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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Sep 04. 2023

나의 신장과 수명을 너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아픈 고양이를 둔 집사의 마음

화장실 갈 때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습관이 있다. 시선의 끝에 미오의 상석이 있기 때문이다. 눈이 마주치면 녀석은 꼭 ‘냐옹’을 건넨다. 용건 시원하게(?) 잘 보고 오라는 격려인건지 ’뭘 봐 고양이 처음보냐‘식의 시비인건지 알 턱은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화장실 입성 2초전 냐옹은 나의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개를 돌려도 냐옹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아직 인식을 따라잡지 못했는지, 화장실을 갈때마다 미오의 상석으로 눈을 돌린다. 크림색 털덩어리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때 비로소 미오의 부재를 체감한다. 아 녀석은 병원에 있었지.


2016년 처음 미오를 들이고 한 6개월간은 내 공간에 고양이가 있는 일상이 무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점점 무뎌졌다. 여전히 미오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지만, 녀석과 함께하는 매일매일에 새삼 감사하지는 않을만큼 익숙해졌다. 재택 근무를 하다가 고개를 돌리면 눈이 마주친 미오가 냐옹- 하는 그런 일상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존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수단이 부재라고 했던가. 집에 미오가 없는 날이 길어질수록 미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얼굴 개기름에 달라붙던 잔털의 질감이, 남편과 대화하고 있을 때 앙큼하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사무치게 그립다. 녀석이 당장 내일 날 떠날 수도 있다는 무서운 현실인식을 한 순간부터, 극심한 탈수로 무게가 2kg 남짓한 이 작은 생명체를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많이들 ’고양이가 말을 할 줄 알다면 얼마나 좋을까‘ 탄식하는데, 동물들은 동물 나름대로 사람의 언어로 애정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배웅과 마중이 사람의 방식으로 동물이 보여주는 애정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미오도 그랬다. 출근할 땐 문 앞까지 따라와 ’사료값 두둑히 벌어오라‘는 듯 빤히 쳐다봤고, 귀가할 땐 중문 앞에서 꼬리를 들고 반겼다. 남편이 키패드를 누를 때 쇼파에서 폴짝 뛰어나가는 모습도 여러 번 봤다. 귀가하는 남편과 그를 반기는 미오를 보는 게 내 행복의 구성요소 중 하나였다.


고양이말을 할 줄 알면 좋겠다. 아픈애한테 차마 사람말까지 하라고는 못하겠다. 고양이 말로 나는 너를 병원에 버린 게 아니며, 너가 밥을 잘 먹어야 집에 다시 갈 수 있다고 조금만 더 힘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동안 빠진 너의 털뭉치의 부피보다 훨씬 더 너를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똥냄새 고약하다고 놀리지 않을테니 제발 무사히 돌아와줘 미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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