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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play Dec 12. 2023

[줌바]를 배우다가 울다니

줌마 아니고 줌바요.

 

12월, 단지 내 커뮤니티 센터가 문을 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대하고 기뻐했지만, 헬스장이니 요가니 내겐 그림의 떡이었다. 그저 내년에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면 그땐 할 수 있겠다, 하고 앞날을 기약했다. 그래도 스케줄표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오후 8시 수업이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슬그머니 기대가 피어오른다.


남편과 상의해서 일주일에 두 번, 오후 8시. 들어본 적만 있는 「줌바 댄스」를 신청했다.

아줌마들이 하는 건가? 뭐 나도 아줌마지.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줌마는 어감이 좀 그렇다. 아마 어릴 적 일 때문인 것 같다.



10살 겨울방학까지 살았던 집은 봄에 가장 예뻤다. 만개한 목련을 보느라 자주 창가에 서 있던 날이었다.

뭐요, 아줌마라고요?

뒷집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2층집이었는데 아래층에 분리된 집이 한 채 있고, 노출된 돌계단을 올라가면 주인집이 사는 구조였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계단 위에서 누군가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만개한 목련이 흔들리며 그 광경을 가렸지만 화가 난 것은 분명했다. 계단 아래에 있는 누군가는 보이지 않았지만. 뒤이어 주인집 아저씨도 나와 외친다.

지금 아줌마라고 했어요?   


도대체 '아줌마'란 무엇일까. 이들은 '아줌마'라는 단어 때문에 다투게 된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전에 어떤 실랑이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아줌마'라는 단어가 감정 폭발의 트리거가 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때부터 '아줌마'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 되었고, 더불어 '아줌마'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부르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지인들에게 '아주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줌마'는 어린아이의 말이기도 하니 10살짜리가 꼭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그날의 사건은 내 단어사전에서 '아줌마'를 지워버릴 만큼 파급력이 컸다.



지금은 부를 일도 별로 없는 '아줌마, 아주머니'라는 단어. 내가 아줌마 또래가 되어서일까.


아무튼 아줌마가 되어 왠지 아줌마들이 출 것 같은 「줌바 댄스」를 배우게 됐다. 하지만 발음이 비슷해 연상되는 것일 뿐 '아줌마'와 '줌바'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기대하던 첫날, 50분 수업. 음악 소리가 과하게 컸는데, 선생님 목소리는 더 컸다. 슬슬 신이 났다. 홀로 운동화를 챙겨가지 않아서 맨발의 댄서가 됐다. 마침 아는 얼굴 하나 없어 더 신이 났다. 스텝을 배우고 음악에 맞춰 동작을 따라 하는데 몸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 이 감정은 뭐지.

이렇게 신나는 음악에 춤을 추고 있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카타르시스였다. 오랜만에 무언가를 배우는 일, 게다가 몸을 움직이며 신나게 하는 활동이라 숨겨둔 흥과 함께 내 감정이 팟, 하고 흘러나왔다. 쉬운 듯 자꾸 헷갈리는 겨우 첫날의 발짓에 말이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든다.

 내 카타르시스 장벽이 이렇게 낮았나.

'첫날 이 정도의 감정 폭발이면 둘째 날은 울면서 춤추는 거 아냐?' 하는 웃긴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너 지치고 힘들었나 보다. 괜찮아.' 하고 나를 토닥인다. 다행히 둘째 날, 셋째 날까지 흥겹게 수업을 들었다. 카타르시스는 여전했지만 울컥하던 눈물은 해방감과 웃음으로 대체됐다.


오늘은 시간을 딱 맞춰 도착했더니 구석 자리만 남았다. 강당 전면의 커다란 거울에도 비치지 않는 자리.


보이지 않아도 안다. 내가 웃고 있다는 걸.


앞에 있던 아주머니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허둥대셨지만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으셨다. 옆자리 아가씨도 무언가를 놓칠 때마다 웃었고. 실수할 때마다 웃을 수 있는 곳이라니 파라다이스다.


이렇게 모두가 즐거운데 줌바면 어떻고, 줌마면 어떨까. 같은 맥락으로 아줌마면 어떻고, 아주머니면 어때.

아가씨 타이틀은 좀 탐나지만.


모레도 줌바하러 간다. 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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