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바르, 탄자니아
'오렌지 나무 두 그루가 있는 마을에서 내려주세요.'
'표범이 사는 마을에 데려다 주세요.'
'망고나무 아래로 갑니다. 바오밥 나무로 가실 분은 없으세요?'
'기차경적이 울리는 마을로 갈까요?'
'저는 배 8척이 있는 마을에서 내리겠어요.'
나는 매일 표범이 사는 마을로 출근한다.
출근시간, 달라달라를 타면 강이 흐르는 마을(mtoni)과 배 8척이 있는 마을(meli nane), 기차경적이 울리는 마을(bububu), 토마토의 마을(kwa nyanya)을 지나 표범이 사는 마을(chuini)의 마지막 지점인 파도치는 곳(mawimbini)에서 내린다.
나는 매일 동화의 세상을 산다.
위에 언급한 말들은 잔지바르 달라달라 안에서 사람들이 매일 쏟아내는 말이다. 수개월 달라달라를 타고 출퇴근을 했지만 차에서 내리기 전 내 입에서는 '츄이니', '콰냐냐', '마윔비니' 따위의 단어들이 자동적으로 혹은 기계적으로 튀어나왔고, 나는 콘다에게 큰소리로 내 말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 거스름돈을 정확하게 받아야 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날도 142번 달라달라를 타고선 무심코 유리창 앞에 붙은 미충과 미윌리(michungwa miwili)라는 글씨를 바라보았다. 미충과 미윌리라, 익숙한 단어인 것 같은데 무슨 뜻이었더라, 가만...
오렌지 나무 두 그루
이름이 너무 예쁘다. 나는 빠른 속도로 다른 정류장 이름을 떠올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염소의 마을, 빵나무가 자라는 마을, 우유가 나는 마을 등의 예쁜 이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평소 그냥 지나쳐간 평범했던 장소들이 특별한 장소로 변해갔고, 다른 사람들은 결코 다니지 못할 표범이 사는 학교를 매일 다닌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은 점점 가벼워졌다.
다르에스살람 같은 대도시에선 도로 이름이나 포스타(우체국), 음리마니(쇼핑몰 이름), 마쿰부쇼(박물관) 같은 건물들의 이름을 따서 정류장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교하면, 여기의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자연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매일 밀레니엄 타워에 가는 것보다는 토마토의 마을과 오렌지 나무 두 그루가 반기는 마을에 가는 게 더 행복하지 않겠는가.
그저 이름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언어는 사람의 의식을 지배하고, 환경으로부터 나온다. 환경은 의식에 관여한다. 사람은 자동차보다는 꽃을 볼 때 안정을 느끼고, 밀레니엄 타워보다는 오렌지 나무를 볼 때 기쁨을 느낀다. 자동차가 있기 전에 꽃이 있었고, 밀레니엄 타워가 세워지기 전에 오렌지 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버릴 수 없는 태고에의 끌림이다.
나는 내일도 표범이 사는 마을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