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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원썸 Dec 17. 2024

욱~!하기엔 우리는 아직 젊다

나이값은 누가 내야하는것일까

대학생 자녀들이 햄버거프랜차이즈에서 한동안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햄버거를 매우 좋아하던 입맛들도 막상 ‘일’이 되고보니 싫증이 난단다. 

그 즈음 진상고객에 대한 뉴스가 여러 개 있었는데 주로 식당에서  일어난 일이라 은근히 신경쓰였다. 

“어르신 고객, 객장안 햄버거 사진과 다른 사이즈라며 점원에게 햄버거를 던져...”

“ 어르신 고객, 주문한 음료를 자리에 갖다주지않는다며 점원에게 쏟아...”

“ 옆 자리에 늙은 고객이 앉았다고 가격흥정, 깎아주지않자 음식점 고발해..”

황당한 이유와 도를 넘는 행위라 기사가 되었겠지만 사실, 진상고객과 진상은 음식점뿐아니라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재수없다란 표현을 썼던 우리와 다르게 요즘 아이들은 그것을 ‘진상불변의 법칙’이라고 정의한단다.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그런 고객들의 대부분이 장년, 어르신들이라는 거다. 

나 역시 장년의 나이다. 나를 표적하는 말이 아님에도 어디선가 ‘나잇값을 하네, 못하네, 그 나이먹어서‘란 말이 들리면 오금이 저린다. 내 일인양 부끄럽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나이지만 부담스럽다. 짐스러운데 값까지 내란다. 싫다. 매우 싫다. 


나도 아이들따라 숟가락 좀 얹어보려하자 두 아이 모두 손서레를 친다.

“ 엄마, 이 일이 얼마나 힘든데. 그리고 아줌마들은 일 잘 못해”

20대청년들이 주로 하는 그 햄버거가게에 40후반의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장년이라기엔 다소 어린 중년의 나이, 문제의 시작은 나이가 아닌 일머리였다. 먼저 일을 시작한 아들이 동생에게 일을 가르쳤을 때 처음 알았다. 종류만 수 십 개, 소스도 수 십 개, 신메뉴와 프로모션은 왜 그렇게 자주 나오는지 청년들이라면 며칠안에 습득할 내용이지만 그 점원은 늘 설거지파트였다. 

햄버거가게의 설거지는 가정집과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이란다. 기름끼도 어마무시하지만 그릇사이즈가 대용량이라 무조건 힘들고 주부습진에 걸리는 것도 다반사라고 했다.    

그 점원입장에서는 제일 힘든 구역에서 승진하지못한 셈이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아줌마, 오기와 열심만으로는 해결안되는 구석이다.

자기 담당이 있지만 한 사람의 일이 지연되면 다른 누군가가 도와줘야하는데 그 한 사람이 바로 아줌마였다.

“ 못할 수도 있지. 이제 막 시작했던가. 설거지높이가 안맞다던가”

가재는 게편이라고 얼굴 모르는 그 아줌마의 편이 되니 자극받은 아들이 한 소리를 한다.

“ 그 나이 될 때까지 뭐했어? 나잇값이란 게 있잖아. 우리라고 설거지를 많이 해봤겠어?”


언제쯤 어른이 될까 지루하기만했던 십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 간 이십대, 아이키우고 살림늘리는데 정신없었던 삼사십대, 그러다보니 가장 편하다는 숫자 50을 느닷없이 만났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지천명, 이치를 알기는커녕 마치 남에 의해 떠밀린 듯 눈 떠보니 그렇다. 나이를 먹는다, 먹었다하는데 도통 어디로 먹었는지 알 수가 없다. 태어나 지금까지 똑같은 365일을 여러 번 지나오면서 단 한 번도 내지않던 ‘나잇값’을 갑자기 내란다. 그것도 당장. 억울하다. 매년마다 내는 재산세마냥 내어왔더라면 최소한 준비라도 했을텐데말이다. 

사실 나이들수록 더 내야한다는 ‘나이값’은 감가상각되어야 맞다. 인생의 황금기라는 이십대는 조금 더 내야하는 값이고 가치가 아닌가 


나잇값, 부인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편견없이 누구나와 어울릴 수 있는 어린 시절과 다르게 ‘나만, 우리만, 내 편만 고집하게된다’는 것을. 지나 온 시절을 보상받고싶어 엄살부리고 으름장을 놓는다는 것을. 그게 아닌 걸 앎에도 내 남아있는 시간이 촉박해지니 점점 서둘러지는 거겠지. 돌아서면 햄버거를 던지고 음료수를 뿌린 게 너무 부끄러워 애들말로 이불킥이지만 사춘기때마냥 삐툴고싶은 걸. 그 와중에 나잇값이라고 하니 밀린 월세처럼 죄인같다.

세상의 이치를 안다는 지천명, 그 말을 한 공자만큼 알 수 있을까. 참말로 나잇값을 어디로, 어떻게 내야하는지 모르지만 나이든 게 죄가 아니기에 조금은 더 당당해보자. 대신 서투른 일은 반복하고 속도를 내보자. 서투른 어깃장에는 미안한 마음을 품어보자. 미안한 일에 미안하다고, 고마운 일에 고맙다고, 실수한 일에 지나쳤다고 최대한 표현해보자. 남아있는 시간이 촉박해 서둘러야할 것은 어깃장이 아닌 진심의 표현이다.       

그 나이가 되어보지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게 인생이더라.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나를 이해할 수 없다. 젊은 청년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인생의 후반부란 장년의 나이에 ‘너무 있는 척, 다 아는 척, 무엇보다 어른인척’ 하지말자. 우리는 아직 그 자리에 이르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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