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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s libris Nov 25. 2020

접촉사고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나는 운전을 잘하지는 않지만, 10년 넘게 운전하면서 사고를 낸 적이 없다. 물론 운전자 중에서는 교통사고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30초에 한 번꼴로 사고가 난다는 통계적 수치 (2019년 기준 연간 교통사고 건수 229,600건) 를 감안한다면 운이 제법 좋은 경우라고 생각한다.


운전을 엄마한테 배웠다. 우리 집에서는 아빠보다 엄마가 더 운전을 잘했다. 군 복무를 할 때였는데, 일병 휴가를 나와서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엄마가 대뜸 운전 연수를 시켜주겠다며 당시 집에 있던 스틱 아반떼를 몰고 집 근처 골목에서 연수를 시작했다. 동네에서 며칠 연습을 했더니 시동을 꺼뜨리지 않고 가파른 언덕을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기울어진 경사면에서 멈췄다가 출발할 수 있게 되었고, 주차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상병 휴가 때도 며칠을 할애해서 운전 연습을 했다. 병장 말년 휴가 때는 운전면허 시험을 보고, 면허증을 땄다.


취업을 하고 차를 샀다. 당시 이천에서 근무를 했는데, 주말마다 인천에 있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게 하나의 규칙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투병 생활을 하던 엄마를 위해서 가족 모두가 최선을 다해 가족을 위한 시간을 만들었다. 이천에서 인천까지 매주 왔다 갔다 하려니 보통 귀찮은 게 아니었다. 시외버스가 있었지만 길에서 버리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자가를 선택했다.


하루는 엄마를 모시고 외할아버지를 뵈러 갔다. 내가 운전대를 잡았고, 지방 어느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막 터널을 초입을 들어서는데 트럭 한 대가 내 앞에서 여유로운 질주를 즐기고 있었다. 뻥 뚫린 길 위에서 답답함을 느낀 나는 차선을 바꿔 트럭을 추월해 터널을 빠져나왔다. 그 순간 보조석에 앉아 있던 엄마가 나를 보며 소리를 쳤다.


“운전 더럽게 배웠네!”


나는 당황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눈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얼굴이 달아올랐다. 시야 확보가 어려운 터널 안, 더욱이 차선 변경 금지를 뜻하는 하얀색 실선 차선에서 차로를 변경한 죄로 더럽게 운전하는 운전자로 분류되었다. 최소한 엄마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뒤로 할아버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아는 지식을 모조리 동원해서 모범 운전을 했다.




아버지는 클럽 관장과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 두 분이 대화를 나누시기에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는데, 안에서 듣기에도 우렁찬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귀가 어두워지고 있어서 아버지의 목소리는 대화할 때도 종종 소리를 치는 것처럼 커졌다. 나에게 어떤 특혜를 베풀어 달라고 청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엔 클럽 안에 있는 모두가 들을 만큼 힘이 실려 있었다.

“우리 딸은 소설가요! 대학에서 학생들도 가르치는 교수고! 그러니 좀 싸게 해줘야지.”

이런 문장이 학생들의 소설 속에 있다면, 나는 좀 더 수정하라고 권했을지도 모른다. 생각 없이 대사를 쓰지 말라고.

하지만, 이건 아버지의 과잉된 마음이 투영된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실소를 머금을지라도, 딸에게 단 하나라도 이익이 더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펼쳐놓은 세련되지 못한 속내였다. 너무 소중해서 지키고 싶은 것. 그래서 과한 마음이 체면 따위는 생각도 않게 하는 것. 그런 것이었다.


김봄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하루는 도서관 앞에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와 접속사고가 난 일이 있었다. 주차를 하다가 앞 범퍼에 살짝 흠집이 생겼다. 차주는 수리비로 200만 원을 요구했다. 나는 보험사를 불렀고, 그 사실을 엄마한테 털어놓는 순간 또 한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처리하면 보험료가 오를 거고, 보험사 기록에 사고 기록이 남고…"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조금 이따가 다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자동차 보험을 바꾸는 조건으로 사고 처리를 해줄 수 있는 보험사가 있다고 했다. 물론 보험료 인상 없이, 현재와 비슷한 조건으로...


“엄마, 이거 정상적인 절차가 아닌 것 같은데?”

“사고 처리해주기로 했어. 그냥 보험 새로 들어.”

“괜찮아,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너는 너한테 좋다는데 왜 싫다고 하니?”

“그거 편법이잖아. 내가 보험사에 조금 더 알아보고 잘 처리할게.”

“그럼 그래라.”

뚝-


전화는 엄마의 마지막 말처럼 단호하게 끊어졌다.


나는 아직도 그게 적법한 거래였는지, 절차대로 보험 처리가 이루어지는 합당한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규정이 있다면 나의 아집과 무지함을 탓해야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계약 이전의 사고를 대신 처리해주는 정신 나간 보험사는 없을 것 같았다. 차라리 200만 원 덤터기를 쓰는 게 낫지, 편법은 쓰기 싫었다.


나에게 엄마는 이런 존재이다.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고에 경적을 울려주고, 자식에게 해가 되는 일은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내는 위인. 비록 그게 제도의 허점이나 편법일지라도 자식에게 어떠한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지식과 인맥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가끔은 엄마의 그런 방법이 구시대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마치 우리를 위한 일이라는 격변기 시절의 막무가내 정신은 다른 시대를 거쳐온 나에게는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그 뒤에도 어떻게든 자식들에게 좋은 자리를 만들어 주려는 엄마의 노력과 당신의 사랑의 방식을 몰라주는 아들 간의 다툼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엄마에게 걸음마부터 배웠던 내가 당신과 얼마나 다르겠냐만은 내재된 발톱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새로운 가족이 생기니 어떻게든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머리가 뜨겁다. 가정이 피해받지 않는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사고가 딱딱해진다. 잘 숨겨왔던 발톱을 드러내기도 하고, 예전에는 절대로 하지 않았던 무척이나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생겼다. 가끔씩 발톱이 사람들을 향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마다 자신에게 다시금 경적을 울린다. 운전을 더럽게 배웠다는 엄마의 경적처럼 스스로 생각하는 올바른 길을 위해서다.


그 방법은 다르지만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좌파, 우파, 진보, 보수 개똥 같은 이념을 늘어놓지 않더라도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가족은 가정을 위해서, 지구인은 지구를 위해서,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애쓰고 있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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