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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mGH Nov 18. 2018

[생각01] 고양이 때문이 아니야

딩크 아닌 딩크가 된 진짜 이유


우리집에는 인간 2명과 고양이 2마리가 함께 산다. 지난해 결혼 후 내 옆을 채운 남편, 고양이인 해리와 새봄이가 내 가족이다. 엄마와 아빠, 자녀 2명이 구성한 '완벽한 가족'의 형태는 아니지만, 우리는 행복하다. 지난해 가족으로 합류한 남편도 고양이들을 아낀다. 틈이 나면 장난감을 흔들고, 코를 막고 화장실을 청소한다. 반려동물을 처음 맞이한 남편은 꽤나 잘 적응하고 있다.


나는 행복한데, 주변에선 난리다. 아기옷 대신 고양이 스크레쳐를 고르는 모습을 답답해한다. 이제 머리가 희끗한 아버지는 "저것들, 언제 죽냐"라고 물으신다. '고양이 때문에 아이가 안 생긴다'는 게 이유다. 관심과 애정이 고양이에게 쏠렸기 때문이란다. 아버지가 왜 손주에 집착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하니, 고양이라도 탓하고 싶은 속상함은 조금 알 것 같다.


▲ 새봄이는 모란시장에서 7년 전에 데려왔다. 오자마자 호흡기 질환이 생겨 병원을 들락거렸다.


잔소리는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고양이를 내보내면 아이가 생길 거라고 추측한다. 거기엔 '아이는 낳아야 한다'는 무조건적인 (그들의) 당위와 '국가 경쟁력'을 우려하는 공적인 표어들이 딸려온다. 아이는 '축복'이며, '행복'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와 남편이 져야 하는 책임에 대해선 쉽게 언급하지 않는다. 다자녀 가족에겐 대출금 이자를 깎아 준다는 '국가'는 그나마 양반이다.




나는 월요일 오전에는 테니스 레슨을 받는다. 월요일에는 오후 1시에 출근하는 덕분이다. 4.5일 동안 내 커리어를 쌓기 위해 노력한다. PR담당자로서, 조직과 외부 채널을 잇는 역할을 한다. 미팅을 하고 자료를 작성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퇴근 후에는 회사 모임을 갖거나, 친구를 만난다. 오후 9시 30분, 필리피노 영어선생님과 30분 동안 통화를 하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일찍 귀가할 때는 침대에 누워 남편과 유튜브를 검색한다. TV를 끄고 웹툰을 보고, 브런치 글감을 고민하다 보면 눈이 감긴다.


아이를 낳으면 모든 패턴은 한 번에 바뀔 것이다. 만족스러운 현재 생활을 깨부수어야 한다. '딩크'로 스스로를 규정한 건, 고양이 때문이 아니라 내 생활 때문이다. 고양이는 출산, 육아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술 한 잔 맘 편히 마실 수 없는 삶, 자기계발보다는 아이의 성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책임감, 연인이 아닌 육아공동체로 재편성할 남편과의 관계.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더라도, 마음은 집에 있는 아이에게 쏠릴 확률이 높다. 여기에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복잡해진다. 현재보다 무엇이 나을지 판단하기 어렵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존재, 그 자체로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을까.


누구는 이렇게 말한다. "부모님이 안 도와주신대?" 부모로서의 책임을, 나의 부모와 공유하라고 한다.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양가 부모님의 연세는 이제 예순 언저리에 다다랐다. 1년에 1번씩 받는 정기검진 후에는 추적 검사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는다. 무릎이 아파 주기적으로 병원을 가야하고, 백내장 수술 후 검진을 받아야 하는 분도 있다. 심지어 우리의 조부모를 각각 보필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우리의 아이를 우리 부모에게 맘 편히 맡길 수 없다. 생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부모를 희생시키긴 어렵다. 나와 남편의 교육을 위해 자신의 청춘을 태운 사람들에게, 또 다른 짐을 부탁하는 셈이다. 현실적 타협이 필요하지만, 그 불편함을 견딜 자신이 없다.





나는 딩크면서, 딩크가 아니다. 지금은 출산을 계획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언제든 마음은 변할 수 있다. 30대 중반에 진입하면서, 난자를 냉동해야 하나 고민을 하는 걸 보면 그렇다. 몇 년 뒤 출산을 준비하고 싶을 수 있다. 아이가 없는 부부만의 삶을 결정한 건 아니다. 다만, 현재 생활에 대한 높은 만족도, 출산 후 일어날 변화에 대한 두려움, 현실적 조건을 고려했을 때 일단은 딩크로 살기로 했다.


▲해리는 분당구 탄천에서 고모를 따라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남편은 자기 삶을 개척한 고양이라고 평가한다


가끔은 나에게 '이기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섭리'를 거스른다고 말이다. 하지만,  타인의 판단은 유보해달라. 결정은 쉽지 않았다. 고양이 때문에, 혹은 출산 과정에서 겪는 육체적 고통 때문이 아니다. 수십 가지 차원의 이슈가 겹친 문제다. 아이를 낳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부부들에게 경외심을 가질 정도로, 출산과 육아는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신중하다. 고민과 결정, 그리고 책임은 온전히 우리 부부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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