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좋은 시골부터 코베어가는 서울에도 텃세는 있습디다
외지인이 싫은 걸까요?
몸이 아파 요양하기위해 지방, 아니 촌이라고 하는게 낫겠다.
처음하는 전원생활은 매매보다는 월세 최소한 전세를 하는 게 좋다란 권유에 촌에 입성한 지인은 "외로울 틈이 없다. 손볼것도 많고 초저녁이면 곯아떨어진다" 며 만족한 전원생활을 하는 듯했다.
지인의 집을 찾은 나와 일행들은 서울에서 좀 멀기는해도 공기며 탁트인 전원주택에 부럽다소리를 연발했고 이래서 시골시골하는구나싶었다.
" 마을사람들하고는 친해졌어?'
" 뭐. 별로.. "
사람사귀러 내려온 건 아니지만 어디가나 사람은 사람이 그립고 오며가며 마주치고 궁금해하는게 인지상정이나 대답이 석연찮다.
이유는 "돈"과 "관계" 강요때문이었다. 물론 지인의 입장이다.
" 마을발전기금내라고 한 번 찾아왔고 무슨 청년회인가 들으라고하는데 안들었어"
전원생활선배들의 조언, 예를 들면 어느 마을에 들어가면 이장부터 찾아라. 잘 모르니 도와주고 가르쳐달라해라등등의 한마디로 겸손한 신입생이 되라는 말이 있지만 이사만해도 일이 산더미고 타지에서 적응하는게 시급한 서울뜨기에게 처음 듣는 발전기금과 장년의 연배에게 청년회운운은 와닿지않았단다. 그 과정에서 걸끄러움이 있었는지 더더욱 돈내기싫어지고 돈을 안내니 그저 싸가지없는 외지사람이 된 것이다.
요양을 위해 나섰던 타지생활은 "텃세"에 스트레스를 받아 귀경길에 올랐다는 얘기를 듣고 영화 "이끼"가 생각났다.
부모님고향에 귀촌을 준비했던 지인역시 " 그나마 아버지고향이니 고향사람이 받아주지. 연고도 없는 외지인은 잘 안받아줘" 라며 귀촌텃세를 언급했다.
지방은 인구절벽이라는데, 특히 시골은 일할 사람도 없고 빈 집만 늘어난다는데 외지인이 자기 돈을 들여 입성하는데 왠 텃세일까마는 그렇단다.
그들은 외지인이 싫은 걸까?
" 저 위에서 팔짱끼고 보는거지. 새로운 외지인이구나. 얼마나 가나보자 관망하다가 술 한 잔 대접하면 필요한게 있냐없냐며 다가온다" 시골에 세컨드하우스를 가진 친구는 현지에서 편안하게 살려면 적당히 술대접도 해야한다고 그게 텃세라고 말한다.
시골만 텃세있나요? 어디에나 있어요
막연하게 꿈꾸웠던 전원생활, 귀농과정에서 '텃세'는 친구말대로 술 한잔이나 기금을 내면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텃세는 어디에나 있다. 직장은 그렇다쳐도 심지어 교회도 있다.
나 역시 처음 직장생활에서 선임텃세에 힘들었다. 일이 서투른 신입앞에서 한숨을 길게 내쉴때마다 반으로 쪼그라들었다. 나는 안그래야지 다짐했는데 선임이 된 나는 더했는지 " 선배님은 왜 그렇게 짜증을 내세요?" 란 말까지 들었다. 부끄럽고 그 신입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여전하다. 요즘 극한 직업의 하나인 학교급식실, 자동화가 되고 학생이 준만큼 일할 사람도 줄었으니 더더욱 힘들어진 상황이다. 교육청일자리포털을 검색하면 급식실조리사, 배식원급구가 수두룩하다. 한 중고등학교 급식실에 신입조리원이 들어왔는데 2인1조로 해야 할 업무량을 신입에게 몰아준 선임, 힘들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며 호소를 하자 그제서야 선임의 텃세가 뽀롱났다. 결국 얼마 못버티고 그만두었다.
신입공무원의 시보떡이나 간호사의 태움역시 텃세다. 자신이 편하려면 잘 가르쳐야하는데 그만두게 만들었으니 소금과 솜을 진 당나귀가 된 셈이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탁구장이나 배드민턴은 등급이 있는데 상위그룹은 왠만해서 초보들을 상대하지않는다. 자신들도 돈과 시간을 내는 건데 재미없는 초보들을 상대할 이유가 없다. 상위그룹은 좋은 자리, 초보들은 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도한다. 탁구장의 경우 로봇연습기가 있는데 " 로봇은 내 친구" 란 외로운 시절을 이겨내야한다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사람이 상대해주면 감사가 절로 나올 정도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배타적인,은근히 텃세가 있는 곳이 교회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때문에 이사를 가도 교회는 잘 안바꾼다. 새로운 신자와 기존교인들과의 관계가 그렇다, 빨리 적응하고싶은 뉴페이스가 어쩌다 큰 목소리를 내면 "나댄다" 라거나 교회일에 제한을 두기도한다. 시골에서 관계를 강요받는다고치면 교회는 오히려 관계에 거리를 두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기존과 신입사이에 묘한 기류, 텃세가 있다.
전학생에게 관심과 학교안내까지 기꺼운 초등학생들
초등학생들을 자주 대하다보니 그들에게 배운다. 바로 텃세다. 텃세를 부리는 게 아니라 곁을 쉽게 주는 그들의 인성이다. 친구개념이 덜해그런지는 몰라도 특히 저학년들은 학교안내까지 기꺼이한다. 궁금한게 많은지 쉬는 시간 전학생앞으로 쪼르르다. 며칠도 안되어 기존과 섞여 빨리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 직장생활중 신입에게 텃세를 부리고 초보운동자나 새로운 신도에게 곁을 주지않았던 게 부끄러워진다.
농촌을 포함 시골은 외지인이면 어떻고 뉘집아들이 아니면 또 어떤가 인구절벽이라는데 뉴페이스가 필요하지않을까. 직장도 교회도 취미활동인 운동역시 뉴페이스는 늘 필요하다. 본인들은 텃세라고 생각지않는 단순한 행동이나 언어가 신입들에게는 얼마나 큰 부담인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라떼는 말이야란 꼰대짓을 하고싶은 것일까? 아무튼 사람이 내지않아도 되는 세가 있다면 이 '텃세' 가 아닐까. 사전을 찾아보니 텃세란 먼저 자리잡은 사람이 뒤에 온 사람에게 부리는 특권의식, 또는 업신여기는 행동이라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부리고 업신여겨 상대방이 기분나빴다면 텃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