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일 남았는데 바프 가능?
폭식이 이어진 이후론 다이어트 결심만 수차례. 그럴 때마다 나는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각오를 다졌다. 매일같이 폭식을 하던 습관은 비교적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완벽하게 고쳐진 건 아닌지라 평일엔 열심히 운동과 식단을 병행해도 주말이 되면 늘 음식을 찾았다. 그리고 주말 폭식의 결과는 스스로를 '양심 없음'이란 감옥 속에 가두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감옥 속에서 나를 꺼내 주는 건 늘 선생님이었고.
고맙게도 선생님은 내가 뻔뻔함을 내세우며 다짐을 내뱉을 때마다 용기와 희망은 주었다. 지난 몇 달을 함께 운동해오고 나의 다이어트 패턴을 이미 파악한 사람으로서 이 회원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 프로젝트에 임하게 해야 할지 이미 결정한 것 같았다. 그러니 주말의 나의 식생활은 선생님에겐 이미 안 봐도 비디오였고 오프라인에서는 적절한 채찍으로 온라인에서는 꽤 괜찮은 당근으로 다이어트 의지를 불태워주었다. 이를테면 수업 시간엔 거센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운동을 시켜도 수업이 끝나면 체지방율이 20% 아래로 떨어지는 날엔 선물을 주겠다는 방식으로. 그는 날 잘 알았다.
그러나 선생님의 다부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건들이 그다지 매력적인 건 아니었는지 주말에 음식을 완벽히 조절하기란 쉽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이 되면 늘 잔소리를 들었다.
"아니, 왜 주말만 지나면 살이 쪄서 오냐고~!"
결국 나에게 필요했던 건 충격요법이었다. 인바디 충격요법.
"저 오늘 인바디 잴게요."
"오늘 안 재도 될 텐데요."
"아니요. 저 충격요법이 좀 필요해요."
속은 매우 긴장했지만 티 나는 건 또 싫어서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그리고 아주 신성한 의식처럼 양말을 벗고 애플 워치를 뺐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해? 애플 워치 그거 얼마나 나간다고요ㅎㅎ"
"정확하게 해야죠~!"
정확하게 한 게 66.9kg. 나는 67kg였다. 충격이다.
인바디 애플리케이션을 들어가 보면 그동안 나의 인바디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다. 운동을 처음 시작하던 과거에 비하면 66.9kg라는 무게는 꽤나 성공적인 결괏값이지만 최근 한 달을 돌이켜보면 난 5kg 이상이 불어나버렸다. 비상사태. 정말 비상사태다.
코로나로 헬스장의 문을 닫은 6주간 제법 유지에 성공했다. 다시 문을 열었을 땐 분명 최저 몸무게인 61.6kg. 조금만 노력하면 50kg 대 진입이 코앞이었다. 그런데 67kg?????... 원래 속도라면 지금쯤 체지방율이 25% 이하로 떨어졌어야 하는 건데, 거의 다 온 건데 내가 망친 거구나. 선생님이 하나하나 분석해주는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은지 오래. 내 눈엔 66.9만 보일 뿐이었다.
"선생님 120일 남았는데 진짜 가능한 걸까요?"
이 질문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수도 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선생님은 "할 수 있어요. 대신 열심히 해야죠."라고 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일반적으로 바디 프로필을 찍는 여성들의 인바디 수치가 체중은 50kg 초반대, 체지방율은 16~18%대이니까 나는 앞으로 20kg 가까이를 감량해야 하는 셈이었다. 아니, 그런 게 이게 가능한 게 맞냐고. 그 짧은 순간에 이만큼의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는 중이라 선생님의 멘트에서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인 "할 수 있어요"만 입력이 되었다.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듣고 싶은 대로 들었어도 말의 무게가 내가 삭제해버린 "대신 열심히 해야죠"에 더 실려있다는 걸 알고 있을 터. 나도 그랬다. 그런데 아무렴 어때. 일단 가능하다는 거잖아. 그럼 그냥 해보자. 뱉은 말엔 책임을 져야 하니까.
이렇게 시작된 바디 프로필 여정. 이 여정의 끝엔 뭐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