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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Sep 03. 2023

짐 다 옮기고 보증금도 다 받을 수 있을까?

프랑스 기숙사 이사



 얼마 전까지 40도에 육박하던 날씨는 어느새 창문을 열고 자기 어려울 정도로 서늘해졌다. 여름이 지고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 새로운 기숙사로 이사를 해야 했다. 학교와 기숙사들에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 간신히 구한 국립 기숙사에서 새로운 삶을 살 생각에 들뜨기도 했지만, 넘쳐나는 이삿짐으로 다물어지지 않은 캐리어들과 여기저기 널려 있는 살림살이들로 내일 이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또 보증금을 온전히 받으려면 7개월을 넘게 산 집을 새집처럼 청소한 뒤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도 이사를 하루 앞둔 나를 지치게 했다. 그렇게 걱정에 지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깨끗하게 청소한 하수구가 더러워질까 샤워는 건너뛰고 터질 듯한 캐리어 두 개와 돌덩이처럼 무거운 백팩을 메고 방 열쇠를 받으러 새로운 기숙사에 갔다. 날씨는 시원했지만, 이마엔 어느새 땀이 맺혀 있었다. 기숙사에 도착해서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난 뒤, 보증금과 월세를 내야 했다. 카드를 긁었는데 한도 초과가 나서 바로 결제할 수 없었다. 은행에 전화를 걸어 한 달에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을 올려 달라고 했지만, 당장 해결이 안 돼 결국 다음에 돈을 내기로 하고 열쇠를 받았다. 이전 기숙사보다 크고 쾌적한 방에 짐을 내려놓고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도저히 혼자서 짐 다 못 옮기겠어.” 다행히 방금 일어난 친구가 눈곱만 뗀 채로 자신의 캐리어도 끌고 와주었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트램을 타고 두 번을 더 왔다 갔다 하면서 짐을 다 옮겼다. 짐 옮기기가 끝난 기념으로, 또 이삿날 첫 끼로 콜라 한 병을 들이켰다.


새로운 기숙사 입성!!!


 당을 충전한 뒤, 온전히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옛날 집을 구석구석 꼼꼼히 청소했다. 바닥을 쓸고 걸레로 닦고 어제 청소한 부분을 점검하며 공간에서 내가 살아온 흔적을 지웠다. 방 상태를 검사받기까지 2시간 정도 남아서 청소를 미친 후, 새집으로 돌아와 짐 정리를 시작했다. 한참 정리를 하다 몸을 일으켰는데 세상이 한번 핑 돌았다. 콜라의 당 공급만으로는 이사하기 부족했던 것이다. 급하게 메밀국수를 삶아 식초와 간장을 넣고 해치워 버리며 어지럼증을 잠재웠다. 짐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자, 이전 기숙사 상태를 검사하는 시간이 되었다. 약속 시간이 30분이 지난 후, 검사하는 직원이 왔다. “지금 퇴실하는 사람이 많아서 너무 바빠서 늦었어요.” 먼저 퇴실한 친구들에게 기숙사 퇴실 점검이 까다롭다는 얘기를 들어 잔뜩 졸아있었다. 하지만 그 직원은 한 30초 정도 청소 상태를 확인하고 “뭐 깨진 거 없죠.”라고 물었다. “없어요.”라고 대답하자, 사인할 서류와 빨간펜을 내게 건네주었다. 빨간펜으로 이름을 쓰기 껄끄럽지만, 방 청소 검사가 예상외로 잘 끝났는데 미신 따위로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빨간펜으로 이름을 빠르게 갈겨쓰자, 그녀는 잘 지내라는 덕담과 함께 방 검사를 끝냈다. 바쁜 시기에 퇴실하는 덕분에 철두철미한 기숙사 검사를 피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 처음 올 때보다 엄청 불어난 짐 


 데스크에 키를 반납하고 1, 2달 이후에 보증금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숙사를 나섰다. 매일 바깥세상을 바라보았던 창가를 올려다보며 이곳에서 7개월이 조금 넘는 프랑스 생활이 생각나 가슴이 뭉클해졌다. 헛헛해진 마음을 채우고자 음료수를 하나 샀다. 카프리썬을 마시며 수도 없이 지나다녔지만 이제 올 일이 많이 없을 길을 지나 새로운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로 들어와 짐을 정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등이 닿기가 무섭게 아까 이삿짐 나르는 걸 도와준 친구 집에 벌레가 들어왔다는 신고를 받고 트램을 타고 가서 벌레를 잡고 왔다. 이렇게 걱정 많았던 프랑스에서 한 첫 이사가 끝이 났다. 짐 옮기랴 청소하랴 힘든 하루였지만, 친구의 도움으로 조금은 수월하게 프랑스 생활의 2막을 열 수 있었다. 


이사한 기념으로 먹은 납작 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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