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쓰고 내가 읽다.
브런치는 아직도 제게 매력적인 플랫폼은 아닙니다.
2015년 10월 이후 글을 쓰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용도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생겨서 오랜만에 먼지를 털어봅니다.
취미로 읽는 책, 기억이 희석되기 전에,
한동안, 비정기적으로 브런치에서 만나봐요. 우리.
가벼운 노트이므로, 퇴고는 나중에, 시간나면.
책을 받으면서 고종석을 좋아했노라 이야기는 했지만, 막상 이 사람이 절필을 선언했고 슬그머니 그 고집(?)을 꺾고 글을 연재해왔다는 사실은 몰랐다. 단지 '고종석의 문장'이라는 책을 접하고 '꽤 괜찮은 글이구나.'하는 생각하고 조금 챙겨봤을 뿐이다.
'쓰고 읽다'는 절필을 철회한 후, 그의 기준으로 '괜찮은' 잡지인 시사 IN과 '괜찮은' 신문인 경향신문을 통해 연재한 글을 묶은 글이다. 반절은 시사IN에 연재한 '독서한담', 그리고 나머지 반은 경향신문에 연재한 '고종석의 편지'를 묶었다.
두 칼럼은 느낌이 상이하다. 독서한담은 친구에게 말을 건네듯 해체를 주로 썼고, 고종석의 편지는 편지의 수신인에 따라 어투가 조금 다르나 대부분 하십시오체를 주로 썼다. 문투에 따라 내용도, 그리고 그 내용이 지니는 무게도 차이가 느껴진다. 독서한담은 말 그대로 가볍게 읽은 책을 바탕으로 한담(閑談)을 풀어내는 느낌이라면, 고종석의 편지는 시기적으로 중요한 사람을 불러와 자신의 생각을 뚜렷하게 기술하고 있다.
책 반절을 나눠 앞과 뒤가 꽤 다르므로 먼저 앞과 뒤를 짚어보자. 먼저 독서한담. 이오덕 선생님의 문투를 빌렸다는 독서한담은 쉽고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가감 없이 던지고, 생각의 가지를 척척 펼쳐내는 것을 보다 보면, '이 사람은 왕성한 독서가고, 집필가구나.'라는 사실이 와 닿는다. 어떠한 책을 읽고 던지는 이야기를 통해, 정작 그 책보다는 던지는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가볍게 넘어가다 보면 정작 생각보다 남는 건 적다. 개인의 신변잡기를 소개하며 읽는 글은 재미있지만, 거기서 멈춘다. 그리고 친근하게 대하는 말투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느낌이 든다. 말미에 문투를 빌렸다는 표현처럼, 그 옷은 내 옷이 아니기에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짐짓 '한담'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가치관을 분명하게 주장하는 데서 친근한 말투는 오히려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오히려 후반부인 '고종석의 편지' 부분이 읽어봄직했다. 특정한 인물을 불러, 그에게 편지를 쓰는 식으로 흐르는 고종석의 편지는 읽어볼 만한 문장도, 기억할 만한 내용도 많았다.
근본주의자들은 선을 독점합니다. 자기들을 신의 사도라 여깁니다. 그들은 천사증이라 부를 만한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천사증은 극도로 파괴적인 순수주의, 청결주의입니다.(p.157)
테러를 자행하는 IS 대원을 향한 내용이나, 어쩌면 나 역시 이 근본주의에 빠져든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든다. 이어진문장도 역시 밑줄.
나 역시 스스로 악의 한 부분임을 선뜻 인정합니다. 우리는 불순함을, 불결함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p.160)
최근 오가며 오디오북으로 읽고 있는 책은 양창순의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다. 여기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우리는 누구나 약간의 위선과 이중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그것마저 상대방에게 들키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더욱더 솔직함과 진심을 가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단다.
실제 문장으로도 남긴 것처럼, 고종석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망설임이 없다. 쓰고 읽다를 읽다 보면 고종석의 가치관을 알 수 있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자신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낸 글을 썼다고 보는 게 옳으리라. 그는 자유주의자이지만, 신자유주의는 반대하고, 반 마르크스주의자*이다. 그리고 영남패권주의를 인식하고, 비판한다.*
나는 그의 정치적 스탠스를 같이 하지 않으므로,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의 (독서와 집필) 노력으로 이뤄진 가치관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엔 동의한다.
어쨌든 그는 '쓰고' 나는 '읽었다'. 그리고 그의 가치관을 보고 그의 다독가의 노력과 집필가의 노력을 봤다. 그의 정치적 방향성을 지지하고픈 마음은 별로 없지만, 어디에 휘둘리지 않고 보여주는 그의 풍경은 꽤 흥미로운 풍경이었다 하겠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 윌리엄 개스는 선생님(여기서 선생님은 에밀 시오랑)의 작품세계를 두고 "소외, 부조리, 권태, 공허, 퇴폐, 역사의 포악성, 변화의 비속함, 고통으로서의 의식, 질병으로서의 이성이라는 근대적 주제들에 대한 철학적 로맨스"라고 불렀습니다.(p.204)
*1. 그가 반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것은 생각이 굳기 전 포퍼와 같은 예방주사를 맞았기 때문이라 밝히고 있다.
*2. 영남패권주의에 관해 비판적이라는 사실은 그가 가장 많이 언급하는 책 김욱의 '아주 낯선 상식'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