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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Sep 05. 2022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보물에 눈 뜬 신혼부부의 브라이틀링 카페 탐방기

물욕 없는 줄 알았던 우리 둘은 예물을 사면서 비싼 물건의 세계에 눈을 떴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우아하고 다층적인 럭셔리의 세계를 밤낮없이 탐구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의 인스타 피드는 시계와 가방, 구두로 도배됐다. (텅장이 의욕을 따라가지 못해 한편은 다행이다.)


그중에서도 시계는 분명 특별하다. 스마트폰, 스마트 기기의 시대에 접어들며 '시간을 알리는' 시계의 본질이 퇴색된 지 오래지만 어쩐지 시계의 가치는 떨어질 줄 모른다. 실용성과 동떨어질수록 럭셔리 굿즈의 존재 이유가 선명해진다는 사실을 시계가 입증한 것이다. 하여간 인간은 하등 쓸모없는 물건을 갈망한다.

얼마 전 시계의 세계에 매료된 깜보가 찾아낸 브라이틀링 카페를 방문했다. 주말의 이태원치고는 한적해서 좋았던 곳. 값비싸고 아름다운 브라이틀링의 시계를 원 없이 구경했다.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까르띠에나 롤렉스와는 차별되는 매력을 갖고 있다. 굉장히 마초적인데 동시에 섬세하다. 여자 시계는 탑건의 제니퍼 코넬리가 착용할법한 디자인이다. 페미닌하지 않지만 지적이고 단단하다. (샤를리즈 테론이 이 브랜드의 뮤즈 중 하나다)


라고 마치 당장이라도 살 수 있듯이 말했다만, 현실은 냉혹하다. 그 다음 날 아울렛에서 깜보가 눈여겨봤던 브랜드에 들어갔다. 피팅에 적극적인 깜보가 웬걸 옷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 내려놓았다. 매장을 나가며 말했다. "0이 많이서 내가 숫자를 잘못 본 줄 알았어." 그가 만지작거렸던 촉감이 끝내주던 그 자켓의 가격은 무려 1200만원. 역시 생존에 꼭 필요한 의류는 아니었다. 그 보다는 내가 이 생태계의 꼭대기에 위치한 인간이란 걸 증명하는 상징물로 통할 것 같은 그런 옷이었다. 몇백만 원짜리를 뒤로할 땐 빈말이라도 '나중에 사줄게'란 말이 나오는데, 이때는 빈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비싼 시계 무더기와 오랜 시간 부대낄 수 있도록 자리를 깐 브라이틀링 카페는 특별하다. '내 브랜드에 대한 당신의 충성심을 시험해 보겠어'식의 오픈런 필수 브랜드와는 달리 '찬찬히 둘러봐. 내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을 걸'식의 여유로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접근 가능성을 차단하고 희소성을 극대화할수록 외려 매출이 는다는 점을 주류 명품 브랜드가 입증했다만, 이 전략이 브랜드 메시지의 가치까지 띄워줬을 지는 미지수다. 반대로 판로를 활짝 열어서 '누구나 원하지 않더라도, 나를 진짜 원하는 당신 하나면 충분해요'라는 메시지는 무척 신선하고 도발적이다.


브라이틀링의 다정한 회유에 넘어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장 꽂혔던 모델을 찾아봤다. 1400만원. 가격을 확인한 후 진짜 원했던 마음이 희미해지고 말았다. (십분 양보해서 시계의 세상에서 1천만원대는 '끔찍한' 가격은 아니다. 그런데 내 세상에선 끔찍하다! ) 카페 차려가며 여유 부리는덴 다 이유가 있었어....그래도 여러분. 예쁜 시계를 셀러의 레이저 눈빛 없이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는 브라이틀링 카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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