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할까?» 주말을 맞이해 느지막이 눈을 떠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이었다. 유대인들이 5784번째 새해를 맞아 축제를 벌이는 이날, 나도 유럽 문화유산의 날을 즐길 생각에 들떠 있었다. 올해 40번째로 열리는 유럽 문화유산의 날은 50개의 유럽 국가가 참여한 축제로, 문화유산과 문화 보존에 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행사이다. 축제가 열리는 주말 동안 평소에 대중에게 개방하지 않는 곳들을 찾아가고, 무료입장이 가능한 박물관들을 방문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확히 어디를 돌아다니며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과 ‘스포츠 문화유산’을 주제로 한 유럽 문화유산의 날을 즐길지 알 수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리옹 시청이 대중에게 개방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급하게 같이 갈 친구 한 명을 구한 뒤, 거의 매일 지나다니지만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었던 시청을 향해갔다.
친구와 함께 시청 앞 테로 광장(Place des Terreaux)에 들어섰다. 도랑을 뜻하는 라틴어 tarralia에서 유래한 이 광장의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광장의 남쪽엔 리옹을 가로지르는 론강(le Rhône)과 손강(la Saône)을 잇는 물줄기가 흘렀다고 한다. 이 진창은 17세기에 포장되어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는 광장이 되었다. 시청에 들어가기 위해 긴 줄을 서서 물이 콸콸 샘솟는 바르톨디 분수(Fontaine Bartholdi)를 바라보며 얼른 입장하고 싶다는 성급함을 흘려보냈다. 1888년 21톤의 납과 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분수는 ‘가론강의 개선전차’를 형상화한 것이다. 왜 강이 두 개나 흐르는 리옹에 보르도와 툴르즈를 흐르는 가론강을 형상화한 분수가 있는지 의아했다.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마리안느(마리안느)의 4두 개선마차는 원래 보르도가 자유의 여신상을 제작한 프레데릭 오귀스트 바르톨디(Frédéric-Auguste Bartholdi)에게 주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결국 구매하지 못했고, 이 작품은 1889년 세계박람회에 전시된 후, 값을 치른 리옹의 소유가 된다. 1891년에 광장에 놓인 분수는 1992년부터 현재 자리를 지키고 있다. 광장의 축제 분위기로 지루함을 달래자 점점 시청 입구에 가까워졌다.
인파를 따라 루이 14세 기마상 조각이 새겨져 있는 정문을 지나 시청 안으로 깊숙이 점점 빨려 들어갔다. 시청 안뜰에 있는 작은 분수를 지나 건물 복도를 쭉 따라가자 오래된 나무의자가 가득한 시의회 회의장이 나왔다. 자연스럽게 회의석에 앉아 리옹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인 척 해보고 싶어지는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공간이었다. 회의실을 나와 궁전을 방불케 하는 공간들을 관람하며, 완공 당시 리옹 시청이 루브르의 복제품이자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청이라고 소문이 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루이 14세가 1646년에 설계를 확정 짓고, 1672년에 완공된 이 시청은 리옹 출신 시몽 모팡(Simon Maupin)이 왕실 건축가 자크 르메르시에(Jaques Lemercier)와 리옹 출신 건축가, 기하학자, 수학자인 지라르 데자르그(Girard Desargues)의 조력을 받아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 사이의 특징을 띄는 루이 13세 스타일의 직사각형 건축물을 올렸다. 그들이 힘들게 건조한 건물은 시간이 지나며 화재로 큰 피해를 보고 복원 시대의 유행을 반영하여 다시 지어졌다. 프랑스혁명을 겪고, 국민의회 군대가 도시를 포위해 공격을 가하며 왕권을 상징하던 시청은 훼손되었고, 해당 건물은 혁명 반대 세력을 축출해 기요틴이 설치되어 있는 테로 광장 등으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이런 격동의 역사를 전혀 겪어보지 않은 듯한 화려한 방에서 목관악기 공연을 감상한 뒤, 테라스에 잠시 나가 리옹의 일부를 평소와 다른 각도로 바라보았다. 오페라(l’Opéra)와 코메디 광장(la Place de la Comédie)을 내려다보는데 신나는 타악기 소리가 들려 시청을 나가 음악이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군중에 파묻혀 자리를 잡으니,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한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출신 국가의 국기를 들고 전통 옷을 입고 있었다. 평소에 프랑스 사회에 융화되어 살아가던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이를 리옹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순간이었다. 인도, 브라질, 한국, 우크라이나, 폴란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많은 나라가 각 나라의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며 행진하는 데 많은 사람이 관심을 기울여 주었다. 미디어에서 간접적으로 보는 다양한 문화권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며 서로를 언어와 국적으로 나누지 않고 모두를 예술을 즐기는 감정을 가진 존재로 인식할 수 있었다. 행진이 끝나는 곳엔 수많은 국가의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신나는 인도 음악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을 지나 강가에 앉았다. 친구와 흩뿌리는 듯이 오는 비를 맞으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리옹 시청과 다양한 문화권의 행진을 보며 살아있다는 건 변화한다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진리라고 여기는 거의 모든 것들이 수많은 혼합과 변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변화의 고통과 지난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듯하다. 일상을 보내며 쉽게 닫히는 마음을 다양성과 변화를 향해 한 번 더 열어젖히는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