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첫 공개수업. 교실 맨 뒷좌석에 앉아 있던 넌 내가 교실로 들어가자 좋아서 팔딱팔딱 뛰기 시작했다. 너에게 이런 환대를 받아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그런 널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사실 네 첫 공개수업엔 네 아빠가 갈 참이었거든.
네 공개수업일에 난 점심 미팅이 있었다. 그래서 아빠에게 공개수업엘 가라고 이야기 했지. 그런데 불현듯 내 초등학교 때 공개수업을 했을 때가 떠올랐어. 내가 네 나이 때. 그날도 엄마들이 교실 밖에서 아이들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어. 선생님이 예정에도 없이 복도에 서 있던 엄마들을 교실 뒤편으로 불렀지. 그런데 어딜 찾아봐도 내 엄마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찾고 또 찾고. 그 때 실망했던 마음을 아직도 기억해.
한번은 소풍을 갔는데 엄마와 함께 가는 소풍이었어. 소풍 장소에 큰 버스를 타고 도착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모두 엄마를 찾아 도시락을 먹는데 우리 엄마만 없었어. 막막하고 두려웠지. 엄마는 뒤늦게 허겁지겁 달려왔고, 난 엄마에게 안겨 펑펑 울었다. 일을 했던 엄마는 항상 바빴고, 함께 있어도 어디엔가 정신이 팔려 있었어. 그런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난 늘 초조했지.
엄마 없는 막막한 두려움이 너에게도 미치진 않을까 점심 미팅을 잡은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연차를 냈다. 그리고 네 교실로 가게 됐지. 한반에 16명에 불과한 학생들. 교실에 있는 개인 사물함과 보드게임들. 흑색칠판 대신 칠판 한 가운데 놓인 모니터. 30년 전 내가 학교에 다닐 때와 다른 교실 모습이 신기했다. 네가 하루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 넌 이곳에서 너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또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다면...'.
배우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하루 종일 책을 봐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매일매일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고, 온통 배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시간. 돌아보니 배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더라. 그 시기가 지나고 뒤늦게 뭔가 배우기 시작하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30대 초반 나이에 나와 네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고 싱가포르로 떠났다. 싱가포르에서 1년 동안 어학공부를 할 생각이었지. 난 중국어, 네 아빤 영어. 10개월 된 널 데리고 말이야. 뒤늦게 어학공부를 하면서 우린 생각보다 많은 비용을 치러야 했다.
교육비는 기본이고 싱가포르에서 생활하며 들어가는 막대한 생활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집을 렌트하기 위한 비용. 포기한 기회비용까지 따지면 더 막대하다. 직장생활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을 포기해야 했고 커리어를 연장했을 경우 올라갈 연봉도 포기해야 했지. 여기에 우린 당시 집을 살 계획을 포기하고 싱가포르에 갔기 때문에, 그 사이 천정부지로 올라간 집값까지 계산다면 우린 정말 막대한 기회비용들을 포기하고 '고작' 1년 어학공부를 하고 온 거야. 만약 그 어학연수를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학생시절에 다녀왔다면 잃어야 할 것들이 더 적을 수 있었겠지.
물론 그렇다고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한다는 것은 아니야. 싱가포르 생활 1년 동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을 얻었다고 생각하거든. 단지,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주 식상한 이야기 이지만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이다. 그 때를 놓치고 뒤늦게 공부를 하게 되면 네가 지불해야 할 비용은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말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네가 뭘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난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생각이다. 그것을 부모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게 학생이 된 네 특권이기도 하니까. 물론 무엇을 배우고, 그 배움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를 판단하는 것은 네 몫이겠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