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생활과 거주 문제
한국에선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들이 해외에선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된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변화는 해방감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때론 숨 막히는 답답함과 불같은 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정말 다른 점이 많은 나라이다. 심지어 결혼과 출산의 긴밀한 연관 관계도 제도적으로 완화한 국가이다. 결혼이 아닌 두 성인의 결합 제도를 만드는 사회적 실험은 한 것이다. 비판 없이 받아들였던 사회통념을 깨는 프랑스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숙사에 입주하고 개강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박살 냈다.
2023년 초 추운 겨울, 교환학생 오티를 기점으로 프랑스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대학으로부터 2월 1일부터 기숙사 입주가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더 일찍 들어가고 싶으면 기숙사에 문의하라는 말도 함께 왔는데 이는 험난한 프랑스 교환학생 서막을 알리는 문구였다. 기숙사에 1월 중에 입주가 가능한지 물었다. 그러자 기숙사는 학교와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다시 학교에다가 기숙사에서 학교에 문의해 보라고 한다고 하자 학교 관계자는 기숙사에서 긍정적인 메일을 받지 못했으면 1월 기숙사 입주는 어렵다고 했다. 물 없이 고구마를 먹는 기분이 들어 가슴을 치고 있을 때, 같은 도시로 파견되는 친구가 자신은 1월 기숙사 입주를 허락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연락에 희망을 품었지만, 결국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해서 1월 입주에 성공한 친구의 9제곱미터 남짓한 방에서 10일간 지냈다. 친구 집에서 지내면서 기숙사에 이메일을 다시 보내 보았지만, 답이 없었다. 프랑스에선 일 처리하는데 전화가 직빵이라는 소리를 듣고, 프랑스어로 통화해야 한다는 공포를 억누른 채 기숙사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학생들이 아직 빠지지 않아서 방이 없는데 다음 주에 연락 줄 수 있어요?”란 연락을 받았다.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채 다시 연락했다. 전화가 끝난 뒤에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2월 1일 아침까지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2월 1일, 드디어 오래 환기가 되지 않아 먼지 냄새가 나는 11제곱미터짜리 방에 입주했다. 공사장 앞에 있어 아침마다 소음으로 창문을 열기 어렵지만, 주어진 보금자리에 만족하고 공부하고 여행하며 다른 행정 문제를 하나하나 처리했다. 그 문제 중 가장 풀리지 않는 건 비자와 다음 학기 거주 문제였다. 비자는 연장 신청을 하면 비자 만료일이 다가오는 불안감을 안고 기다리면서 가끔 비자 만료 전까지 비자 연장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지만 거주 문제는 더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프랑스 국립기숙사(Crous) 홈페이지에 들어가 기숙사 연장을 신청해 보았지만 거절되었다. 그리고 학생 사회복지 서류(DSE)가 없는 학생들이 국립 기숙사 신청하는 기간에 신청해 보았지만, 기숙사가 다 찼다는 메일로 거절당했다. 그렇게 다음 학기에 누울 자리를 알아보다가 친구의 친구가 자기소개서를 이메일로 보내 국립 기숙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또 희망이 생긴 것이다.
왜 프랑스에 체류해야 하는지, 프랑스 사회와 언어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지금까지 뭘 해왔고 앞으로 무엇을 할 예정인지를 적었다. 프랑스 친구에게 교정받고 다음 학기 공부를 할 학교와 거주하는 도시 안에 있는 거의 모든 국립 기숙사에 지난 학기 성적표와 얼마 전 취득한 프랑스어 자격증 시험 합격증을 첨부해 메일을 전송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불안했지만, 가능성을 심는다는 생각으로 과정을 즐기기로 했다. 한 기숙사에서 답이 왔다. « 우린 기숙사 배정을 담당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 다음 기숙사에서 연락이 왔다. « 기숙사 문의에 관해서는 아래 주소로 문의해 주세요. » 문의된 주소로 메일을 보냈지만, 아직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그러던 중 다음 학기에 공부할 학교에서 답장이 왔다. « 국립기숙사를 배정해 줄게요. » 처음 학교에 등록하며 거듭 국립 기숙사 배정이 가능하냐고 물었을 땐, 국립 기숙사는 다음 학기를 위해 외국에서 프랑스를 막 들어온 학생에게 배정된다고 못을 박았었다. 하지만 진심이 통했는지 기숙사 배정해 주겠다는 메일을 받고 너무 행복했다. 그동안 기숙사 문제로 스트레스받아 잠을 설치고 배 아팠던 시간은 이제 완전히 과거가 되었다. 곧바로 서류 처리비를 결제하고 기숙사 예약을 확정 지었다.
프랑스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배운 점은 한번 문의하고 요청해서 안 됐다고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지내는 기숙사에 무언갈 물어봤을 때, 일하는 분마다 답변이 다 달랐다. 그중에 한 분만 나에게 도움이 되는 답변을 자세히 해 주셨다. 나와 같은 문제로 불안하고 걱정하고 하시는 분들에게 외국어가 완벽하지 않고 외국인이어서 불친절하다고 느끼며 주눅 들지 말고 자주 궁금한 점이나 요청 사항을 문의하고, 진정성을 담은 메일로 한번 또 요청을 해보는 걸 추천한다. 어차피 해서 되면 좋고 아니면 다른 해결. 방법을 찾으면 되니까. 이제 비자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