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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Sep 19. 2023

재계약을 거절한다는 것

판단의 기준은 전적으로 관리소장에게 달려있다.

   위탁관리 계약기간은 보통 3년이다. 꼭 그렇게 하라는 법은 없다. 통상 관리규약준칙을 가이드라인 삼아 입주자대표회의가 그렇게 정한다. 1년은 너무 짧고, 5년은 너무 길다. 일을 잘하고 서비스도 좋은 관리업자라면 3년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길게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그런 경우가 많다. 재계약을 하는 것이다.


   반대로, 서비스가 시원찮다면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험적으로 보건대, 관리주체를 바꾸는 배경에는 전, 현 대표들 간의 갈등과 불신이 깔려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비스 불만이 원인이 되는 사례 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보따리를 싸야 하일이 흔하다는 말이. 관리주체로서는 억울한 구석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재계약을 거절하는 것은 오히려 이례적인 결론일 수도 있다.


   대개 계약기간 만료 3개월 전쯤이면, 입주자대표회의가 현재의 관리업자와 재계약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시점이다. 재계약을 결의하면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게 되므로 별 문제가 없다. 반대로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한다면 일정이 바빠진다. 새로운 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일련의 절차에 착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내가 사는 단지에서 입주자대표회의가 현 관리업체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의한 일이 있었다. 입찰을 실시하여 새로운 업체를 뽑기로 한 것이다. 입주 후 5년이 지나도록 현재까지 식당과 카페테리아 등 일부 복리시설이 전혀 가동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컸다. 그 사이에 코로나(COVID-19) 대유행(팬데믹)이 장기간 지속되는 일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주체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의사결정이야 동대표들이 하지만, 대안이나 해법을 찾는 일은 거의 전적으로 관리소장의 몫으로 돌아간다. 너무나도 당연한 그런 지원활동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이 정도 되면 사실 달리 변명할 여지는 많지 않다.


   밉보인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관리소장으로 와서 일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근로계약을 연장하기 위해 일부 주민들과 은밀히 연합하여 구명운동을 벌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추태가 없었. 그로 인하여 일부 주민들 간에 날카로운 물밑 신경전이 벌어졌고 마을은 분열되었다. 소장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였고, 양식 없는 사람들이 부화뇌동한 결과였다. 마을이 입은 상처가 깊고 컸다. 급기야는 대표들이 소장을 교체해 달라고 결의를 하고 관리업체에 요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본사의 책임자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리를 피하는 바람에 만나기가 참 어려웠다는 것이 집행부 관계자로부터 들려오는 후문이었다. 본사가 나서주면 꼬인 문제들이 신속하고 명쾌하게 정리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지만 오산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온갖 난맥상만 드러날 뿐 사태를 매끄럽게 풀어내솜씨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3년 전, 계약을 체결하고 일을 막 시작할 즈음, 그 회사 대표가 단지에 와서 장밋빛 청사진을 좌~악! 보여주며 발표하던 일이 떠올랐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것은 실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말의 성찬에 불과하였다. 


   관리주체가 잘하고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관리소장에게 달려있다. 위탁받은 회사로서는 좀 더 잘해보고자 해도 소장을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다. 관리업체에게 인사권 등 실권이 없기 때문이다.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업자, 그리고 관리소장의 삼각관계를 들여다보면 그중 관리업자의 위상과 처지가 참 허접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정말이지 허수아비나 다름없다. 총알받이 혹은 보험적 수단으로 고안해 낸 산물이라고 예전에 들었던 말을 실감하고 있다.


   주택관리업자는 주택관리사 없이는 존속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관리소장 임명권을 주택관리관리업자의 손에 쥐어준 것은 지금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독립적으로 일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길은 거의 차단되어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라고 부르는 주택관리사가 주택관리업자의 명찰을 달지 않고서는 일을 할 수 없도록 누가 허락한 것인가. 다른 전문자격의 예를 보더라도 그러한 관계의 틀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관리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공고가 붙었다. 나는 재계약을 거절당한 기존 사업자가 과연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 유심히 지켜보았다.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여전히 문호가 열려있다고 해서 입찰에 다시 참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옳지 못한 행위라고 생각하였다. 너는 더 이상 안 되겠으니 그만 하차하라고 거부 판정을 받았으니 말이다.


   먹고 먹히는 아사리판에서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정도를 걷는 기업이라면 최소한 그 정도의 상도의는 있지 않을까. 이미 신뢰를 잃은 마당에 사실상 다시 뛰어들 명분은 없다. 그래도 감행을 한다면 그것은 입주민들을 우롱하는 도발행위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나간 3년을 복기해 보며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자성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재계약을 거절한 입주자대표회의의 입장도 크게 다를 바가 없게 됐다. 그 업체를 다시 선정할 수 있겠는가. 누가 봐도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럴 바엔 일찌감치 재계약을 하는 편이 옳았을 것이다.


   입찰등록 결과를 보고 나서 나의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재계약을 거절당한 기존 업체가 왔다. 이럴 수가...! 황당했다. 이런 경우 보통 불참으로 의사표시를 하는 대다수의 다른 업자들과는 사뭇 대조적인 행보여서 놀라웠다. 기필코 계약을 다시 따야겠다는 집착과 오기마저 느껴졌다. 어쩌겠다는 것일까. 자못 그 속셈이 궁금하였다. 다시 수주에 성공하면, 인적쇄신이라도 하겠다는 각오가 섰다는 것일까.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전과 다름없는 생각을 하고 무작정 반항하듯 들어왔다면 그것은 관리업자의 행패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인? 짬짜미? 시선은 동대표들에게 모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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