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팀과의 만남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경연구사 시험 불합격. 2년여간의 노량진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집인 강원도 춘천에 가서 칩거했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결혼하고 누군가는 직장에서 승진하며 자리를 잡기 시작하던 때였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잘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면서까지 우겨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결국 시험에도 떨어지고 부모님께 손 벌리며 밥만 축내고 있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물론 그런 상황에 있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쓸모없지 않다.) 그 당시 최진실과 안재환의 자살 기사로 떠들썩했던 때였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으나 차마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순 없어 매일같이
'내일 아침 눈 뜨지 않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며 살던 때였다.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던 시절 울산의 한 정부지원기관에서 채용공고가 났다. 이전에 일했던 회사의 울산지부라서 냉큼 지원하고 면접을 보러 갔다. 울산이 부산 옆에 있다는 것도 태생 처음 알았다.
울산대학교 산학협력관에서 내려 4층 사무실로 향하며 또각거리던 내 구두 소리, 너무 떨려서 쿵쾅대던 내 심장소리가 아직 들리는 듯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면접을 보러 간 날은 금요일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근무 가능하냐?"
고 하셨다. 벼랑 끝에서 내민 손이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 길로 춘천으로 가 짐을 싸서 하루 만에 다시 울산으로 내려갔다. 울산에 도착하자마자 부동산으로 향해 공인중개사와 함께 발품을 팔아 반나절 만에 집을 구했다.
백조생활은 면했으나 사방에서 낯선 사투리가 들리는 생경한 땅은 마치 외국 같았고 아무 연고도 없었던 울산에서의 생활은 외로움 그 자체였다. 외로움이 뼛속까지 사무칠 무렵 울산감리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드림팀을 만났다.
영화를 애정하는 나, 디자인을 잘하는 다클이, 드라마를 즐기는 령쓰, 미술을 사랑하는 쏘금이. 꿈 많은 청년들의 만남이었다. 우연히 모이게 된 네 명은 각자가 좋아하는 문화적 소재와 성경 말씀을 접목시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고3에서 청년부로 올라가는 친구들이 신앙적으로 방황하기 딱 좋은 수능 이후 겨울방학 기간 고3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었다. 일명 고3프로젝트. 세부적인 기획안도 없이 한 장 짜리 개요만 들고 고등부 목사님과 청년부 목사님을 찾아갔다.
"고 3 아이들 청년부 올라가기 전 신앙적으로 방황할 수 있는 시기에 문화와 성경 말씀을 접목시킨 프로그램을 함께 하고 청년부와도 얼굴을 익혀 놓으면 앞으로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희가 프로그램 세부계획 짜서 진행해 봐도 괜찮을까요?"
마침 고3 아이들을 신앙적으로 어떻게 잡아주면 좋을까 고민하던 목사님 두 분은
"필요한 예산이 있으면 말하라."
며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다.
그날부터 내 자취방은 드림팀의 아지트가 되었다. 원룸이었지만 주방과 베란다도 분리되어 있고 싱글침대와 4인용 테이블을 놓고도 여유가 있는 나름 넓은 공간이어서 드림팀 모두가 함께 회의하고 뒹구르르 하기 충분했다. 령쓰가 아이디어를 던지면 쏘금이가 받아 구체화시키고 다클이가 필요한 준비물을 말하면 내가 최종 정리해 문서화시켰다. 쿵작이 잘 맞았다.
어떤 날은 새벽까지 회의를 진행하다 그대로 지쳐 쓰러져 자기도 했다. 드림팀 중 유일한 직장인이었던 나는 내 방에 누워 자고 있는 녀석들을 뒤로한 채 아침에 회사로 향했다.
"언니, 잘 다녀와."
"돈 많이 벌어와."
밤을 새워서 회의를 하고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고 헤싱헤싱거리며 출근해도 마냥 행복했다.
1회기 당 두세 시간의 프로그램을 3회기 준비했다. 목사님의 컨펌을 받고 프로그램 리허설을 하고 고3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고3프로젝트는 성료되었다. 총 3회기의 프로그램에 참석한 학생들은
"재밌었다."
"후배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나의 삶 가까이 계시는 줄 몰랐다."
라며 즐거워했다. 고3프로젝트에 참석했던 친구들 중 타지로 대학을 간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이 청년부로 올라왔다.
청년부 목사님은 다음 해 청년부 수련회를 드림팀에게 맡기셨다. 드림팀은 영화와 오디션 프로그램을 접목시켜 수련회를 기획했고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을 100여 명의 청년들이 함께 누렸다. 울산감리교회 청년부에서 우리는 유명했다. 자칭 타칭 드림팀으로 불렸다. 이런 말 조금 민망하지만 우리가 울산을 떠난 뒤에도 드림팀을 기억하는 청년들에 의해 고3프로젝트와 수련회 에피소드는 10년 넘게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하하.
드림팀도 십 년이 지난 그때의 이야기를 가끔 한다. 좋아하는 일을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즐겁게, 추진력 있게 해내는 경험은 드물다. 게다가 결과까지 좋았으니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것도 없었고.
회사 생활을 하며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때, 하고 싶은 일이 막힐 때, 혼자서 일의 진도가 안 나갈 때. 드림팀은 가끔 그때를 추억하며 함께였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이내 그때의 기억을 거름 삼아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역량을 키우고 있다. 나는 출간을 위한 글을 쓰고 있고, 블로그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 주 3회 이상 포스팅을 한다. 다클이는 창업 관련 업무를 하며 현장에서의 지식과 경험을 쌓고 있다. 령쓰는 두 아들을 키우며 드라마 강사로 도약하길 꿈꾸고 있다. 쏘금이 역시 육아와 동시에 미술학원 창업을 준비 중이다. 지금은 국내 각지에 떨어져서 생활하고 있지만 언젠가 다 같이 모여 우리만의 프로젝트를 다시 하게 될 그날을 고대하고 있다.
단 한 번이면 충분하다. 모든 열정을 쏟아붓고 희열을 느끼며 함께 숱한 밤을 새웠던 그 경험은 삶을 살아내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한 번을 해냈으니 다음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함께 할 누군가는 십년지기 친구들이어도, 내 곁의 짝꿍이어도, 나 자신이어도 좋다. 또 어떤 일이든 상관없다.
생애 한 번은, 함께 뜨거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