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 Sep 29. 2024

 우울한 감정 속에 있어요

우울증

사람들은 안 만난 지 몇 주 되었다.

"요즘은 뭘 해도 재미없고 사람 만나기도 싫어요."

이런 말이 입에서 나올 때면 사람들은 습관처럼 한마디를 던지곤 한다.

" 우울증 아냐?"

그럴 때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스스로 우울증 자가 테스트를 해 본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이 몸이 아프거나 우울증에 걸리면 부족의 치료사가 맨 먼저

묻는 네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본다.


마지막으로 노래한 것이 언제인가?

 [ 바로 몇 시간 전]

마지막으로 춤을 춘 것이 언제인가?

{ 오늘 아침]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이 언제인가?

{ 바로 몇 분 전}

마지막으로 고요히 앉아 있었던 것이 언제인가?

{ 지금도 고요히 앉아 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우울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책을 펼치면 가슴이 몽골몽골 해 질만큼

좋고, 영화를 보면 보이지 않는 장면하나  배우의 미간주름하나까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지금 예전에 했던 활동들에서 아무런 즐거움과 의미를 찾지 못하고,

홀로 무인도에 고립된 사람처럼 살고 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미친 듯이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오프모임을 찾아서 나가고, 뻔질나게 약속들을 잡아서, 다녔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시들해지고, 혼자 동굴 속으로 들어앉았다.

글은 쓰지 않지만, 늘 마음속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교차하고 있다.

누가 만나자고 해도, 약속을 잡고 싶지 않고, 그 누구와의 소통도 귀찮다.

일상에 당연히 해야 할 일들만 하면서, 고요히 나의 시간은 흘러간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내 상태는 우울증은 아니지만. 계속되는 우울일 수도 있다.


우울한 기분과, 우울증은 어떻게 다르며, 이 둘의 구분은 정확히 무엇일까?

인터넷에 떠도는 우울증 설문지에는 우울증 자가 테스트들이 있다.


우울증에 따른 갖가지 증상들은 부정적인 생각들을 불러오는 감정들도 있지만

육체적인 증상들이 동반된다.

피로감이나, 에너지 상실, 집중력저하, 불면, 죽음에 대한 생각, 체중 및 식욕감소,

불안감 등등이 선물세트처럼 따라온다.

이 정도의 신체증상을 느낄 즈음이면 우울증이 병으로

찾아왔다는 증거일 테고, 약을 먹던지 치료를 해야 할 위험단계이다.

의사나 주변사람들은

우울증을 조기발견해서 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하는데

우울한 감정을 오래 방치하면 우울증이 된다는 말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자기 자신의 감정은 자신이 잘 안다.

모든 세상의 매뉴얼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는 것이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제대로 바라보는 시작점이다.

의학적으로 우울증이란 신경회로에 필요한 호르몬의 불균형과, 오작동으로 생긴 병이지만

자신이라는 복잡한 인격체를 제대로 아는 시간이 충분하다면,

신경회로는 충분히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우울한 감정은 홀로 오지 않는다. 황홀하거나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고, 쾌락이

충만한 그런 감정의 반대급부로 온다.  계속 우울한 감정만 느낀다면 우울한 감정일 수 없다.

한 가지 감정만 계속되는데 그것이 병이 될 리가 만무하다.

익숙한 감정이 되고 나면 그 감정은 더 이상은 감당 못할 감정이 아니다.


우울한 감정은, 다른 하나의 반대감정을 갈망하거나 기대하거나, 원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방금 전, 아니면 며칠 전, 아니면 몇 달 전, 너무 좋았던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가고 싶은 깊은 갈망이 지금 현재를 부정하면서 자꾸만 우울한 감정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우울 속에 있는 것에  뇌는

절대로 반기를 들지 않는다. 우울을 무기 삼아 삶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모두 달라서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혼자 고요히 있는 것만으로도 충전히 되는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말을 아끼고, 지극히 소수의 사람과만 소통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최소화하는 것이

에너지를 채우는 사람도 있다.

그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본인만이 잘 알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쾌감을 느낀다.

자신이 하는 이야기는 쾌감중추를 건드려 말이 많아지게 한다.


인정욕구는 바로 이런 쾌감을 자극하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게끔 만든다.

글을 쓰는 행위도 말을 하는 행위와 같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쓰게 되는 것이다.

혼자서 글을 쓰는 행위도 이야기를 하는 효과가 있다.  혼자만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꼭 누군가 앞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의 공감과 관심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나의 이야기의 관객이 많아야 할 이유는 없다.


심지어 아무도 없어도 상관없다.  내 안에 무수한 자아들이 관객이 되고 독자가

되어도 상관없다.


자기 자신과의 스토리텔링은 무인도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가진 무기이며

삶의 원천이다. 이 스토리텔링 안에서 의미가 생기고, 창조가 일어난다.

우울한 감정은 스토리텔링의 무한대의 자기 소재다. 즐거운 감정의 다른   형태의 감정이지 반대의 감정이 아니다.

우울해서 즐겁다는 표현이

자신에게  더  어울릴 때도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