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일을 어떻게 혼자서 다하죠?
시청 감사 막전 막후
지난달 중순, 토관사(土管士) 모임에 갔다가 근재보험을 들어놓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다. 토관사는 왕년에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정년퇴직 후 주택관리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내가 편의상 부르는 약칭이다. 짧게는 최근 몇 개월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제각기 경력이 다양해졌다.
지난가을, 사업장에서 예기치 않은 산재사고로 어려움을 겪었던 한 선배가 들려준 조언이었다. 산재보험으로 커버하는 금액이 제한적이어서 이 보험이 있으면 그 모자라는 금액을 상당 부분 메꿀 수 있겠더라고 하였다. 당장에 시청 감사를 앞두고 있는 처지여서 나는 혹시나 과태료도 내주는 것인가 하고 귀가 솔깃하였다.
흔히 하는 말로, 일단 감사가 나오면 과태료를 피하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그런 말을 하두 자주 들어서 이제 꼼짝없이 그 당사자가 된 나는 은근히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 보험에 정통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 그러면, 그렇지 - 과태료를 대납해 주는 그런 보험은 없다며 싱겁게 웃었다. 땟자국 하나도 묻히고 싶지 않은 심정에서 튀어나온 나의 지나친 염려였다. ㅋ
감사를 1주일 앞두고 관리주체 본사에서 회계담당 매니저가 관리사무소를 다녀갔다. 감사에 잘 대비할 수 있도록 사전에 회계 관련 서류를 꼼꼼하게 점검해 주었다. 그 밖에도 각종 필기도구와 커피, 음료, 과자 등을 감사장에 미리 센스 있게 비치해 두면, 무언의 호감을 살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건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터여서 서류점검보다 오히려 더 반갑게 와닿는 팁이었다.^^ 나름대로 짚어볼 만한 곳을 점검하고 챙기며 사전 준비작업을 마쳤다.
바야흐로 감사가 시작되었다. 감사관 9명이 1주일씩이나 머물며 들이 팔 것이라고 짐짓 예고된 상황인지라 나는 도무지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완전히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시청 공무원인 주무관은 외부 전문가로서 위촉한 변호사, 회계사, 기술사, 주택관리사 등은 각자 자기의 본업을 하면서 별도로 시간을 내어 나오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감사관들은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관리소장인 나를 감사장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럴 때마다 개별적으로 나의 자리로 찾아와서 물었다. 이 서류 어디에 있죠? 좀 찾아주세요. 이건 왜 그렇게 처리했죠, 이렇게 해야 맞지 않나요? 대개는 그들이 찾는 서류를 재빨리 찾아주는 일이 예상보다 많았다.
변호사는 질문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묻더라도 했냐 안 했냐. 있냐 없냐 식으로만 확인하는 정도여서 다소 딱딱하고 차가웠다. 회계사는 시종일관 경리주임한테만 묻고, 소장인 나는 전혀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 시청 주무관들도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로만 일관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이 혹시 이미 서면으로 기재해 제출한 나의 연령을 파악하고 그러는 것인지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중 연배가 나와 비슷해 보이는 기술사와 주택관리사는 다른 감사관들과는 달리 비교적 얘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설명하고 이해하는 그런 방식이 좋았다. 그들은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하여 앞으로는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냐며 나의 대답을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나는 그들이 제시하는 합리적인 방안에 흔쾌히 동의하며 동시에 많이 배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감사가 모름지기 그렇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어서 반갑고 감사했다.
감사관들은 특히 사전에 주민들로부터 접수한 민원사항의 사실확인과 실태파악에 주력하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차후 일일이 답변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협조해 달라고 하였다. 제도와 절차를 잘 모르고, 또한 궁금해서 제출하였겠지만, 대부분은 그게 왜 민원이 되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 상당하였다.
주차장 천장에서 오물이 떨어져 차에 묻었다며 피해보상을 요구하였으나, 인과관계 규명이 어려워 스스로 보상요구를 포기한 사람이 그냥 보험처리를 하면 될 것을 왜 안 해준 것이냐며 민원을 낸 사람, 내가 부임하기도 전인 수년 전 예상 공사금액으로 계획에 책정한 가격은 실제 입찰에 부치면 그보다 높아질 수도 있고, 낮아질 수도 있는 것을 두고 당초 계획금액이 너무 비싸게 책정되었다고 지적하며 비리가 있는 것 아닌지 철저히 밝혀달라고 민원을 제출한 사례 등을 접하고서는 심히 답답하고 허탈하기만 하였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감사가 끝났다. 어떤 감사관은 수고했다며 가는 길에 나를 찾아와 인사를 하기도 하였다. "소장님, 근데 이 많은 일들을 어떻게 혼자서 다하죠? 참 신기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감사관님께서 그런 고충을 직접 알아주시니 듣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군요. 제발 일이 좀 줄어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힘든 1주일이 지나고 나니 온몸이 천금같이 내려앉았다. 주말 내내 잠에 곯아떨어져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했다. 아파트 관리업무에 관청이 이렇게 관여하고 간섭해도 되는 것인지, 허울 좋은 사적자치는 도대체 어디에 내팽개쳐진 것인지 그저 뒤끝이 씁쓸할 뿐이었다.
마음가짐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하여 그동안 길어도 일부러 참았던 손톱을 이제야 말끔히 깎았다. 겸손을 다지기 위해 일부러 변기 청소도 하였다. 그리고 헬스장으로 갔다. 운동을 하며 그동안 마음속에 쌓인 온갖 잡념과 쓰레기를 모조리 태워버리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구멍 난 양말을 벗어서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찌들었던 기분이 후련해지며 마음이 차차 평상심을 되찾는 것 같았다. 왠지 자신감이 더 생기며 다시 기분이 펴지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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