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그만 뻗어나가자. 이미 그 세계다
Building bridges to a wider world
내가 졸업한 학교의 교훈이다. 한창 특목고 열풍이 불 때 입시를 준비하던 나는 가장 아끼는 노트의 제일 앞장에 이 학교의 영문 이름과 교복 사진 그리고 저 교훈을 써놓았다. 매일 영어 공부를 할 때마다 그 페이지를 보며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고는 했다.
실제로 그 학교에 입학해 졸업을 할 때까지 나는 저 슬로건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bridges라는 단어가 주는 개척자, 선구자 같은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약 10년이 지나 저 문장을 곱씹어보니 교훈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러니까 저게 왜 이상하다고 느끼게 되었냐면, bridges 라는 단어가 ‘나’와 ‘wider world’의 관계가 분리되어있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미 내가 wider world에 살고 있다면 나는 다리를 건설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building bridges라는 말을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 당시의 나는 내 스스로를 저 멀리 다른 세계로 뻗어나가야 하는 작은 나라의 시민으로 생각하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컬문화콘텐츠 전공
대학에 입학 후 복수전공으로 문과대학의 글로컬문화콘텐츠 전공을 선택했다. 글로컬이라는 단어는 글로벌과 로컬의 합성어로 당시에 핫한 키워드 중 하나였다. 나름 기대를 하고 수강신청을 했으나 연계전공이서 그런 것인지(실제 학과 입학생은 없고 여러 과들의 수업을 연계해서 만든 전공) 대부분 국문과 수업 또는 영문과, 프문과의 문화 수업들이 대부분이었다. local=한국, global=해외(미국, 유럽 등)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전공과목들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수강 신청을 잘못 했던 건지, 2년동안 나는 세계 시민 주체로서 글로컬을 이야기하는 수업은 듣지 못했다.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자란 뒤 그 교육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어렵기 때문 아닐까. 앞서 말한 두 가지를 내가 받은 교육 전체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는 내 스스로의 정체성에 있어서 한국인>세계시민이었다. 다행히 그 이후 재작년에 캐나다와 미국에서 몇 달 생활해보고, 이후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팀원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세계시민이라는 단어의 참뜻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로컬 영화제 오스카 4관왕
그러던 중 접하게 된 봉준호와 작품 <기생충>의 수상 소식. 그가 이전 인터뷰에서 오스카를 로컬 영화제라고 말했을 때 감탄 그 이상의 어떤 희열이 느껴졌다. ‘그래 저게 바로 세계시민이지.’ 미국을 글로벌의 중심으로 보고 그들의 세계와 나의 세계를 분리하는 사고방식이었다면 로컬은 떠올릴 수 없는 단어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오스카가 반응한 것일까. 4관왕 자체도 의미있고 역사적인 사실이지만 국제장편영화상과 작품상을 동시에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가 정말 같은 세계를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국제장편영화상은 이전에 외국어영화상이었다는 점도 생각한다면 더욱 더.)
오스카 수상 이후 인터뷰룸에서 봉준호 감독은 골든글러브 때의 소감(자막이라는 1인치의 장벽)을 다시 언급했다.
“1인치 배리어 소감이 때늦은 소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미 그 장벽은 부서지고 있는 상태였고, 유튜브나 스트리밍 같은 주변 환경 속에서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고 이제는 외국 영화가 이런 상을 받는 게 사건으로 취급되지도 않을 것 같다”
뻗어나갈 그 세계는 더 이상 없다. 봉준호는 미국 프로덕션과 함께 작업한 <옥자>가 아닌 <기생충>으로 전세계 상을 휩쓸었다. 현재의 내 위치에서, 나와 연결되어 있는 세계인들에게 어떤 메세지를 던질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