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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Jun 12. 2023

보기만 해도 오렌지 향이 나는 듯한 몽플리에

프랑스 친구와 함께 한 몽플리에 여행

 우린 여행지로 가는 동안 서서히 여행가가 되어간다. 전날의 피로는 설렘으로 바뀌고 핸드폰보단 창밖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기차 안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포도밭, 강, 아담한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된 황토색 돌로 지어진 작은 마을, 지중해의 석회암 황무지를 바라보며 기차를 타면서 느꼈던 찌뿌둥함은 사라지고 앞으로 펼쳐질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눈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지만, 귀는 프랑스 가수 뽐므(Pomme)의 인터뷰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후각이 예민하다는 사실을 밝혔는데, 문득 이번 여행지인 몽플리에엔 어떤 냄새가 날지 궁금했다.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프랑스에서 7번째로 큰 도시인, 몽플리에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몽플리에 근처에 사는 프랑스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볼을 맞대는 인사를 했는데 난 당연하다는 듯이 양 볼을 한 번씩만 맞대고 땠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은 듯한 친구는 말했다. «여긴 3번이야. » 그렇게 우린 처음부터 다시 세 번의 볼 인사를 했다. 바뀐 문화를 경험하며 새로운 도시에 왔다는 사실에 들떴다. 기차역을 빠져나오자 쨍한 날씨에 야자수가 쭉 늘어선 모습이 펼쳐졌다. 몽플리에의 냄새에 대한 궁금증은 잊히고 온 신경은 시각에 집중됐다. 나중에 생각한 거지만, 이 도시의 풍경과 햇살를 떠올렸을 땐 마치 오렌지 향이 느껴지는 듯했다.


기차역을 나오자마자 만난 몽플리에 풍경


 친구와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18~19세기에 지어진 오페라 극장과 미의 3 여신이 장식되어 있는 분수가 있는 코메디 광장(place de la Comédie)에 다다랐다. 테라스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우리도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다녔다. 이 광장에서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해 시내로 더 들어간 뒤, 식당 테라스가 가득한 공원에 앉아 타르타르 뒤 뵈프를 시켰다. 3년 전, 한국에서 카페에 앉아 미래를 함께 걱정하던 추억을 이야기를 하고 지금은 취업한 친구를 축하하며 시원한 수돗물을 들이켜며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코메디 광장, 점심으로 먹은 타르타르 뒤 뵈프, 페리루 정원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개들


 소화할 겸 중고 책이 쌓여 있는 서점을 둘러보며 숨어있는 보물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빈손으로 나왔다. 서점 앞에 있는 레지스탕스 희생자 광장(Place des Martyrs de la Résistance)에서 시원하게 뚫린 일직선 도로 끝에 몽플리에 개선문이 보였다. 루이 14세가 자신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692년에 지은 이 개선문을 지나 루이 14세 기마상이 있는 페이루 정원(Jardins du Peyrou)에 갔다. 이 더운 날 마라톤을 하고 있었기에 나보다 훨씬 신체 능력이 뛰어난 분들의 건강을 걱정하며 한적한 공원을 그늘 위주로 돌았다. 분수에서 개들이 뛰어놀고 있었는데 미친 척하고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버블티로 갈증을 해결하기로 했다.



 타피오카를 먹지 않는 친구는 자신이 맛있는 버블티 가게를 알고 있다며 안내했다. 관광객이 많은 아름다운 이 단 분수가 있는 작은 광장에 있는 버블티 가게에 줄을 섰다. 우리 차례가 되자 펄과 티의 맛을 각각 골랐다. 원하는 토핑을 얹어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도 시켰다. 가게에 앉을자리가 나자 곧장 자리를 잡았다. 버블티의 펄을 깨물자, 허물 벗겨지듯이 퍼지고 안에서 달콤한 액체가 나왔다. 산딸기와 블루베리가 올려진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남부의 더위를 몰아냈다.



저 멀리 보이는 개선문과 버블티 가게 앞에 있었던 분수

 


 구시가의 골목을 오르내리며 벽화와 식물과 어우러진 주택들을 구경했다. 화려한 교회들을 구경하고 한참 내리막을 내려갈 때 큰 성채 같은 건물이 눈에 띄었다. 몽플리에 주변 지역(Languedoc-Roussillon)에서 가장 큰 성당인 성 베드로 대성당이었다. 골목에서 목도했던 웅장함은 성당에 가까이 갈수록 그 위용이 드러났다. 1364년에 교황 우르바노 5세의 후원으로 지어진 이 대성당은 16세기 몽플리에 도시의 세력이 커지며 1536년 대성당의 지위를 획득했다. 천주교와 개신교 간 갈등이 극심했던 16세기에 이 도시는 개신교 세력이 우세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수많은 성당이 파괴되었지만, 이 대성당은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성당이었다. 성당 내부에 들어가자 한창 종교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주민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이런 마을 행사에 관광객이 성당 관람을 위해 입장하는 것이 귀찮을 수도 있지만, 안내자분들은 웃음으로 우릴 맞아주었다. 화려했던 장식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스테인드글라스에 햇빛이 통과하며 성당 기둥에 머무는 아름다움과 성당 문들의 웅장함은 그 당시의 성당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중세 성채를 닮은 대성당을 뒤로하고 아까 내려왔던 내리막을 다시 거슬러 올라 기차역으로 향했다.




중세 성을 닮은 몽플리에 대성당



 기차는 예상보다 늦게 출발했다. 기차가 역에 정차해 있는 시간 동안 기타 앰프를 사기 위해 기차를 타고 2시간을 온 프랑스인과 프랑스 도시와 일본, 악기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그 사이 기차는 출발했고 님(Nîmes)과 아비뇽을 지나 집을 향해 갔다. 어느새 화창했던 들판은 어두워졌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들판에 소 한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이 급변하는 날씨를 보며 아까 느꼈던 더위를 반추하고, 오늘 친구가 베풀었던 배려에 감사하고, 앞으로 펼쳐질 삶을 궁금해하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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