발랐다. 혹시 바다에 들어갈까 봐 수영복과 수건도 챙겼다. 옷도 시원하게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만반의 준비를 한 뒤 프랑스 남부로 향했다. 친구들과 역에서 만나 곧장 기차를 타러 플랫폼으로 갔다. 역무원은 우리의 기차표를 확인했다. 나와 한 친구는 무사히 통과했지만, 다른 친구의 기차표 큐알코드는 인식되지 않았다. 24시간 전에 기차표 구매를 확정 짓지 않아 예매가 취소된 것이다. 이제 기차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20분! 급하게 핸드폰을 뒤져 취소된 기차표와 똑같은 표를 살 수 있었다. 기차가 역에 들어오길 기다렸지만, 출발 3분 전에도 기차는 오지 않았다. 플랫폼이 바뀐 듯해 주변을 둘러보니 바로 옆 플랫폼에 우리가 탈 기차가 도착해 있었다. 급하게 탄 기차에 앉아 바로 뒷자리에서 영국 노부부가 카드 게임하는 소리를 들으며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유로 향했다.



 마르세유는 남부의 햇살과 바다를 즐길 수 있고 프랑스의 대표 항구가 위치한 곳으로 수 세기 전부터 프랑스와 아시아, 아랍 세계를 연결해 주는 창구역할을 한 매력적인 도시이다. 하지만 불안한 치안으로 유명하기도 한데 프랑스인들조차 마르세유에서 소지품을 조심하라고 이야기한다. 마르세유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구글에 도시 이름을 검색하니 가장 먼저 살인미수 사건으로 총상을 입은 배우에 관한 기사가 나왔다. 하지만 주변엔 마르세유 여행에서 살아 돌아온 수많은 지인이 있었다. 기차는 할리우드 언덕에 할리우드 사인을 본뜬 듯한 마르세유 팻말과 주황색 지붕들을 지나 마르세유역에 도착했다.



 마르세유역을 나오자, 언덕 위에 지어진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과 그 언덕에 빨려 올라가듯이 언덕 중턱까지 빼곡히 지어진 주황색 건물들을 마주했다. 막 마르세유에 도착한 여행객들에게 도시는 그래비티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coucou(안녕) » 거리에는 다양한 국가의 음식들이 있었고 마치 동남아 야시장에 있는 듯한 맛있는 냄새가 났다. 걷다 보니 점점 비둘기는 갈매기로 바뀌고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바다가 펼쳐졌다. 시원하고 비릿한 바닷냄새를 들이키며 점심을 먹으러 갔다.


기차에서 막 내려 마주한 마르세유 풍경


 뜨겁게 달궈진 도로 옆 테라스에 앉았다. 한참을 고민한 뒤, 문어 샐러드와 부야베스를 시켰다. 서빙은 여유로운 남부의 분위기에 걸맞게 느긋하게 이루어졌는데 우린 너무 배가 고팠다. 허기진 배와 이어진 입에서 여유롭고 즐거운 대화가 이어질 이가 난무했다. 체감 20~30분을 기다리자, 마늘 바게트가 곁들여진 부야베스와 문어 샐러드가 나왔다.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먹기 생선을 하나씩 접시에 덜고 빵에 수프를 찍어 먹기 시작했다. 문어 샐러드는 데친 문어를 사용한 듯했다. 채소가 주를 이루고 문어가 적게 들어가 있을 걸로 예상했지만, 야채는 거의 없고 문어와 소스만 버무려져 있어서 좋았다. 쫄깃한 식감을 기대했는데 씹자마자 부서져 아쉬웠다. 마르세유의 대표 음식 부야베스를 처음 먹어보았는데 약간 미지근한 토마토 베이스 매운탕 같은 느낌이었다. 어부들이 먹던 음식으로 국물(부이용-bouillon)이 끓으면 생선을 익히기 위해 불을 줄여서(아베세-abaisser) 이름이 부야베스(bouillabaisse)라고 한다. 고춧가루와 마늘 한 숟갈 더 넣고 더 팔팔 끓여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어 샐러드와 부야베스 그리고 피스타치오 젤라토


