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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Mar 28. 2024

사람을 사랑하는일은 행복해야 한다.

질투

" 친구 하기로 했으면, 편하게 문자도 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냐? 근데

3일 전 통화 이후로 문자 한 통 없다. 그래서 조금 속상해"


" 둘이 친구 하기로 했으니까 네가 편하게 문자 하면 되잖아?"


" 언니 난 그런 거 안 해. 한 번도 내가 먼저 해 본 적 없어 언니도 알면서.."


그녀와 6년 가까지 알고 지냈다. 돌싱이 되고 나서 한 번의 사랑이 실패하고,

심한 상실감에 바닥을 치고, 겨우 나아지고 있을 때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1년 후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고 그녀는 3년의 뜨거운 연애 후

작년에 헤어졌다.  그리고 얼마 전 마음 설레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녀의 과거 연애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나는 그녀의 연애세포 속 열정을

함께 공감했었다. 우리는 한마디로 같은 금사빠의 피를 같이 공유했다.

나는 그저 간접적 혼자만의 감정으로 그 감정을 느끼곤 했다.


  그녀는 연애세포가 뜨거웠지만 수동적인 연애관에 길들여져서, 언제나

남자가 리드하는 연애를 선호했다.   먼저 전화하거나 만나자는 말을 하지

않고, 남자가 먼저 주도하도록 유도하거나 남자가 적극적으로 나오면

못 이기는 척 들어주는 연애를 했다.


 그녀가 돌싱이 되고 나서 했던 첫번째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강렬했는지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마치 내가 직접 경험한 듯했다.  온전히 자신을 위해 홀릭된 있던 남자에게

그녀는 모든 걸 올인했다. 남자는 자신이 보낸 문자에 단 몇 분이라도 답이 없으면 불안해하고,

그녀가 지인인 다른 남자와 소통하는 것만으로 불안하며 자신에게 집착했었던

남자를 그녀는 사랑이 깊어서라고 생각했다.  작가였던 남자 친구는 특별했고, 그가 쓰는 언어에

그녀는 매혹되어 둘만이 존재하는 듯한 몰입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끝은 매우 비참했다.  남자는 3년 차에 그 사랑에 권태를 느꼈고, 점점 새로운

대상을 찾게 된다.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설렘을 찾아 양다리를 걸치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핸드폰을 뒤지고, 노트북을 뒤지면서

질투와 의심, 피해 망상증으로 결국 신경쇠약에 걸리고 만다.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을 만큼 심각해져서, 그와 이별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별은 쉽지 않았다.

그녀는 그와 헤어지지 않으면 자신의 정신이 살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녀가 그와 헤어지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스스로 자립하기까지 1년 반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 난 이제 정말 사랑에는 관심 없어. 이젠 예전 같은 그런 사랑은 안 해. 난 이번에는

별로 무덤덤해 이제는 상처 입지 않아. 지금 헤어진다고 해도 난 아무렇지도 않아"


그녀는두번째 연애 기간 내내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나에게 얘기했다.


그녀는 한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 남자에 충실했다.


 지인들과의 모임에 남자들이 끼면

내키지 않아 했다.. 아무런 관계가 아니어도 그 남자에게 솔직하지 못하는 관계는 불편하다고 여겼다.


" 난 이해가 안 돼 네가 떳떳한데.. 왜 그런 걸 신경 써, 그냥 지인들일뿐이잖아 남자가 아니라"


" 그래도 남자 친구가 신경 쓰잖아. 다른 남자 만나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 난 거짓말 하는 거 싫어"


" 근데 있잖아. 이건 니 사생활이야 그 남자와 상관없는."


그녀는 변했다고, 늘 말했다.  예전 같은 사랑은 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자신은

예전남자 친구에게 자신이 집착했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언제나 지금의 남자 친구에게 쿨하게 대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헤어져도 난 아무렇지도 않다고 늘 스스로를 점검하고 있었다.


 한 남자를 향한  질투 때문에 거식증으로 일 년간 정신과치료를 받고,  그녀의  사랑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중년의 사랑은 여인들에게 위험하다고 한다. 그 상처를 극복할 회복 탄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격과 지적능력 성숙함 을 갖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에 빠지면 모두 똑같은

사람이 된다.

 사랑의 구덩이는  예외가 없다. 더 많이 사랑하면 더 깊게 빠지는 것이다.


 사랑이 깊을수록 질투와 의심은 크고 구덩이는 깊다.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되고  육체적으로 의존하게 되고 정신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의존성이 스스로의 세계를 서서히 붕괴시킨다.


 여자는  남자보다 사랑에  더 취약하다.

사랑에 목숨을 걸기도 하고

사랑만으로도 여자는 살아갈 수도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데 있어 질투가 없다면

죻을까?


난 언 제나 내 사랑의 크기를 착각한다.

내 질투는 내소망의 크기였다. 나의 사랑의 숭고함을

뚫고 나가는 원동력 같은 것.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내가 타들어가도

내 사랑의 크기는 줄지 않고 넓어지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결국 내 질투는 불완전 연소되고.

내고통의 일부가 재로 남아 난 반쯤 불탄 서커 먼 공허를 떠안게 된다.


천진난만하게 휘몰아치는 정겨운 언어들을 즐기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건 어쩌면 일상의 즐거움인지 모른다.

하지만 기대와 바람은 늘 마음에 구멍을 남긴다. 그녀처럼.

 뚫린 구멍이

불탄 자리 보다 더 공허하다.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또 글을 쓰나!

휑한 바람이 분다.

다시 예전처럼 생기 없는 언어들이 공해처럼 떠다닌다.


언젠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 넌 하나도 안 변했어.  우린 변하지 않을 거야.  단지 자기 방어기제만을 강화하고 있을 뿐이야"


그녀는 그렇게 자기 치유를 위해 긴 시간을 보내고, 자아성찰을 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들여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자신을 마주했을 때 어떤 기분일까?

그녀가 스스로 그 남자에게 충실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통제한  그 순간부터

상대에게도 자신에게 충실해 주기를 바라고 강요하고, 열망한다.


왜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할까? 그녀의 기대와 바람은 결국 그 어떤 순간에 산산이 깨질 것이다.

그녀가 변했다고 생각하는 건, 자신을 보호하는 자기애일 뿐 그녀의 본질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가 변해야 할 것은 서로에게 충실하기를 원하는 강한 소유욕을 내려놓고

조금은 사람에게서도 사랑에게서도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상대에게 의존하는 사랑보다는 자신이 주도 해가는 사랑을 해야 한다.

이별의 상실감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어떤 프레임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지 지켜보는 것.

하지만 자신에게는 언제나 솔직할 것.

상대가 부담을 갖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대에게도  자신에게 솔직할 것.

내가 주도하는 사랑은 이별 후에도 나를 건져내서, 많은 사랑의 감정들을 되돌아볼 수 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내가 더 사랑하는 게 훨씬 더 행복한 일임을 알기에

나는 내 감정이 넘치면 상대를 괴롭힐 수 있기에 덜어내는 연습을 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 . 내 사랑을 더더 내어 보여도 내가 허무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상대를 더 많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실이

나는 나에게 부끄럽지가 않다. 물론 질투도 하고 상처도 받고 아프기도 한다.


하지만 이걸 견디면 더 아름다운 걸 얻는다. 나는 그래서 관계안에서 질투도 숨기지 않는다.

내 질투가 아름답고 당당하다.  그만큼의 고통을 겪어내고 있고, 또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한 번의 강한 질투가 지나간 자리에는 다른 종류의 사랑의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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