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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Nov 26. 2023

감사 사전 통보를 받고 경악하였다

주민들을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격일제로 일하던 기전과장의 역할변경은 예상외의 파장과 후유증을 낳았다. 24시간 교대근무제 대신 낮에만 일하는 일근제로 바꾸다 보니 불가피 직원 1명을 뽑아야 . 시중의 인건비가 예상외로 올라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다. 입주자대표회의도 부담스러워했지만, 숙고 끝에 상당폭의 급여인상 조건 허락해 주었다.

 

  그 후 6개월쯤 되던 지난달 말, 시청에서 관리사무소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앳된 목소리의 여자 직원이 다짜고짜 설명도 없이 이달 말 관리사무소에 감사를 나가기로 했다고 하였다. 문서를 시행하였으니 접수하고 감사준비를 해달라는 일방통보였다. 듣자 하니,  4명이 근무하는 우리 사무실에 1주일간 감사관 9명이 나온다고 하였다. 겁주는 거야, 뭐야. 경악할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감사 통보라서 무척 당혹스러웠다. 내가 무슨 죄를 지은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불쾌하고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이 나이에 감사를 받다니. 애초에 그런 단지일랑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일거에 허사가 되어버려 허탈하기만 하였다. 뒤통수를 사정없이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미 일이 벌어진 마당에는 다른 도리가 있을 수 없었다. 감독기관의 정당한 권한 행사에 성실히 임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어야 했다.


  그동안 일군의 노인들이 관리비 인상에 반발하며 입주자대표회의와 몇 차례 대화의 기회를 갖기하였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동대표들은 노인들의 주장을 듣고 오히려 아차 했다며 후회하듯한 표정을 내비치기도 하였다. 다만, 이미 자신들이 내린 결정을 이제 와서 번복할 수는 없지 않냐며 난감해하는 눈치들이었다.


  동대표들과의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재개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 노인들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 사태는 관리주체와 동대표들이 결탁하여 저지른 일이라며 싸잡아 비난하고 나섰다. 분개하는 기분은 이해할 수 있다지만, 근거 없는 주장과 부적절한 용어의 사용은 동대표들을 부글부글 더욱 화나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참자고 하였다. 금번 시청의 감사통보는 이들 노인 주민동의 서명을 받아 감사청구한 결과물이었다. 반응이 예상보다 빨라서 놀라웠다.


  직접 감사를 받는 사람치고 이를 반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가 한 일들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따져보겠다는데 아무래도 찝찝한 기분을 떨쳐버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하지 않던가. 더구나 정년퇴직하고 재취업해 일하고 있는 처지여서 나는 아무튼 귀찮짜증이 났다. 이제 티끌 만한 때도 손에 전혀 묻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굳게 작용하고 있어서 더욱 그러하였다.


  감정과 기분은 강약과 고저를 한동안 반복하며 뒤죽박죽이었다. 마침내 준비를 마칠 즈음에는 거의 자포자기 수준으로 가라앉아버리고 말았다. 마치 도마 위에 올려놓은 생선처럼 배를 좌~악 갈라놓고 다 드러내놓을 테니 볼 테면, 마음대로 보라는 식이 되었. 그러자 오히려 마음이 담담하고 차분해졌다. 거의 한 달 동안은 다른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펜을 들 수도 없었다.


  감사 통보를 받던 날, 경리 윤 주임이 기분 나쁘다며 당장 그만두고 다른 데로 가고 싶다고 하였다. 그동안 주민들에게 열심히 서비스했는데 결국 들로부터 배신받은 느낌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렇지만, 우리가 한 일에 대하여 우리가 직접 듣고 답변하는 게 최선이라며 조단조단 달랬다. 윤 주임은 다행히 나의 말을 따라주었고, 마지막까지 같이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문제의 다음주가 지나고 나면, 우리는 뜨거운 용광로를 통과한 쇳물처럼 한층 더 단단하고 강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약간의 상처가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대수는 아닐 것이다. 이럴 때 나그렇게 들먹였던 나이답지 않은 긍정과 의지를 다지는 내 모습을 다시금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한참 젊었을 때의 승부욕이 잠시 꿈틀거리는 것인지, 이제는 조금도 흠 잡히고 싶지 않다는 완벽주의의 발로인지, 대체 어느 쪽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관리사무소장은 어떤 경우에도 주민들의 의사에 반하여 일을 하거나 각을 세우며 일을 할 수는 없다. 결코 주민들을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한 번 이미지가 구겨지게 되면 좀처럼 다시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자 한다면 그것은 아름답지 못하다. 어리석은 일이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뒤돌아볼 것 없이 서늘하게 할 일이다. 오늘은 심란하면서도 새삼스런 생각으로 무덤덤하게 보낸 주말의 하루였다.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지고 있다. 연말이 한 달 앞으로 다가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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