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시작

당신도 나처럼 화가 나나요?

by 김봉란

한겨울에도 아이스라떼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줌마들 사이에서 간혹 발견되는 증상이다. 체한 것도 아니면서 자꾸 명치가 답답한 것이 탄산수를 마시거나 얼음을 들이켜야 좀 낫다. 한의원에서는 이걸 화병이라 부른다나?


화병.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한스런 일을 겪으며 쌓인 화를 삭이지 못해 생긴 몸과 마음의 질병이란다. 부당 해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1억쯤 사기를 당한 것도 아닌데, 뭘 그리 큰일을 당했다고 이리도 지속적으로 화가 날까 의아했다.


나의 화는 조급증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숫자의 변화에 불과하다는 마흔이라지만 뭐라도 좀 달라졌으면 했다. 마흔에는 어때야 한다는 편견이 있나 보다. 십 년 전, 서른에도 호되게 앓이를 하다 퇴사를 했는데, 지금은 또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분출될까? 그 때나 지금이나 맥락은 비슷하다. 뭐 하나라도 이루고 눈에 보이는 성취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스스로를 다그친다.


내가 자신에게 많이 박한 걸까? 십여 년에 걸친 결혼, 임신, 출산, 육아, 그것도 요즘은 다둥이로 쳐주는 둘째까지 낳았으니 내 삶은 이십 대 때와 비교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숭고하고 아름다운 ‘엄마’란 이름을 얻었다! 평범한 하루 안에 아들이 37번, 딸이 64번, 남편이 11번 엄마, 엄마, 엄마를 부른다. 과하게 배부르다!


실은, 우리 집 첫째와 둘째는 배다른 엄마 밑에서 자라는 것 같다. 첫째는 부드럽고 온유한 엄마 밑에서 자란 반면. 둘째는 버럭과 샤우팅의 난리 속에서 피어나는 잡초처럼 크고 있다. 둘째를 낳고 과부하가 걸렸다. 그동안에 쌓인 인내의 찌꺼기들이 온몸의 숨구멍을 통해 이리저리 삐져나온다.


나도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자꾸 못하고, 한정 없이 유예되니 한숨이 난다. 유치원만 가도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나? 차례를 잘 지키면 재미있게 놀 수 있다고.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렸다가 내게 공이 날아오면 그때 던지라고. 친구들이 나보다 앞서 줄 서 있으면 기다렸다가 그네를 타라고. 그런데! 30대 청년이 40대 아줌마로 변모하는 동안 계속 줄에서 대기하고 있다.


화가 난다!


마음에 두둑이 장전된 화살이 남편에게로 향한다. 그도 나름의 고충을 가지고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일터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은, 모르쇠 하련다. 당신이 그때, 파주 헤이리에서, 으슥한 벤치에 앉아, 내게 분명히 말하지 않았는가. 아침에 된장찌개 끓여줄 여자를 원하는 게 아니라, 평생 꿈을 지지하며 응원하고 싶다고. 쳇, 그 달콤한 속삭임을 내가 믿었단 말이다!


집안에서 닳고 없어질 것 같은 엄마들에게 육아 우울증, 주부 우울증이 흔하다. 우울은 분노의 한 형태라 들었다. 그런데 나의 분노는 우울이 아닌 반란으로 드러났다. 꿈을 펼쳐봐라 멍석이 깔리는 기회는 절대 오지 않더라. 뭐라도 해보고 싶은 엄마의 시간은, 엄마의 공간은, 투쟁하고 쟁취해야 겨우 발이라도 비집어 넣을 수 있을까 말까 하더라.




엄마의 ‘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
욕망을 정직하게 표출하는 엄마,
시위하고, 목소리 내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엄마,
박차고 일어나서 부당한 건 시정해 내고야 마는 엄마,
분노의 아드레날린으로 엄마의 반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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