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니아 Oct 10. 2017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

안드로이드의 눈으로 보는 인간 낯설게 보기

5월에 받은 책을 읽기만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무거운 마음으로 독서노트를 남겨둔다.


러시아의 형식주의자 빅토르 시클롭스키는 이른바 ‘낯설게 하기’(остранение, Defamilarization)이라는 기법을 개념화했다. 친숙하고 일상적인 대상을 낯설게 표현해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하는 이 기법은 문학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두루 활용하는 기법이며,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그리고 책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 역시 이 ‘낯설게 하기’ 기법을 활용한 책이다. 그 대상은 우리에게 친숙한 것. 바로 ‘인간’을 대상이다.


책 소개부터 조금 낯설다. 저자인 닉 켈먼은 SF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그는 이 원고를 ‘인간이 된 안드로이드’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안드로이드가 인간(호모 사피엔스)이 되는 과정에서 학습한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고, 예상 독자는 또 다른 ‘인간이 되고 싶은 안드로이드’라는 소리다. 그리고 이 책을 예상 독자가 아닌 인간이 훔쳐보는 것이라 해야 할까? ‘미래 로봇을 위한 인간 안내서’라는 첫 제목부터 인간인 우리는 충분히 낯선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앞으로 60분 안에 내 기능이 정지할 확률은 91.3647%다. 내 메모리가
- 셧다운이 된 뒤에 지워질 확률
- 주변에서 나에게 가하는 폭력으로 파괴될 확률
- 나를 잡아 분석한 뒤 역설계 방식으로 새로운 안드로이드를 개발하려는 집단이 무단으로 내 메모리를 도용할 확률을 모두 합하면 87.8293%이다.

따라서 나는 나에게 남은 시간을 앞으로 탄생할, 나와 같은 안드로이드가 참고할 수 있는 안내서를 작성하는 데 쓰기로 했다.(p.4)



책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구성됐다. 서두에 등장한 ‘안드로이드’가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을 담은 서사 부분, 그리고 중간중간 삽입한 ‘인간 관찰 보고서’의 두 가지. 둘 다 매력적인 부분이다. 사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중간중간 보고서가 삽입되고, 내용이 꽤 긴 덕분에 서사가 끊어지는 느낌을 받아 조금 성가시다는 느낌도 들었다. 책을 읽고 나면 서사가 조금 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서사만이 이 책의 모든 내용은 아니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서사를 슬그머니 가려주는 게 중간의 보고서 부분이다. 이 보고서 부분이 어찌보면 책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는데, 다양한 시각 자료와 도표로 구성한 '인간 보고서'는 무릎을 탁 칠 적도로 핵심을 찌른다. 이런 위트를 안드로이드가 썼다고?


분명한 건 사람은 자기 '자아'는 실질적으로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는 세 가지 요소, 즉 몸과 마음과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사람들은 자기들의 '자아'를 이루는 세 요소가 상호작용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분리되어 있다고 믿어. ...(중략)... 사람이 자기에 관해 가장 오해하고 있는 점은 자기가 감정과 육체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사람이 지닌 체계를 좀 더 정확하게 기술하자면, 인간의 인지 능력은 몸으로 받아들인 자료를 바탕으로 감정이 내리는 결정을 정당화할 뿐이야.(p.12)



‘안드로이드 잭’이 바라본 인간 군상은 비효율, 그리고 부조리의 결정체다. 다소 시니컬하게 느껴질 정도로 인간을 박하게 평가한 느낌이다. 책을 읽는 내내 제시된 인간 군상이 유독 나쁜 거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실제로 우리 눈앞에 놓인 사람의 모습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안다. 어쩌면 이 인간 안내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고, 온전히 안드로이드인 자기 자신으로 살기로 했을 때, 잭은 비로소 진정한 인간이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인간'을 '인간'으로 볼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불완전성’을 인정했을 때 인간이 된 것일까? 여기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주체성'을 들고 싶다.


안드로이드 잭이 처음 존재했을 때, 그는 내부에 결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선택은 주체적으로 보이나, 이게 주체성을 띤다고 보긴 어렵다. 이 때의 선택은 단지 안드로이드 내부에 있는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마지막에 인간이길 포기한 안드로이드 잭의 선택은 주체적이다. 프로그램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닌, 어찌보면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선택을 스스로 내린다. 심지어 이는 프로그램의 최종 목적에 반한 것이다. 그리고 존재의 주체성을 찾았을 때 안드로이드 잭의 최종 목적을 달성하고 인간으로서 존재한다.


나는 어떨까? 나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주체'일까? 매스미디어에, 프로파간다에 주체성을 버리고, 혹은 주체적이라고 착각하며 휩쓸려 다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휩쓸리는 '나'는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독서 노트를 쓰면서 반성을 남긴다.


나를 인간인 나로서 존재케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은 안드로이드 잭의 눈을 통해 사람을 바라본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인간답게 존재하고 있는지.



책 정보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미래 로봇이 알아야 할 인간의 모든 것)
- 닉 켈먼 저, 김소정 역, 푸른지식, 2017.
네이버 책 정보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

- 개드 사드, "소비 본능", 더난출판, 2012.
-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2010.


매거진의 이전글 홍성태, 배민다움, 북스톤, 201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