  고소한 피스타치오 젤라토를 먹으면서 공원과 빨래가 널려있는 작은 골목들을 지나자, 녹색, 흰색 돌이 수놓은 비잔틴 양식의 마조르 마르세유 대성당이 보였다. 성당에 다다르자, 성당 옆에 펼쳐져 있는 광활한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몰려왔다. 이 바람을 타고 다른 유럽 국가는 물론, 중동, 북아프리카, 아시아와 활발히 교류하던 마르세유는 19세기 급성장을 하는데 이 시기에 나폴레옹 3세는 1852년에 대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이 도시는 막대한 부로 이탈리아, 튀니지 등지에서 최고급 재료를 공수해 와서 성당을 건축했다. 바닥은 모자이크 돌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돌과 돌 사이의 촉감이 세월에 달아서 그런지 무척 부드러웠다. 성당은 천장화나 성화가 아닌 붉은 대리석과 그 사이사이에 마블링처럼 끼어있는 흰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따뜻하고 강인한 느낌을 담고 있었다. 성당을 한 바퀴 돌며 더위를 시키고 시원한 높은 층고에 감탄하고 난 뒤 바다가 있는 옛 항구 쪽으로 향했다.


마조르 마르세유 대성당



 유럽 지중해 문명 박물관을 지나자, 생장 요새와 요트 정박장이 있었다. 정박장에는 아이들이 다이빙하고 있었고 요새엔 누워 햇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파로 궁전을 배경으로 배들이 움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자유로운 해안 도시의 분위기에 흠뻑 취해 있었다. 한참 사진을 찍고 마르세유 언덕 위에 지어진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을 버스 타고 올라갔다. 버스는 우릴 언덕 중턱에 내려주었고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다. 갈증이 나 슈퍼에서 물과 납작 복숭아를 샀다. 바로 먹을 수 있게 복숭아를 닦을 수 있냐고 계산해 주신 분께 물어봤는데 흔쾌히 물을 내주었다. 인생 첫 납작 복숭아는 그렇게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았다. 물을 연신 들이키며 154미터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성당에 도착했다. 성당 내부는 바닷바람이 부는 바깥보다 더워 빠르게 구경했다. 이 성당은 대성당과 비슷하게 모자이크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천장에  배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는데 아마 배를 타고 생계를 유지하는 마르세유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한 게 아닌가 싶다. 성당을 빠져나오면 도시의 사면을 다 감상할 수 있었다. 어떻게 이곳까지 재료를 실어 날랐을까 감탄하며 마르세유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이곳에서 따가워진 햇볕을 맞으며 초목이 레이어 된 돌산 옆에 펼쳐진 바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즐겁게 떠드는 여행객 무리와 공존하며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꼈다. 바다를 감시하고 종교적 의식이 이루어지고 적의 침입을 막아냈던 이 장소에서 우린 마르세유가 어떤 도시인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르세유인들이 ‘좋은 엄마(la Bonne Mère)’라고 부르는 예수를 잉태한 황금 성모상을 뒤로하고 언덕을 내려갔다.





 마르세유에 관한 흉흉한 소문은 과장된 게 아니냐며 도시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면서 잠시 옷 가게에 들렀다. 5분 만에 옷 구경은 이만하면 충분했다고 생각해 친구와 함께 밖에서 아직 옷을 보고 있는 친구를 기다렸다. 가게에서 쇼핑을 마친 두 명의 남자가 지나가며 우리에게 ‘니하오’를 날렸다. 니하오 테러를 당한 게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들을 때마다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당할 수 있는 심한 인종차별은 특정 인종에 의해서 많이 일어난다. 그 순간마다 화가 나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생김새로 인종을 특정하고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이번 학기에 강의를 해주신 해당 인종 출신 교수님들과 일상에서 작은 호의를 베풀었던 이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것이 특정 지역 출신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상황, 교육의 수준, 주류 사회에서의 소외 등 다양한 이유에 따른 현상이라는 것을 상기한다. 프랑스 사회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내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 또 다른 소수자를 공격하는 이 비극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한 채 기차역으로 돌아가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친구가 기차표 예매를 확정하지 않아 여행의 긴장도를 높였던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타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며 변모하는 마르세유의 모습과 그 과정에서 생겨난 프랑스 사회의 문제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여행의 순간을 곱씹으며 수많은 변화 속에 놓인 자신과 나도 모르는 사이 내면에 잘못 굳어진 생각들을 발견했다. 삶에서 무언갈 확정하고 부지불식 간에 굳은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존재를 둘러싼 변화를 잘 소화하려면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하고 그 경험을 되돌아보며 이 소화기능을 강화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여행은 우연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자 모든 것이 다르고 변화한다는 사실을 느끼는 과정이니까.


생폴 요새와 멀리 보이는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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