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그만둔 지 10년이다.
월, 화, 수, 목, 금, 금, 금 일하던 곳에서 탈출했다. 회사를 위해 애쓰는 하루하루의 종점은 아득했고, 나는 여전히 꿈을 꾸었다. 고여 있는 열망들을 적바림 하며 글쓰기 교실을 전전했다. 마흔에 등단하신 박완서 작가님으로 위안 삼는 나날을 보냈지만 10년, 아웃라이어가 될 만한 시간은 글쓰기보다는 결혼, 임신, 출산, 육아로 촘촘히 채워졌다.
자아성취의 가능성을 품은 소중한 세월보다 더 귀한 아들, 딸이 내 삼십 대의 결실 이리라. 나의 분신, 나의 정성, 나의 자랑, 나의 아들에게 아빠가 물었다.
엄마는 집 같아요 / 개암나무 "아들, 너는 커서 뭐가 될래?"
이제 8살이 되어 무려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뭐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냐는 듯 귀찮아한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배드민턴 선수 혹은 피아노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심경에 변화가 있었나 보다..
그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응한다.
"아무것도 안 될래."
나는 아직도 진로 고민 중인 아줌마로서,
어린이가 퍽 신선한 대답을 했다고 생각했고
"그래, 아무것도 안 돼도 괜찮아." 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구먼 옛날식 직업 하나 붙잡고 그걸 꿈이라고 하는 것도 웃기잖아.
역시 내 아들, 훌륭해.
엄마의 지지를 얻은 아이는,
근데,
한 마디를 덧붙인다.
엄마처럼.
엄마처럼 아무것도 안 될래.
얼얼한 머리를 손으로 받쳐 들었다.
그러니깐 아이에겐, 엄마의 삶이 최고로 행복해 보였다는 건가?
따르고 싶고, 닮고 싶을 만큼?
아님,
8세 남아도 '가부장적 시각'에 오염되어
가사와 돌봄 노동의 가치를 모른 채,
엄마를 한갓지게 노는 사람으로 본 걸까.
엄마는 집 같아요 / 개암나무마흔 또래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었다.
돗자리 위에서 펼쳐 놓는 자신의, 혹은 가족, 친구의 이야기 속엔 생애 전환기를 살아내는 여성들이 대거 등장했다.
누구는 갑상선암에 걸렸고, 누구는 유방암 치료를 받고 있으며, 누구는 조기폐경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우울증 약을 먹었으며, 답답한 심경에 카드빚도 생겼다.
남편과의 관계로 화병이 생겼고, 별거를 시작했다.
몰입해서 아이들 열심히 키우다 별안간 나는 누구인가 물으며 울렁거린다.
인생은 다양하고 당면한 문제도 제각각이지만
그 자리에 모인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전업주부로 살아간다는 점이었다.
반짝반짝하던 우리는
결혼하고 왜 자꾸 자존감이 낮아질까?
우리만 좀 모자라고 떨어지는 건가?
삶이 계속 이러면 어쩌지?
불혹이지만, '세상일에 마음이 빼앗겨 마음이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
이 아직도 있다.
여전한 꿈나무이지만 벌써 마흔 해가 지난 걸 보니 버나드 쇼의 말마따나
우물쭈물하다 인생이 금방 가겠구나 싶다.
남은 날이 제한되어 있고, 에너지는 한정적이며,
젊은 날에 생각했던 대단한 일을 '나'는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안 된 엄마의 날들을 써 봐야겠다.
글이 길을 낼 것이라 믿으며.
엄마는 집 같아요 / 개암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