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을 연애하고 결혼한 지 어느덧 또다시 7년. 지나고 보니 지금 우리는 얼마 전 5번째 생일을 지낸 애교쟁이 까불까불 딸내미와 쫄보 장모 치와와 강아지 한 마리, 그리고 몇 개월 안됐지만 이미 강아지보다 커버린 아직은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함께 동거 중이다. 시간이 빠르다지만, 정말 빨라도 너무 빠르다.
우리집 뒷뜰
내 나이 마흔. 인생의 1/3 이상을 아내와 함께 지내왔구나. 그러고 보니 아내로 인해, 그리고 아내와 함께 새롭게 경험한 일들이 꽤나 많다. 해밀턴에서 오클랜드까지 떡볶이 한 그릇 먹자고 1시간 반을 운전해보기도 하고, 커플 후드티도 입어보고, 커플 신발도 신어보고, 교환일기도 써보고.
한국에 놀러 갔을 땐 그 당시 유행해서 다들 한 번씩 해봤던 남산 데이트에서 자물쇠 걸기부터, 포장마차 데이트, 수산시장 데이트. 어느 날은 데이트 후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다가 막차가 끊겨서 한참을 헤매며 걸어도 보고, 어쩔 수 없이 비싼 돈 주고 장거리 택시를 타보기도 했더랬다. 아내 친정집 근처 찜질방에서 잔 건 몇 번이었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화곡역 근처 찜질방은 다 가본 것 같다.
결혼하고는 더 많은 일들이 있었다. 태국 신혼여행에서 스쿠버 다이빙도 처음 해보고, 강아지도 처음 키워보고, 감자전, 배추전도 처음 먹어보고, 비즈니스도 시작하고, 집도 직접 설계해보고, 제주도도 처음 가보고, 하물며 지금은 시골 전원주택에서 생활 중이다. 그리고 딸내미도 생겼으니 뭐. 말 다 했지.
그리고 오늘은 소소하게 결혼기념일을 보내며 술상을 처음 함께 차려봤더랬다. 원체 둘 다 선천적 알코올 쓰레기 인 데다가 교회를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은 가까이하지 않았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일까. 우연히 한인마트에서 발견한 막걸리를 한 병 사다가 어디서 보고 배운건 있어서 김치전 두장 부쳐서 분위기 있는 음악을 안주삼아 옆에 틀어놓고 술상을 차렸다. 둘 다 반잔 정도 마시고 파한 건 굳이 비밀일 필요도 없지 뭐.
그래도 나름 꽤나 그럴싸한 술상 아닌가. 애주가들에게는 그저 귀엽고 우습겠지만.
코로나 시대이다 보니 씀씀이를 줄이고 있어서 이번엔 서로를 위한 선물은 소소하게 예쁜 반려식물을 하나씩 들이는 걸로 대신하기로 했다. 아내를 위해서는 수박 페페, 날 위해서는 미니 달개비. 요즘 아내가 실내 반려식물 및 실외 가드닝에 푹 빠져있어서 겸사겸사 들였는데 처음엔 별 관심 없었던 나도 식물 이름도 하나하나 알아가며 가만히 보고 있자니 힐링이 되는 게 꽤나 만족스럽다.
함께 한지 14년. 좋은 시간들을 조금씩 나열해봤지만 왜 늘 좋기만 했겠나. 아픔도, 슬픔도, 힘듬도 함께 겪으며 지내온 이 시간들이 참 귀하다. 그로 인해 단단해진 우리 관계는 더 이상 풋풋한 설렘은 없을지 몰라도 실금조차 찾을 수 없는 단단한 신뢰가 가득가득 쌓여있다.
어쩌면 새롭게 도시를 옮겨 이사 온 후, 비즈니스를 하나 더 시작한 지금의 이 시점은 우리의 관계가 더욱 빛을 발할 때라고 생각한다. 코비드 시대에 무슨 깡으로 새롭게 가게를 연 건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지금 사실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가득 차오를 만큼 어려운 때이기도 한 게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가정은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금 일어서서 전진하기를 결심하고 또 결심하게 되는 넉넉한 동기가 되어준다.
앞으로 함께 할 날도 많이 남아있겠지. 표면적으로 얼핏 봤을 땐 지금보다 더 좋을 수도 있고, 지금보다 더 안 좋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어느 상황에서라도 감사와 행복이 넘칠 것이라는 확신 가득한 눈빛으로 아내에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앞으로는 더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