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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Mar 06. 2024

치앙마이 3월, 더움

#치앙마이 일년살기

원래는 각을 잡고 다른 글을 쓰려다가 더워서 포기했다. 때마침 올해 들어서 치앙마이의 미세먼지 농도도 최대치를 기록했다. 공기오염도를 비교해 주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현재 치앙마이가 캄보디아 프놈펜과 나란히 세계 1등을 먹고 있다. 공기가 더럽고 뜨겁다.


오전에 어학원에 다녀온 후 내내 집에 붙어 있다가 해가 완전히 지고서야 밖에 나섰다. 해가 지니까 그나마 살 것 같다.


내가 사는 곳은 치앙마이에서 물가가 제일 비싸다는 님만해민과 서민 거주지역인 싼티탐의 중간의 어느 지점이다. 장을 보거나 할 때는 저렴한 산티탐으로 간다. 오토바이가 있으니 5분이면 금방 도착하는 거리다.


산티탐 거리의 모습, 이상하게 여기만 오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산티탐이라는 지역을 구분하는 것이 애매하지만, 회전 교차로가 있는 거리가 산티탐을 대표하는 중심지역일 것 같다. 나는 이 구역에서 물을 사고 종종 돼지고기 꼬치와 태국식 소시지를 사 먹는다. 건강에 안 좋을 것 같기는 한데 가끔은 뭐에 홀린듯 사먹는다.


건강에 안좋겠지 근데 맛있...


물은 1.5리터 생수 6개들이에 40바트, 1600원이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렇게 물을 쌓아놓고 파는 곳이 있는데 이런 데가 일반 마트보다 10바트 정도 저렴하다. 400원밖에 차이가 안 나는 것이지만 전체 제품 가격으로 보면 꽤 차이가 크다. 나도 원래는 마트에 다니다가 이곳을 발견한 이후로는 여기에 정착했다. 아, 같은 길에서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같은 생수를 3팩에 100바트에 파는 집도 있다.


생수와 각종 생필품을 저렴하게 파는 가게


생수를 한 팩 사고 바로 앞에 있는 세븐일레븐에 들러서 6바트짜리 얼음 두 봉지, 제로 탄산 음료수 두 개, 아이스크림 하나를 샀다. 산 것을 오토바이에 싣고 보니 참으로 태국스럽다고 생각했다. 세븐일레븐이 보이는 풍경,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오토바이, 먼지 폴폴 풍겨가며 꼬치를 구워서 파는 노점들까지. 내가 생각하는 태국의 풍경이다.


닭고기 돼지고기를 구워서 파는 가게들, 연기가 자욱한데 정말 태국스럽다
오토바이에 이 정도 짐은 싣고 다녀야 로컬이다


이렇듯 산티탐으로 들어오면 생활물가가 확 낮아지는데 이건 이 지역이 서민들이 모여서 사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아니, 서민이라고 하기보다는 태국의 대다수의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까. 하루 최저시급 350바트, 한 달에 만 바트 남짓 벌어서 사는 사람들이 생활을 하려면 적어도 기본 생필품의 물가는 그에 걸맞게 저렴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엘리트 계층일 것이라 생각하는 어학원 선생님도 비정규직에 한 달 월세 3천바트, 하루 생활비 200바트를 쓴다고 했다. 석사과정을 밟는 중이라고 했는데 대체 한 달에 얼마를 버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왔다. 세븐일레븐에서 사 오는 얼음은 녹았다가 다시 얼었는지 항상 덩어리로 뭉쳐있어서 냉장고에 넣기 전에 다시 깨 줘야 한다. 손으로 깨면 손이 아작 날 수 있으니(경험담) 살짝 높이를 주고 떨어뜨리는 방식을 사용한다. 날씨가 더워져서 얼음 없이는 살 수가 없기에 두 봉지를 사서 쟁여두었다.


주먹으로 치면 주먹이 나간다^^


아이스크림은 최대한 자제하지만 이 제품을 보면 참을 수 없다. 검은콩이 들어간 것 같은데 맛은 영락없는 비비빅이다. 비비빅보다 조금 덜 단 맛이라고 해야 하나. 포장지를 보니 ผลิตจาก กะทิ라는 글자가 보이고 태국어를 조금 읽을 줄 알아서 이게 '파맅짴 까티'라고 발음된다는 것을 알았다. 찾아보니 '코코넛 밀크로 만들어진'이라는 뜻이다. 뜻은 정확히 몰랐지만 발음은 맞아서 꽤나 기쁘다.


비비빅 보다는 덜 깡깡해서 먹기 좋다


태국에서 지내는 것은 딱히 불편함이 없는데 방금 다녀온 산티탐의 풍경을 생각해 보노라면 정말 한국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태국만이 주는 이 거리의 감성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너무도 이질적인 감성은 오히려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한국에서 그만큼 마음이 불편했다는 방증인 것일까 그냥 내가 태국을 좋아하는 것일까.


작년에 치앙마이에 놀러 왔던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어디에서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집'이라는 개념이나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그러자 친구가 치앙마이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었나. 다른 데 갔다가 치앙마이에 돌아오면 집에 온 기분이 아니냐고 물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마음이 불안해서였는지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오늘 산티탐에서 그냥 물이랑 얼음 정도 사서 돌아왔는데 그 풍경이 맞춤옷 마냥 나에게 너무 편해서 '아, 치앙마이는 나에게 집이 맞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사실 이 글의 결론은 지금 참 덥다는 것. 3월인데 한낮에는 38도까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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