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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씨걸 Jul 10. 2022

폭식의 나날들

바디 프로필을 예약했다

띠-링. 000 스튜디오로 10만 원을 이체하시겠습니까?
확인.


계좌이체 10만 원. 바디 프로필을 예약했다.


헬스장에 처음 상담을 갔던 날. 지난 몇 달간 경험한 것을 토대로 상담을 했더니 선생님이 "회원님, 바디 프로필 찍을 생각 없으세요?"를 제일 먼저 물어봤었다. 그때만 해도 "아니요. 저는 절대 그런 건 생각이 없어요." 했었는데. 예약금을 보내고 앉았다.


"선생님, 저 프로필 예약했어요."
"진짜요? 언제로요?"
"6월 3일인가, 암튼 그때요"
"알았어요. 잘해봐요."


우발적인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계획적인 것도 아니었다. 10만 원의 계약금을 보내기까지 단 1시간 정도가 걸렸느니 말이다. 오로지 간절함만이 지출과 결단의 동력이 되었을 뿐이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나는 매일같이 폭식을 하고 있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헬스장이 문을 닫은 6주 동안에도 홈트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나였는데. 심지어 눈바디도 눈에 띄게 달라지고 헬스장이 다시 문을 열 때 즈음엔 최근 몇 년 간 본 적 없는 몸무게를 찍어버렸던 나였는데. 어느 한순간에 와르르. 헬씨 라이프로 쌓아온 내 세상이 무너져버렸다. 인생에서 경험한 첫 번째 폭식증이었다.


폭식에는 단계가 있다. 처음 시작은 냉장고 털이부터. 지난 8-9개월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엄격하게 식단을 지키고 운동을 해온 다이어터라면 냉장고엔 각종 다이어트 식품들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닭가슴살, 통밀 식빵, 현미밥, 참치를 비롯해 단맛이 필요할 때 찾는 단백질 바, 프로틴 음료 등이 그것들. '다이어트 식품이니까 괜찮겠지, 칼로리가 낮으니까 괜찮겠지'라고 한번, 두 번이 계속되면 어느새 냉장고는 텅 비어버린다. 비어버린 냉장고는 편의점을 털어서 채운다. 2단계가 시작된 것이다. 2단계가 편의점인 이유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손쉽게 음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단계가 전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 이때부터는 건강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온갖 '당'을 섭취하게 된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다이어트를 하면서 한번 제대로 먹는 '치팅데이'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다. 편의점에서 획득하는 음식들은 주로 빵, 아이스크림, 과자류이기 때문에 수개월 동안 잊고 있던 '맛의 신세계'를 경험한다. '당'이 들어가는 단맛과 짠맛의 다채로운 향연이 또 당을 부른다. 그러다가 편의점 음식이 질리면 바로 3단계로 진입하는데 나는 이때 처음으로 배달의 민족을 다운로드하였다. 우아한 형제들이 유니콘이 되는 사이에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았던 잠재고객의 포텐셜이 드디어 터져버려서는 매일같이 배달앱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 치킨, 피자, 족발 등의 고탄수, 고지방, 고단백의 음식이 한상 푸짐하게 깔려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끼니라고 생각하면서 배가 아플 때까지 때론 배가 찢어질 것 같아도 음식을 계속 꾸겨넣는다. 이런 3단계까지 거쳐오는 사이엔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아, 이번 한 끼만' 하게 되지만 3단계까지 마스터하게 되면 진짜 질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처음엔  폭식증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방법을 알지 못했다. 폭식증이  찾아오는지도  수가 없고 어떻게 해야 음식을 멈출  있는지, 혹은 마구마구 음식을 먹는 나를 어떻게 해야 그만 미워할  있는지도   없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내가   있는 결정이라고는 타이트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것뿐이었고 타인으로부터의 감시만이 나에게 적용될  있는 유일한 잣대라고 확신하면서 바디 프로필을 예약했다. 그리고  모든  의미 있는 과정임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적게 먹고  열심히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온 마음을 다해 되찾고 싶었다. '이건 질병이니까, 식이장애니까 고쳐야만 해'에서 오는 강박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건강한 나, 헬씨 라이프를 잘 지켜내는 멋진 나'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러나 바디 프로필을 예약하고 앞만 보고 힘차게 달려 나가던 그때의 나는 딱 하나 알지 못한 게 있었다. '건강한 나를 되찾으려는 마음은, 건강한 나에 대해 내가 집착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집착하는 마음은 무언가 가슴속 깊이에서 나만 알 수 있는 결핍에서 온다는 것.' 결국 내가 되찾아야 하는 것은 '결핍을 마주하는 나, 결핍을 인정하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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