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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Mar 11. 2024

금주 200일 차

#치앙마이 일년살기

숫자에 집착하는 것이 딱히 긍정적이지는 않겠지만 이 숫자에는 집착하고, 안도하고, 자신감을 얻게 된다.


치앙마이 생활 5일 차에 시작한 금주가 오늘로 200일을 맞이했다.


매일 매일 어플을 들여다보며 금주를 이어나갈 힘을 얻는다


기뻐서 뭐라도 하고 싶은데 오늘자 치앙마이의 미세먼지가 172 ㎍/㎥을 기록하고 있는지라 어지간해서는 집에 있어야 할 것 같다. 겉보기에는 화창한 날씨인데 미세먼지 측정 사이트와 공기청정기는 빨간불을 띄우고 난리가 났다.


금주 200일 차,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기록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몸무게 10kg 감량 (금주만 한 것이 아니라 주 5회 무에타이 수업 병행함)

얼굴 부기 빠짐 (금주 전과 비교해 보면 눈빛과 턱선이 살아남)

감정 기복 줄어듦

체력 향상 (원래 스쿼트, 데드리프트 100kg 5회 정도씩은 하는 체력이었다가 음주로 저질 체력이 되었다가 다시 회복)


생각만큼 드라마틱한 변화는 아닐 수 있다. 특히 몸무게는 예상보다 적게 빠졌다. 원래는 술만 끊으면 20kg는 우습게 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술을 끊으면서 입이 터졌다. 술의 허전함을 음식으로 채웠다. 더군다나 여기는 태국인지라 외식으로 먹는 음식들이 대체적으로 한국보다 간이 셌다. 달고 시고 짜고 등등.


태국음식 조리법을 보고 있노라면 건강과는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


반대로 그럼에도 살이 빠진 이유는 운동을 엄청나게 해댔기 때문이다. 치앙마이 도착 초반 두 달은 오토바이 없이 걸어 다녀서 하루에 2만 보는 우습게 찍었고 그 이후에는 주 5~6회씩 무에타이 수업을 들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건강하고 정석적으로 살을 뺐다고 해야 할까. 칼로리를 극단적으로 줄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활환경이 바뀌어도 갑자기 요요현상이 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기복의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빨리 끊을 수 있게 되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부모님을 생각하며 고통스럽다. 여전히 눈을 감으면 아빠가 나를 때리기 위해 문을 부수고 들어오던 그날의 상황과 아빠의 표정이 떠오른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감정을 건드리면 폭발하고 그 화를 나에게 신체적 언어적 폭력으로 풀었던 아빠. 나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며 내 어깨 위에 올라타고는 나를 놓아주려 하지 않는 엄마. 이 두 사람에 대한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두 사람에 대한 생각에 시달린다. 다만 술을 마시지 않으니 그 생각에 시달리는 정도가 레벨 10에서 3 정도로 줄어든 기분이다. 술을 마시면 1박 2일 정도는 그 생각에 사로잡혀 벗어날 수 없었다. 지금은 일단 내가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일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일이라 하면 운동, 글쓰기, 스쿠터 타고 동네 마실 나가기 등이 있는데 술에 취해 있거나 숙취에 시달리는 상태라면 이런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종종 유튜브에서 한 잔 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볼 때면 눈 딱 감고 나도 한 잔만 할까?라는 유혹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특히나 태국에 관련된 영상은 뭐 죄다 술과 음식을 찬양하는 영상들 뿐인지 원. 다행히도 그런 유혹이 커지기 전에 나 스스로가 '나는 한 잔만 마시는 건 불가능한 사람임, 알잖아? 한 잔으로 시작해서 위스키 350ml는 거뜬히 해치울걸? 그리고 그걸로도 끝이 아니라 그다음 날 나머지 350ml를 또 비울 거야'라고 생각하며 술에 대한 생각의 스위치를 꺼버린다. 그래서 그런 걸까? 얼마 전에는 대형 마트 주류 코너 앞을 지나는데 술을 보기만 해도 어지럽다는 느낌을 받아서 빠르게 그 앞을 지나가버린 적도 있다.


이걸 보는데 어지러웠다. 이전에 대체 술을 얼마나 마셨던 걸까 나는.


잘하고 있다. 앞으로도 잘하자.


술을 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술 없이 200일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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