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손 Jun 14. 2023

빗속에 몸을 맡긴 적이 있나요

비오는 날의 축축하고 따뜻한 심상

오후 세시께였나,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샤워기처럼 쏟아지는 빗줄기가 건물을 두드리는 소리에, 바람에 간헐적으로 뭉친 빗줄기가 커튼같은 모양을 하는 장관에 놀라 사무실에 앉아있던 전원이 창가에 일렬로 섰다. 마치 키만 다른 미어캣처럼 목을 쏙 빼고 광화문 사거리를 내다봤다.


과거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후배였다.


갑자기 고등학교 때가 생각나요.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이렇게 비가오던 날 친구들이랑 뭐에 홀린 듯 빗속에 뛰어들어 운동장을 달렸어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친구들이랑 미친 듯 웃었어요. 지금은 겁이 많아져서 감기에 걸릴까봐 그러지 못하는데, 무릎이 아플까봐 몸에 힘을 빼고 달리지도 못하는데 말이에요.


후배의 이야기를 들으니 후배의 결혼식 풍경이 스쳤다.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후배의 행복을 빌어주던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아이들, 자신들이 디즈니 공주파였다고 당당하게 소개했던 당돌하게 귀여운 그 아이들이 말이다. 떨리는 목소리는 서로를 향한 믿음의 주파수 같았고, 눈물이 그렁그렁 차 있었던 눈은 추억으로 꽉 차버린 범람 직전의 댐 같았다. 문득 후배가 빗속에서 일탈을 꾀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디즈니 공주파가 아닐까란 생각이 스쳤다.


청춘 드라마의 과거 회상씬 같은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에 젖은 불씨가 피어올랐다. 회색 도시 어드메에 젖은 장작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비오는 날의 심상이 항상 차갑고 회색빛인 건 아니다. 어떤 비오는 날은 기억의 흙에 매몰되어 있었던 따뜻한 기억을 들춰낸다. 마치 어느 언덕에 묻혀있다가, 빗방울의 집요한 공격에 모습을 드러낸 보물상자처럼.


디즈니 공주파는 아니지만 나에게도 비를 함께 맞았던 친구가 있다. 중간고사였는지 기말고사였는지 방학식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평소보다 일찍 하교한 날의 일이다. 등하교 메이트였던 ㄱ과 나는 그날따라 마을버스에 몸을 싣고 싶지 않았다. 굳이 가파른 언덕과 보행자에게 관대하지 않은(차가 가까이서 쌩쌩 달리는) 인도를 따라 걸어서 집에 가고 싶었다. 을씨년스러운 길이었지만 동행이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당시 호르몬 부자였던 우리는 학교 생활과 인생에 대한 불안과 그 불안에 비례해서 증폭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두고 하염없이 떠들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폭우가 쏟아졌다. 피부와 건강에 좋지 않은 도시의 산성비라는거 둘 다 아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터졌다. 선생님 눈 밖에 나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던 모범생 둘이, 필기 가득한 교과서와 노트가 젖어서 눌러붙어 버린걸 알고도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우리는 우산이 아니라, 집 근처 분식집에서 어묵 사먹을 돈이 당장 없다며 한탄했다. 그때 필요한 건 비로부터 나를 보호할 도구가 아니라 비로 차가워진 몸을 데워줄 어떤 것이었나보다. 사춘기야말로 그런 시기가 아닐까 싶다. 어른들이 유년기동안 쉬쉬했던 위험요소와 비밀을 파헤치고 싶지만, 파헤치다 다쳐도 회복을 위해 돌아갈 수 있는 예측가능성의 공간을 필요로하는 그런 시기말이다.


그 친구도 나의 결혼식에서 축사를 했다. 내 친구 역시 믿음의 주파수로, 곧 터질 것 같은 댐 같은 눈빛으로 축하의 말을 건넸었다. 그때 나는 차마 친구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참고 참았던 무언가가 쏟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부 화장을 받은 내 얼굴에 폭우가 쏟아졌을지도 모른다. 메이크업에 들인 돈이 얼만데, 본식 스냅 작가 둘이나 불렀는데. 나는 속세의 주문으로 그 시간을 겨우 버텨냈다.


미국의 마초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남편이 들었던 예시 하나가 생각난다. 미국에서는 비가 쏟아질 때 남자가 우산을 찾기라도 하면 "너 비 맞는게 무서워?"라며 놀리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다소 편협한 관점이라고 생각했는데 후배와 나의 과거사(?)를 돌아보니 '너도 이 순간만큼은 자유로워졌으면 해'의 조리돌림식 표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비오는 날의 제약에 한탄한다. 애써 잡은 테니스 코트가 취소되고, 기대했던 한강 피크닉을 기약없이 미루고. 일정의 관점에서 보면 비는 분명 방해물이다.


하지만 존재의 관점에서 비는 해방의 발판이 아닐까 싶다. 비 앞에선 화장과 그 어떤 장신구도 무용해진다. 내가 메고 있고, 입고 있고, 걸치고 있던 그 모든 것들이 짐처럼 느껴져 다 내려놓고 싶어 진다. 빗속에서 가벼우려면 모든 걸 벗어던질 수 밖에 없다.


후배의 친구들과 내 친구가 친구의 새 출발을 축하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선 건, 어쩌면 해방의 쾌락을 함께한 이에 대한 예우일지도 모른다. 짧게나마 함께 했던 자유의 시간에 대한 헌사일지도 모른다. 삶에 수반되는 짐을 덜기는 커녕 배우자의 짐까지 들겠다 나선 친구에게 찰나의 자유의 순간을 상기시켜주려는, 애틋한 선의일지도 모르겠다.


(2023.06.14에 쓴 글)

매거진의 이전글 나와 닮은 아이와의 이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